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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수의 라이프롱 디자인] 아랫목으로의 초대

임경수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교수/성인학습지원센터장

윗목과 아랫목 중 어디가 따뜻한 곳일까? 온돌방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아궁이에서 가까운 쪽의 방바닥인 아랫목이 아궁이로부터 먼 쪽에 있어 불길이 잘 닿지 않는 윗목보다 따뜻하기 마련이다.

 

기형도 시인은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이라고 썼다. 윗목은 그러니까 따뜻함으로부터 먼, 차가움에서 추론하여 불안감, 외로움, 배고픔 등을 연상시키고, 거기에 문풍지가 떨어져서 너덜너덜한 것 같은 가난하고 초라한 풍경을 펼쳐 놓는다.

 

기형도 시인은 29세에 요절했다. 1989년 3월 7일이었다. 삼개월 후쯤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이 발행되었고, 거기에 수많은 윗목의 상징들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한참 지나서 시인의 어머니는 팔순이 되어서야 아들의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 글을 읽고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5년 한 신문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열무 삼십단, 그건 내가 한 거니까. 아들이 그 걸 시로 썼구나, 그랬지. 그래도 머리에 들어오는 건 하나도 없어요."

 

시인의 어머니는 왜 머리에 들어오는 게 하나도 없다고 하셨을까?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 을 다시 읽어보았다. '해는 시든 지 오래/...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의 은유·직유·대유적 표현에 이어 '내 유년의 윗목'으로 마감하는 문학적 구조가 이제 막 글을 깨친 어머니에겐 마땅치 않았으리라.

 

그렇겠다. '열무 삼십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오시네./...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과 같은 구체적 표상들을 읽으면 마치 아들이 살아 있는 듯 선연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아들의 글을 다 이해할 것 같이 기쁘다가도 추상적이고 시적인 표현들이 불쑥 나서면 또 낙담하였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이제 글쓰기를 떼고 시짓기로 넘어가야겠다고 다짐했을 지도 모른다.

 

재작년에 충북인재평생교육진흥원에서 개최한 문해교육 시화전에 가보았다. 시·군 지역에서 예선을 거쳐 올라 온 작품들이니 모두 만만찮았다. 그 중 오랫동안 머물며 읽은 시가 '엄마 문자로 하세요'였다. 학교 청소에 식당 설거지로 생업을 이끈 어머니가 이민 간 딸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시다.

 

딸은 야속하게도 문자를 남기라고 말하지만 어머니는 시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듣고 싶은 목소리 참으며 한자 한자 익힌 글자로 딸아, 언젠가 멋있게 편지를 쓰마.'

 

또 최근엔 음성군 설성평생학습관에서 문해교육 강의실을 엿볼 수 있었다. 박장대소에 강의실이 들썩들썩하여 물어봤더니 중등 검정고시 합격생 어머니들이 4명이나 나왔다고 했다. 무엇보다 초등학력 인정 문해교육을 이제 마친 지 3개월 밖에 안되었는데 시험삼아 공부해서 모두 합격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대단하다고 연신 박수를 치면서도 어머니들이 살아 온 인생의 윗목이 얼마나 춥고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매년 9월이 되면 세계 문해(文解)의 날(International Literacy Day)을 맞아 전국이 들썩인다. 유네스코는 세계 문해의 날(9월 8일)을 기념하여 문해상을 제정하였는데, 그 이름이 세종대왕 문해상(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이다. 이제는 윗목이 차가우니 아랫목으로 앉으실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문해교육이 그런 자리를 만든다. /임경수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교수/성인학습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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