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계가 전동화 시대에도 노조 리스크와 비용 감축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무시할 수 없었던 탓이다. 효율성에만 초점을 맞춰 위기를 피하고 있는 테슬라에도 새삼 이목이 쏠린다.
20일 외신 등에 따르면 전미 자동차 노조(UAW) 1만2000여명 조합원들은 이달 초부터 GM과 포드, 스텔란티스 등 3대 자동차 업체 공장에서 파업을 진행 중이다.
◆ 완성차는 위기, 테슬라는 기회
UAW는 높은 임금 인상과 근무 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완성차 업계가 적극적으로 협상안을 제시했지만 모두 거부한 상태다.
파업은 쉽게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UAW를 지지하는 상황, UAW도 22일(현지시간)까지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파업을 확대하겠다는 성명도 발표했다. 현지 여론도 파업을 찬성하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현지에서는 이번 파업이 자동차 산업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힐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재닛 옐런 재무부장관 등 정치인들도 양측이 입장을 좁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파업이 끝난다고 해도 미국 자동차 산업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적지 않은 임금 인상으로 원가 인상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UAW 측에서는 차량 가격에서 임금 비중이 매우 적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파업 후에 미국 완성차 가격이 적지 않게 오를 것이라는 분석은 이어지고 있다.
테슬라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여기에서 나온다. UAW 소속이 아니라 파업을 피한 테슬라. 당장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데다가 '노조 리스크'와는 관계가 없는 안정적인 경영을 보여줬다는 이유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도 '이미 일론 머스크가 승리했다'는 제목으로 UAW 파업을 보도하기도 했다.
테슬라 주가도 UAW 이후 상승세다. 지난 8일 248달러였지만, 다음 거래일인 11일에는 273.58달러로 상승해 19일 기준 266.5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16일에는 SNS에 15년 만에 500만번째 생산 소식을 알리며 격화하던 UAW 파업에도 변하지 않는 생산성을 과시했다.
아울러 테슬라 인공지능(AI) 컴퓨터인 도조에 대한 기대감도 주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지난달 카메라와 인공지능만으로 구현한 완전자율주행(FSD) 영상을 공개하면서다. 테슬라에 중립적인 입장이었던 모건스탠리도 도조에 대해 호평을 내기도 했다.
◆ 목숨보다 효율 '혁신' 효과
테슬라가 완성차 업계와 비교해 높은 생산성과 가격 경쟁력을 보유할 수 있었던 이유는 효율성에만 초점을 맞춘 사업 구조로 평가된다.
테슬라는 처음 생산을 시작할 때부터 공정에 투입하는 인력을 최소화하는데 중점을 뒀다. 생산 지연이나 제품 하자 발생에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정도다.
윤리도 무시했다. 자율주행 기능이 불완전했을 때에도 '완전자율주행'이라고 소개하고 무분별하게 데이터를 수집, 이를 이용해 AI를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완성차 업계는 이런 이유로 섣불리 테슬라를 따라가지 못해왔다. 대대적인 전동화를 위해서는 대규모 사업 개편과 구조조정이 불가피했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던 것.
한 업계 관계자는 "내연기관을 만들다가 전기차를 만들면 인력을 절반 가까이 줄이는 것뿐 아니라, 부품을 공급하던 협력사들까지 도산할 수 밖에 없었다"며 전동화를 빠르게 추진하기 어려웠던 이유를 설명했다.
자율주행 기능도 마찬가지다. 완성차 업계는 판매 차량이 아닌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테스트카로 자율주행 데이터를 확보해왔다. 카메라만 쓰면 인간과 같이 만에 하나라도 사고 가능성이 남아있는 만큼, 레이다와 라이다 등 다양한 센서를 함께 쓰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테슬라와 같이 소비자 목숨을 담보할 수는 없었다는 것.
테슬라와 같이 상용차에 자율주행 기능을 우회적으로 넣을 수도 없었다. 당초 기존 완성차사들은 OTA도 불법이었고, 규제 샌드박스가 시행 중인 최근에도 자율주행과 관련한 기능은 승인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온라인에는 테슬라 차주들이 국내 도로에서 손을 놓고 오토파일럿을 작동하는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능을 여는 방법도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다. 반면 해외 완성차 업계가 양산하고 있는 3단계 자율주행 차량은 국내에 출시되지도 못했다.
국내법상 특정 구역에서 승인받은 차량이 아니면 일정 시간 손을 떼고 달리면 불법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지원하는 기능이 아니라 단속할 방법도 없다.
◆ 완성차도 이제는 Be 테슬라로
테슬라가 '승승장구'하면서 완성차 업계도 결국은 테슬라를 따라가는 모습이 감지된다. 생존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이유다.
지난해 테슬라가 가격을 크게 인하한 사건이 분수령이 됐다. 당초 완성차 업계는 테슬라 고가 정책에 맞춰 전기차 수익률을 지켜고 천천히 전동화를 추진했지만, 테슬라가 가격 인하에 나서면서 자칫 시장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공포가 형성된 영향이다.
GM은 2019년 전세계적인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지 4년여만인 올 초에도 전세계 사무직 5000명을 감축했다. 포드와 폭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들도 유럽에서 각각 수천명을 정리해고하며 '혁신'을 단행했다.
국내에서도 인력 감축은 현재 진행형이다. 완성차뿐 아니라 부품업계까지도 일부에서는 꾸준히 희망퇴직을 진행 중, 그렇지 않더라도 신규 직원을 채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규모를 줄여가고 있다. 하반기에 현대자동차·기아 정직원 숫자가 상반기보다 2500명이나 줄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가 대폭 가격을 할인하면서 인력 감축에 부정적이던 여론도 크게 줄었다"며 "국내 자동차 공장들도 정년 퇴임을 앞둔 인력 비율이 매우 높다. 그러면서도 신규 채용을 막으면서 5년에서 10년 이후에는 자연스러운 인력 감축 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정 혁신도 준비하고 있다. 완성차 업계는 그동안 기존 공장을 전동화에 맞게 리뉴얼하거나, 컨베이어 벨트를 없애고 운송 로봇을 확대해 혼류 생산을 가능케하는 방식을 추진하면서 효율을 높여왔다.
다만 지원금 등을 감안하면 새로 짓는 것과 비교해 비용이 적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때문에 전기차 공장을 새로 만들고 내연기관 공장을 추후 매각하는 방식도 검토 중으로 전해진다. 미국 GM과 포드가 일찌감치 전세계 각지에 있던 공장을 매각한 것도 전동화를 대비한 전략이었다.
섀시를 한번에 찍어내는 '기가캐스팅'도 도입할 수 있게 됐다. 기가캐스팅은 여러 부품으로 나뉘었던 섀시를 금형 한번에 찍어내는 방식이다. 공정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대신, 공급망이 붕괴될뿐 아니라 여러 소재를 사용해야 하는 섀시 특성상 품질 저하 우려가 있어 쉽게 도입되지 못했던 기술이다. 앞서 완성차 업계에서는 캐스팅 한단계 씩 크기를 키우며 소재 특성과 안정성을 확인해왔다.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테슬라처럼 사회적 책임을 포기하고 효율성을 더 중시할 수 밖에 없게 됐다"며 "테슬라에는 관대하지만 여전히 완성차에는 가혹한 여론은 여전히 부담되는 부분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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