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가와이 하야오 지음/고은진 옮김/문학사상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는 제목만 보고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 문학계와 애니메이션계의 두 거장이 만났다는 얘기인 줄 알고 집어 든 책이다. 허나 하루키와 이야기를 나눈 이는 일본에 융 심리학을 최초로 소개한 임상 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였다. 소설가와 애니메이션 감독은 무슨 말을 주고받을까 라는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두 지성의 대화라 그런지 책 내용은 꽤 만족스러웠다.
하루키는 영어로 번역된 자신의 소설을 읽은 미국인 학생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어딘가 공감이 잘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면서 미국의 독자들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감탄하거나 재밌어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아시아인 독자는 책을 본 감상이 대체로 일본인과 비슷했다는 말을 덧붙인다.
하루키는 아시아인 독자들이 원하는 건 '분리'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사회와 별개의 삶을 사는 것, 부모와 다른 생을 사는 것, 그런 것을 소설 속에서 찾아내고 어느 정도 공감한다는 것이다. 하야오는 하루키의 이야기를 흥미로워하며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앞으로 '분리'가 매우 큰 과제가 될 거라고 전망한다. 두 나라에서는 가족이나 가문의 유대가 무척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목숨을 거는 일이란 이유에서다.
하야오는 한 한국인이 자신에게 씨불인 뇌피셜(뇌와 official을 합성한 신조어, 자신의 생각만을 근거로 한 추측) 하나를 들려주며 자신의 의견을 덧댄다. 그는 하야오에게 한국은 일본에 비해서 너무 급속하게 서양화되는 바람에 사람들이 굉장히 이기주의적으로 변했고, 개인주의가 몹시 심해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려 하는 반면, 일본인은 서양화되면서도 전체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한국 사람들이 이를 본받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하야오는 "한국인은 개인주의가 아니라 가족에서 자신의 동일성을 인식하는 '패밀리 에고'를 갖고 있고, 이는 서양의 개인주의와는 다르다"며 "한국의 경우 패밀리 에고 밖으로 나오면 그때는 정말로 에고이즘이 되기 때문에 개인주의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 중에서 참다운 의미의 개인주의에 눈뜬 사람은 가족으로부터 분리되려고 한다"며 "이것은 엄청난 기폭력을 필요로 하고, 그래서 하루키의 소설에서 분리적인 면을 읽고 감동하는 사람이 많은 걸지도 모른다"고 짚는다. 176쪽. 1만2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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