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가 수익성 악화로 인한 위기 상황에 직면한 가운데, 신사업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본원 사업인 정유에서 벗어나 '탈정유' 방향으로 트는 분위기다.
이러한 정유사들의 행보는 유가·정제마진 등락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불안정한 수익성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정유 사업 의존도를 낮추고 새 먹거리로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겠다는 취지가 담겨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에서 원유 가격을 뺀 값으로 정유업계의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다.
◆ 친환경 'SAF' 선점 경쟁 불타올라…정부도 힘 합쳐야
최근 주요 국가들의 지속가능 항공유(SAF)에 대한 전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국내 정유사도 글로벌 동향에 맞춰 SAF 개발과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SAF는 폐식용유, 동·식물 기름 등을 이용해 만들어지며 기존 연료 대비 최대 80%까지 탄소 절감 효과가 있다.
항공 업계에 따르면 EU를 필두로 전 세계적인 SAF 사용 의무도 강화되고 있다. EU는 SAF혼합 비율을 2025년 2%에서 2050년 70%로 단계적으로 높이며 이를 지키지 않으면 항공사에 제트유 가격의 2배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영국과 일본도 이에 동참해 2030년 SAF 사용 10%를 목표하며 더 이상 항공업계 내에서 SAF사용은 선택사항이 아니게 됐다.
이에 따라 국내 정유사도 SAF 시장 선점에 불을 지피고 있다. 에쓰오일은 국내 정유사 최초로 SAF생산 공식 인증 탄소 상쇄 및 감축제도(ISCC CORSIA) 인증을 획득해 지난 1월부터 바이오 원료를 정비 설비서 처리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에쓰오일의 SAF는 기존 항공유 대비 온실가스를 약 90% 저감할 수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국내 최초로 SAF 수출에 나선다. 회사가 생산한 SAF는 일본 트레이딩 회사 마루베니에 공급될 예정이며 이는 ANA항공에서 사용된다. 일본이 SAF를 한국으로부터 수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수출을 통해 HD현대오일뱅크는 국제 SAF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타 정유사들도 SAF 인증 및 개발에 속도를 내는 건 마찬가지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말 SAF 생산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이며, 2026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SAF의 재료가 되는 폐식용유 등 원료 확보를 위해 중국과 한국, 미국 업체들에 지분 투자를 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지난해부터 대한한공과 SAF 시범 운항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세계 최대 바이오연료 생산 기업인 핀란드 네스테로부터 SAF를 공급받아 인천~로스앤셀레스(LA) 노선 화물기를 통해 시범 운항을 진행한 바 있다. 원료 확보를 위해 인도네시아에 바이오 정제공장 건설도 추진 중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SAF 상용화 기술 개발, 보급, 확산 및 부처 간 원스톱 컨트롤타워 구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해당 기반이 갖춰줘야만 SAF 분야에서 수출 강국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세제 지원이나 인센티브 등 혜택을 확대하고 기업과 함께 연구를 활발히 진행한다면 국내 업계도 SAF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 뜨거운 데이터센터 식혀라…액침냉각에 집중
정유업계는 액침냉각유 경쟁에도 한창이다. 인공지능(AI) 확대에 따라 방대한 데이터 처리로 뜨거워진 데이터센터를 식히기 위해 윤활유 일종의 액침냉각유의 수요가 커지고 있어서다. 액침냉각은 서버나 배터리 등 열이 발생하는 전자기기를 전기가 통하지 않는 비전도성 액체에 직접 담가 냉각하는 기술이다.
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액침냉각 시장은 지난 2022년 2억4400만달러(한화 약 3300억원)에서 2030년 17억1000만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규모는 연평균 24.2% 증가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공기 냉각을 이용하는 공랭식과 비교해 소모 에너지가 낮아 에너지 효율이 높은 장점이 있다. 공랭식은 데이터센터 총사용 전력의 40%를 사용하는 데 반해 액침냉각은 6%만 사용한다. 또한 서버 하드웨어 고장의 주된 원인인 발열과 먼지, 수분 등을 제거해 기기의 불량 가능성을 낮추고 수명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
액침냉각유 시장에 먼저 진출한 업체는 SK엔무브와 GS칼텍스가 있다. 국내 선두주자인 SK 엔무부는 지난 2022년 데이터센터 액침냉각 시스템 전문 기업인 GRC에 2500만달러 규모 지분을 투자해 관련 사업의 시작을 알렸다. 지난 2023년에는 SK텔레콤 데이터센터에 액침 냉각 기술을 실제 시현해 기술을 검증받았다.
GS칼텍스는 지난 2023년 11월 액침냉각유 브랜드 '킥스 이머전 플루이드 S'를 출시한 바 있다. 해당 제품은 인체·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협력업체들과 실증평가를 통해 제품 성능을 검증했다.
에쓰오일 또한 지난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액침냉각유 사업 진출 공식화를 선언했다. 에쓰오일 측은 "당사의 윤활유 사업 규모 측면에서 차별적 경쟁력을 고려해 액침냉각유 시장에서 적극적인 기회를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개별 센터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시제품 라인업을 구비했다"며 "금년 내 실증 평가를 통해 서버의 안정적인 구독 및 구동 효율, 에너지 절감 성능 등을 검증할 예정"이라 언급했다.
정유사들은 윤활유와 윤활기유 시장의 강자다. 윤활유는 윤활기유에 첨가제를 더해 생산한다. 액침냉각유 역시 윤활유의 한 종류다. 윤활기유 시장은 국내 업체를 포함해 대규모 정제설비와 원유도입 능력을 모두 갖춘 소수 업체가 세계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한국 정유업계가 액침냉각유 시장 선점을 자신하는 이유다.
윤활유 사업부는 정유사 실적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매출 비중은 작지만 영업이익률은 전 사업부에서 최고 수준이다. 정유 4사(HD현대오일뱅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의 윤활유 부문 영업이익률은 20.4%로 정유 부문 평균 영업이익률인 1.9%와 비교하면 10배가 넘는 수치다. 지난해 윤활유 사업 부문에서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은 각각 9978억원, 8157억원을 영업이익을 거뒀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아직 액침냉각유 사업은 초기 단계"라며 "에너지 효율과 절감 등 여러 성능을 점검하며 다양한 산업군에 적용될 맞춤 제품을 개발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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