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안 하는 일 가운데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되, 어디까지나 국민경제에 유익하고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차체 빼고 다 만든다는 LG가 탄생하기 까지는 '인화단결'을 외친 구인회 창업회장의 정신에서 비롯됐다. 구인회 창업회장은 1940년대 당시 수차례 전쟁을 거치며 볼모지나 다름 없던 우리나라에 '기술입국(技術立國)'을 시키며 피폐해진 국민들의 생활상을 바꾸었다.
LG전자의 매출은 지난해 84조 2278억원으로 3년 새 20조원 넘게 늘었다. 영업이익도 같은 기간 3조 1950억원에서 3조 5491억원으로 개선됐다. 주력 사업인 특히 전장 사업은 연 매출 10조원을 돌파하며 LG전자는 4대 그룹 위상을 견고히 하고있다.
이같은 전자 산업강국이 탄생하기까지는 구인회 창업회장의 '개척정신'과 '인화정신'이 밑거름이 됐다.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당장의 이익보다는 '인화(人和)'를 우선시했다.
이는 구 창업회장이 창업 당시 친인척간 소규모 회사를 운영하면서 서로 신뢰하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자는 정신에서 비롯됐다. 특히 LG는 다른 그룹과 달리 창립 이후 몇 십년 간 잡음이 없었던 회사로 유명한데, 이는 창업자의 경영이념인 '인화단결'을 중심으로 회사가 운영되면서 안정적인 성장을 이뤄왔다.
◆일제강점기, 가족과 '상업' 도전…인화정신 구축
구 창업회장의 경영이념은 일제강점기 시절 원대한 꿈을 품은 그의 청년 시절로부터 구축됐다. 구 창업회장은 끝없는 도전으로 포목상, 청과·어물전, 운수업 등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뒤 47년 럭키크림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업인생을 걸었다.
1930년 대 당시 우리나라는 전쟁으로 인해 플라스틱 칫솔 하나 만들지 못할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다. 하지만 구 창업회장은 집안을 설득해 옷감을 떼다 파는 포목점을 개업하며 전자 산업강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당시 구 창업회장 집안은 조부가 조선시대에 높은 벼슬에 올랐을 만큼 뿌리 깊은 유교 집안으로, 상업은 비천한 직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구 창업회장은1931년에 진주에서 첫째 동생 구철회와 함께 구인회상점을 설립해 포목상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둘째 구정회씨는 동경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평안남도청 토목과에 잠시 근무하다 형의 사업을 도왔다.
이후 구 창업회장은 광복 직후인 1947년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화학공장 건물 일부를 사들여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세우고 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 크림을 만들었다.
락희화학경영도 대부분 가족이나 사돈(허씨)들이 도맡아 했다. 47년 락희화학 설립당시 생산담당이었던 김준환씨를 제외하면 구 회장, 둘째동생 구정회,영업담당 허준구(첫째 동생 철회씨 사위)씨 등으로 사실상 '가족기업'이었다. 이에 구 창업회장은 ▲인화단결 ▲개척정신 ▲연구개발 등을 중심으로 회사를 경영했으며 현재도 그의 정신이 이어져오고 있다.
인화정신을 바탕으로 구 창업회장은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국내 최초로 사출성형기를 도입하여 플라스틱 사업을 시작했다. 전쟁 등 어수선한 시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는 대부분의 락희화학 임원들의 만류에도 구인회 창업회장은 플라스틱 연구 개발을 시작한 것,
구 창업 회장은 "세상살이란 눈을 크게 뜨고 먼 장래를 내다보면서 살아야 하는 법이다. 눈 앞의 이익만 살피거나, 어려운 일을 피하고 요령 부리며 산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또 한 번 도전해 보자" 며 임직원들을 다독이며 인화와 동시에 '개척정신'을 발휘했다.
이후 우리나라는 6.25전쟁 이후 산업시설의 45% 이상이 파괴된 가운데서도 편리한 플라스틱용품을 공급받아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된다. 구 창업회장은 이때 쌓은 제조 기술을 발판으로 구 회장은 1959년 주식회사 금성사(지금의 LG)를 세우며 재벌을 형성했다.
이후 구 창업회장은 라디오, TV 등 전자제품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며 산업 볼모지에 '기술입국(技術立國)'을 성공했다. 이에 다. 이에 국내 생산과 고용을 끌어올리며 국민 생활 수준을 크게 개선시킨다.
◆개척정신, 한국경제 도약 기틀 'AI기업 전환'
구 창업회장의 인화정신과 개척정신은 한국경제가 도약하는 데 크게 이바지 하게된다. 구 창업회장의 경영철학 중 하나인 '연구개발'은 그의 개척정신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생산업자가 국민의 생활용품을 차질 없이 만들어 대는 일도 애국하는 길이다. 군인들이 일선에서 싸우듯이 우리도 새로운 사업을 착실히 추진해서 반시 성공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구 창업회장은 나라의 문화 발전에도 힘쓴다. 그는 생전 가족들에게 "돈을 벌기만 했는데 사회에 기여하려면 무슨 방면에 쓰면 좋을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후 LG는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에 문화재단의 설립 계획서와 함께 허가원을 제출했고 당시 정부는 크게 환영하면서 문화재단 설립을 승인했다고 한다. 이에 탄생한 것이 우리나라 기업 최초의 공익 재단인 연암문화재단이다.
구 창업회장의 개척정신을 이어 LG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LG전자는 전 세계 가정을 LG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최근 1000여 개 브랜드의 5만여 종, 수십억 대의 전자기기를 한 번에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홈' 플랫폼 앳홈(Athom)을 인수했다. 특히 LG의 AI연구원은 지난 2021년 초거대 AI '엑사원'을 선보였다. 지난해 멀티모달(언어와 이미지 양방향 생성) 모델로 진화한 '엑사원 2.0'을 공개했다.
LG생명과학 본부는 지난해 연 매출 1조원을 넘겼다. 이어 최근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신약(신장암 치료제·포티브다)을 보유한 아베오 파마슈티컬스를 인수해 미국 시장의 신약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계획이다. 실제 LG화학은 최근 연구개발(R&D) 지원을 늘리고 있다. 신약 개발을 위한 R&D 예산을 2020년 1740억원에서 지난해 약 400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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