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클라크 지음/이연식 옮김/소요서가
문명이 무엇인지를 단 몇 문장으로 정의하긴 어렵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상대해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를 뜻한다'고 '문명'의 의미를 풀어냈으나,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국립국어원은 그 바로 뒤에 '흔히 문화를 정신적·지적인 발전으로, 문명을 물질적·기술적인 발전으로 구별하기도 하나, 그리 엄밀히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는 다소 아리송한 단서를 달아 놓았다.
'문명'이라는 제목의 책에는 그 해답이 제시돼 있을까. 문명의 저자인 영국의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는 첫 장에서 '나는 문명이 뭔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그는 문명을 추상적인 용어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무엇이 문명인지 식별할 수는 있다고 이야기한다.
클라크는 영국의 미술비평가이자 화가인 로저 프라이가 소장했던 아프리카 가면과 벨베데레의 아폴론을 비교하며 왜 후자만이 고도의 문명을 구현한 작품이 되는지를 설명한다. 책은 "양쪽 모두 인간이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또 다른 세계의 어떤 정신을 표상한다"면서 "아프리카 가면의 상상세계는 아무리 작은 금기의 위반에 대해서도 곧바로 무서운 형벌이 가해지는 공포와 암흑의 세계이며, 고대 그리스 조각상의 경우 빛과 자신감의 세계다"고 밝힌다.
사람과 비슷한 형상이지만 우리보다 월등하게 아름다운 그리스의 신상은 인간에게 이성과 조화를 가르치려고 지상에 내려온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클라크는 "어떤 시대인지 특정할 수는 없지만, 인간은 매일같이 생존경쟁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밤의 공포와 싸우는 한편,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육체와 정신 양면에서 어떤 소질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며 "그리고 이성, 정의, 몸의 아름다움을 두루 갖춘 조화로운 완전성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사고와 감각의 소질을 발전시킬 필요성을 깨달았다"고 분석한다.
인간은 이 필요를 신화를 통해, 춤과 노래를 통해, 철학체계를 통해, 그리고 시각적인 질서로 채워 나갔다. 책에 따르면, 약 2000년 전 그리스에서 만들어낸 이 신상은 인간 상상력의 소산인 동시에 이상의 표현이며,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비범한 창조였다.
저자는 문명은 활력과 의지와 창조력 이상의 그 무엇이라고 역설한다. 바로 영속에 대한 감각이다. 방랑자나 침입자는 늘 유동적인 상태에 놓여 있었고, 그들은 미래 대신 당장 오늘의 전투만을 고민했다. 그래서 돌로 된 집을 짓거나 책을 저술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문명인이라면 적어도 공간과 시간의 양면에서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알고, 자신이 지나온 곳과 나아갈 길을 의식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496쪽. 2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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