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민을 가 새벽 시장에서 야채를 팔던 작은 여인은 현재 점포만 22개, 연 매출 500억원을 벌어들이는 요식업 프랜차이즈 대표가 됐다.
오스트리아에서 아시아의 맛으로 현지인들을 사로잡은 전미자 아카키코 회장(CEO) 이야기다.
-'아카키코'에 대해 소개 부탁드린다.
"1994년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에는 상호명이 '오스시'였다. 그 때는 메뉴가 스시와 마끼밖에 없었다. 작은 쇼핑몰 내 푸드코트에 입점한 거라 회전율이 높은 음식이 스시라고 판단해 메뉴 선정을 했다. 2년동안 운영하면서 좀 더 일본스러운 브랜드명으로 바꿨는데 그게 '아카키코'다. 별 뜻은 없고, 단지 받침이 없으며 일본 느낌이 나서 정한 상호명이다. 그러면서 메뉴도 늘렸고, 현재는 한·중·일식은 물론, 베트남 요리까지 100가지가 넘는 메뉴를 판매하고 있다. 한국 음식으로는 인기있는 메뉴가 불고기 덮밥과 비빔밥이 있다."
-오스트리아로 이민가게 된 배경과 초기 정착 과정이 궁금하다.
"이민갈 당시 결혼할 사람이 비엔나에서 공부중이었다. 그때만해도 외국인이 현지에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은 간호사였기 때문에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처음에는 양로원에 취직했고, 거기서 1년동안 일하면서 독일어를 피눈물나게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첫 애를 임신하게 됐고, 육아휴직 동안 복직을 해야하나, 다른 길을 찾아볼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 '나쉬마르크트'라는 재래시장에서 자리 한 칸을 인수하고 야채를 팔기 시작했다. 재료보는 눈이 그때 생긴 것 같다. 야채 가게를 운영하면서 직접 재료를 사입하고 팔다보니 보관법과 재료 속성을 자연스럽게 파악하게 됐다."
-요식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둘째를 낳고 몸이 너무 힘들었다. 새벽 3, 4시에 큰 차를 몰고 물건을 떼와서 저녁까지 시장에서 장사를 하다보니 몸이 성치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젊고 열정이 있으니까 그렇게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서울식당'이라는 식당을 인수했고, 야채 가게와 같이 하기에는 버거워서 식당에 올인하게 됐다. 그때가 1985년이었다. 고추장과 간장 등 소스는 한국에서 공수해서 사용했고, 외국 고기 질이 워낙 좋아서 불고기를 판매했다. '아카키코'의 모태였던 '오스시'는 9년 뒤인 1994년에 시작했다. 노르웨이에서 오는 연어가 너무 싱싱했고, 그 연어 때문에 일식에 뛰어들게 됐다."
-외국인들은 해산물에 대한 호불호가 있지 않나. 왜 스시였나.
"그때만해도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해산물을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다. 스시와 같은 날생선은 먹지 않았었다.그래서 연어나 참치 등을 아주 얇게 썰어서 양념한 밥에 올렸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볼 법한 두툼한 초밥이나 스시를 생각하면 안된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지금은 연어를 1년에 150t이상 쓴다. 쌀도 100t 넘게 사용하는 것 같다. 품질 좋은 재료를 사용하다보니 음식이 맛있을 수밖에 없고, 손님도 많이 유입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꾸준히 사업을 확장하다보면 음식 판매 외에 직원을 관리하는 것도 힘들었을텐데.
"우리 업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대부분이 이민자다. 나처럼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가는 것 같고, 한 회사에서 근무를 한다는 것은 한 배를 탄 것과 마찬가지다. 2008년 오스트리아가 경제위기를 맞았을 때 직원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20~30%를 해고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하고 이겨내보자'고. 그때 함께했던 직원들이 지금까지도 아카키코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신선한 재료와 직원을 위한 복지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게 나의 철칙이다."
-'아카키코' 외에 '요리', '김치' '우리끼리' 등 체인 브랜드도 늘리고 있다. 현지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2~3개월의 주기를 두고 내부 회의를 거쳐 신메뉴를 선보인다. 빈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가는 도시이기에 다양한 방문객의 입맛을 만족시키려면 기존 메뉴에 안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오스트리아 경제지가 선정한 여성 경제인이면서 영향력있는 인물로 알려졌는데 소감은.
"2014년 오스트리아 경제지가 선정한 여성 경제인 10인에 들었다. 외국사람으로는 유일했다. 사업을 크게 해서 선정된 건 아니고, 이민자들의 직업 창출과 복지 등을 높이 평가한 것 같다. 또 오스트리아에 정착한 한국인들을 위해서도 문화 사업을 전개하고 후원하고 있다. 현지에 한인문화회관이 있는데 거기 관장으로 있고, 한글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한인문화회관은 한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으로 합창단도 있고, 태권도, 사물놀이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150명의 한인들이 그 곳을 이용한다. 돌아보면 참 성실하게 살았던 것 같고, 현지인들이 인정해줬다는 게 뿌듯하고 감사하다."
-젊은 요식업 예비 창업자들에게 하고자 하는 조언이 있다면.
"한국 사람들은 빨리 목표를 이루고자 한다. 그래서 한국사회가 발전이 빠른 걸 수도 있지만, 빠른 성공만 추구하다보면 작은 위기에도 크게 낙담하고 실망하게 된다. 지금의 전미자가 있기까지 30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요식업을 떠나 모든 분야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전진해 나아간다면 성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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