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uck stops here."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에는 저런 문구가 명패에 새겨져 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이다. 국정 운영의 최종 결정권자로서 당당함과 자신감을 보여주는 문장이다.
그러나 지금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대통령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안 시정연설도 11년 만에 불참하고 한덕수 국무총리를 내보내 국정 운영방안을 대독했다. 대통령실은 "야당이 탄핵집회까지 하는 등 최소한의 예우를 지키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시정연설에 갈 수 있겠나"라고 설명했지만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채 상병 사망사건에서부터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명품백 수수 의혹, 명태균 녹취록 파문 등으로 정치권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혼돈스러운 정국의 중심에는 용산 대통령실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한 때는 한 솥밥을 먹었던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가 대통령실의 해명과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을까 싶다.
이런 이슈 가운데 일부는 법적으로 해결됐다고 하지만 그건 순전히 법적으로만이다. 법과 '민심'에는 괴리가 있다. 법리적으로는 죄가 없어도 심리적·윤리적으로는 죄가 있을 수 있고, 법은 무죄를 선고해도 사람들의 마음에는 유죄인 경우가 많다. 대통령과 참모진 중에 율사들이 많아 법적인 유·무죄만 중시하는 건지는 몰라도, 이는 민심을 헤아리는 처사가 아니다.
이런 민심을 야당은 활용하고 있다. 지난 주말부터 야권에서 서서히 장외투쟁에 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거야인 민주당은 '탄핵' 얘기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이는 '아직까지'다. 조국혁신당에서 이미 탄핵 얘기를 꺼내고 있어 민주당이 언제 탄핵 대열에 동참할지는 시간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 대통령실에 대한 공세는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5일에도 민주당은 명태균씨의 또 다른 녹취록을 공개했다. 명씨는 증거를 모두 불태우겠다고 했지만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닌 것으로 보이며, 잇따른 녹취록 공개가 이를 증명해준다. 명태균 씨를 둘러싼 스캔들이 앞으로도 줄줄이 나와 현 정권의 존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치권 인사들은 일련의 사태에 대해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대통령 주변 참모들의 '정무적 감각'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다. 지난 4월, 소위 '대파 사건'에서도 윤 대통령이 대파 가격이 합리적이라고 발언했던 건 주위 참모들의 잘못된 정보제공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왔는데, 지금까지 일련의 상황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특히나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까지 불참한 것은 결정적 판단 오류였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The buck stops here'가 아니라 'Pass the buck(책임은 나에게 없다)'이란 행태만 보여준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7일 기자회견을 통해 일문일답 형식으로 모든 문제에 대해 진솔한 대답을 하겠다고 한다. 이번 기자회견에 진정성이 있으려면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걸 보여야 한다. 모든 의혹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고, 윤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은 채 정보를 왜곡·제공하는 주위 인물들에 대한 쇄신도 결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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