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한 채를 통째로 빌린 실험이 있었다. 2004년에 MIT 미디어랩의 윌리엄 미첼 교수가 시도했던 플레이스랩(PlaceLab)이라는 실험이다. 이 실험은 인간 행동과 공간 사용 데이터를 첨단기술로 분석하여 스마트 환경과 인간 중심 설계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연구였다.
미첼 교수는 센서와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해 주거 및 도시 공간을 실험적으로 분석하며 스마트 시티와 데이터 기반 설계의 토대를 마련했다. 기술과 도시의 융합을 통해 더 효율적이고 인간 친화적인 미래를 설계하는 데 앞장섰다. 아파트 한 채에 이르는 이 거대한 실험실을 '살아 있는 실험실(Living Laboratory)'이라고 명명했다.
미첼 교수의 실험이 기억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유럽 대륙이 거대한 실험실이 되었다. 2006년이니까 유럽연합(EU)은 미첼 교수의 아이디어를 빌려 재빠르게 '살아 있는 실험실 네트워크(European Network of Living Labs)'를 만든 셈이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큰 실험실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 '유럽리빙랩네트워크(ENoLL)'를 꼽아야 할 것이다.
ENoLL은 혁신적인 사용자 중심 접근 방식을 기반으로 한 실험 공간을 지원하고 확산시켰다. 예를 들어보자. 2016년에 독일 함부르크 주민들은 750명에 이르는 난민들의 거주지를 찾아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난민들을 위한 장소찾기 프로젝트라 하여 파인딩플레이스(Finding Place)라 명명된다.
함부르크 주민들은 증강현실 지도를 이용해 난민 주거 적합지를 34회에 걸쳐 시뮬레이션한 끝에 6개의 장소를 지방정부에 건의했다. 이렇게 파인딩플레이스는 시민과 공공기관이 협력하여 난민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지원하고 지역사회의 포용성을 강화한 성공적인 사례로 주목받았다.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에 비유하자면 '지붕 없는 실험실'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2014년 즈음부터 우리나라에도 '지붕 없는 실험실'이 전개되었다. 북촌 IoT 리빙랩, 건너유 프로젝트, 성대골 에너지 리빙랩은 기술과 시민 참여를 결합해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대표적인 리빙랩 사례다.
서울의 북촌 IoT 리빙랩은 스마트 기술을 활용해 전통 한옥마을의 관광 및 생활 환경을 개선했고, 대전의 건너유 프로젝트는 지역 주민의 교통 안전을 위한 IoT 기반 솔루션을 실험했다. 서울 동작구 성대골 에너지 리빙랩은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에너지 절약과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실천하며 지속 가능한 지역 모델을 제시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지붕 없는 실험실인 리빙랩은 지역사회를 살아 있는 실험실로 전환하며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낸다. 시민, 기업, 공공기관이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실험하며, 이는 기술과 정책이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혁신의 장이 된다. 리빙랩은 단순한 연구를 넘어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포용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살아 움직이는 실험의 본보기다. /임경수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교수·성인학습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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