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지음/뿌리와이파리
'주제'는 철학자 강유원의 서평을 '책과 교양', '역사', '근대', '파시즘', '전쟁', '한국과 동아시아'라는 6개 주제로 묶어 펴낸 책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상징의 정치화, 정치의 심미화'를 다룬 부분이다. 일제 군부가 '사쿠라(벚꽃)'에 대한 이미지를 조작해 '가미카제(전쟁 때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자살 공격을 한 일본군 특공대)'를 양산해낸 과정이 자세히 기술돼 있는데, 지배 계층의 음침함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책에 따르면, 사쿠라는 군부에 의해 전사를 미화하기 위한 상징적인 도구로 변용되기 시작했다. 확 피었다가 지는 벚꽃처럼 젊은이들이 천황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희생하면, 천황이 참배 '해주시는' 야스쿠니 신사의 사쿠라로 환생한다고 약속한 것. 원래 야스쿠니 신사의 벚나무는 그 꽃의 아름다움으로 유신 때 목숨을 잃은 막부 타도파 지사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심었던 것이나, 군국화가 가속화되면서 정부에 의해 상징적 의미가 변질돼갔다고 책은 설명한다.
사쿠라의 의미 변용 과정에는 미화 혹은 미적 가치의 부가라는 수단이 사용됐으며 교과서, 창가, 유행가 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권력은 교육을 통해 정치화된 상징을 보급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힘의 토대인 권력 관계를 은폐한 채 의미를 새겨 넣었으며, 거기에 다시 정당성을 부여했다.
벚꽃은 점차 '천황(=국가)을 위한 희생' 이데올로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흐드러지게 폈다 지는 사쿠라의 아름다움은 젊은이들의 죽음과 동일시됐고 이는 특공 작전에서 극단적인 방식으로 나타났다. 책은 벚꽃의 상징적 의미에는 상징적 오인을 촉진하는 여러 요인들이 갖춰져 있다고 강조한다. 본래 사쿠라는 삶과 환생, 둘 다를 상징했고 특공대원 역시 이러한 의미장 속에서 벚꽃을 이해했다. 그러나 군부는 사쿠라에 의한 상징적 표상의 균형을 변화시켜 죽음을 전면에 내세웠다. 군부에게 벚꽃은 '천황을 위한 죽음'을, 특공대원에게 사쿠라는 '환생'을 의미했다.
저자는 "상징 기호는 본질적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매개로 한 의사소통에서는 반드시 오인이 일어난다"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 의미는 천차만별일 것이나 사회과학적 인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사용되는 상징 기호들은 로맨틱한 열정에 호소할 뿐 '지금 여기, 나'의 구체적 삶과는 무관하다"고 지적한다. 284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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