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업계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 계엄령 사태에 따른 후폭풍에 직면했다. 그동안 우려했던 문제가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12·3 비상계엄 선포,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부결 여파 등으로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이 치솟는 등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정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면서 주요 경제 법안들까지 멈춰 서며 위기감은 확대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경제 첨병인 산업계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수십 년째 우리 경제의 선봉에 있는 반도체 업계는 글로벌 경쟁 심화와 기술 패권 경쟁으로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정치적 불확실성마저 닥쳐 총체적 위험에 봉착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반도체 특별법) 표류로 적기를 놓칠 상황에 직면했다.
반도체 특별법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연구개발(R&D) 지원과 주 52시간 근로제 완화, 생산 촉진, 기업 대상 세제 혜택 제공을 골자로 한다. 투자를 유치하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 수출을 늘리고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탄핵 정국으로 국회의 경제 법안 처리가 뒷전으로 밀리면서 반도체 특별법은 '시계 제로' 상황에 부닥쳤다.
이는 조만간 출범할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축소 조치 임박에도 정부의 대응력 하락까지 겹친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위기 대응을 위해 공조해야 할 시점에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는 인공지능(AI) 개발에도 제동이 걸렸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생성형 AI 시장 규모는 연평균 34.6% 성장해 2030년에는 1,093억1093억 달러(14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초거대 AI 개발 경쟁을 위한 정부 정책도 안갯속에 빠졌다. 정부가 추진해 온 AI 기본법은 AI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지원하는 근거를 마련하고 산업의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기본 사항과 AI 윤리를 규정한 법이다. AI 기본법은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예정이었지만 국회 법사위가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를 규명할 상설 특검 수사요구안을 심의하면서 뒷순위로 밀렸다.
또 계엄 사태 이후 우리 경제 불안감 확산에 따른 주가 하락과 환율 상승은 우리 기업들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항공업계는 항공기 리스(대여)비나 유류비를 달러로 지급하기 때문에 대규모 외화 부채를 보유하고 있다. 환율이 오르면 원화로 계산되는 부채인 '외화 환산 손실'이 확대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부채가 증가하면 당기순이익이 감소해 신규 항공기 도입 등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비용을 줄이면서 경쟁력도 악화할 수밖에 없다.
또 항공업계는 세계 각국이 한국 여행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면서 연말 실적 방어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미국과 영국 등이 한국을 여행 주의 국가로 지정하고 여행 자제를 권고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계엄령 여파로 환율이 급등하며 경영 부담을 안게 된 데 이어 한국 여행 주의 경고가 해외 여행객 감소로 이어질까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그룹은 계엄 사태발 주가 폭락으로 사업 재편에 발목이 잡혔다. 두산은 계열사 조직 개편을 추진하면서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주주들을 설득하기 위해 주가가 일정 가격 밑으로 떨어지면 미리 약속한 가격에 주식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이후 증시가 주저앉으면서 두 회사의 주가가 두산 측 매수 예정가를 크게 밑돌았고, 이에 부담을 느낀 두산 측은 사업 개편 계획을 접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10일 각각 임시 이사회를 열고 12일로 예정돼 있던 양사의 임시 주주총회를 철회했다. 양사는 임시 주총에서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 지분을 두산로보틱스로 넘기는 분할·합병안을 의결할 예정이었다.
이 외에도 국내 최대 규모의 산별노조인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해 완성차 업계의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내수 침체에 따른 판매량 감소에 비상계엄·탄핵 등 정치 리스크 이슈까지 겹치면서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노조 파업으로 생산 차질마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기아 노조는 상급 단체인 금속노조의 결정에 따라 11일 오전 근무조(1 직1직)와 오후 근무조(2 직2직)가 각각 2시간씩 총 4시간의 파업에 돌입했다. 앞서 현대차 노조는 지난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오전 근무조와 오후 근무조가 하루 2시간씩 총 8시간의 부분파업을 벌인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와 미·중 무역 갈등에 따른 대내외 경제 여건이 어려운 가운데 정치 불확실성과 사회 혼란이 더해지면서 위기에 직면했다"며 "우리나라 선도기업들이 힘을 쓸 수 있도록 우리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에 정치리더십 부재는 앞으로 대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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