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변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변하지 않는다.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혼란의 시대, 우리의 욕망이 어떤 역사를 만들어왔으며 앞으로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인간의 욕망과 도덕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장편소설이 출간됐다. 송복남 작가의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은 인간 욕망의 극단을 조명하며, 소유와 존재의 문제를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 창비장편소설상 본심에 올랐던 작품으로, 10년간의 개작을 거쳐 원고지 4천 매 분량의 치밀한 구성과 깊이 있는 서사로 독자와 만나게 됐다.
◆역사와 경제, 종교적 사유가 엮인 120년의 대서사
이 소설은 영혼을 이야기하지만 영혼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현대인의 물질 만능주의에 집중한다. '역사는 변하지만 욕망은 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1906년 청계천의 영혼결혼식, 2008년 금융위기와 리먼 브라더스 몰락, 당시 미국 재무부 장관 헨리 폴슨의 행보를 소환하며 21세기 서울 옥인동 그랑호텔로 이어지는 120년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역사적 팩트와 문학적 상상력이 결합된 인문적 서사는 독자들에게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강렬한 아포리즘이 작품 곳곳에 스며든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먼저 독자들을 만났고, 간결하고 인상적인 문장들을 필사하는 독자들이 생겨날 정도로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특히, 이 소설은 단순한 역사 서사가 아니라 강렬한 캐릭터 묘사와 탄탄한 서사를 기반으로 하는 밀도 높은 구성을 갖추고 있어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감정 이입할 수 있도록 이끈다.
◆영혼을 실험한 다큐멘터리, '애버리지니 필름'
소설은 영혼을 영원불멸의 물질로 가정하며, 이를 실험 대상으로 삼는 월스트리트의 욕망을 묘사한다. 1999년, 밀레니엄을 앞둔 시점에서 호주 원주민 애버리지니 혼혈 소녀 엘라를 대상으로 한 섬뜩한 실험이 진행된다. 그 기원은 대한제국 시절, 한 미국인이 목격한 무당의 영혼결혼식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실험의 결과를 입증할 물증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결국 비극의 서막이 된다.
이 실험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상 '애버리지니 필름'을 찾기 위해 그랑호텔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마이애미의 줄리아 모텔, 단양 도담삼봉, 아르헨티나 산하비에르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이과수 대리의 고뇌와 실존적 질문이 깊이 있게 다뤄지며, 철학적 사유의 흐름이 독자들을 새로운 차원의 성찰로 이끈다.
◆기득권의 욕망과 MZ세대의 저항
그랑호텔은 서울 서촌 옥인동에 위치한 옛 벽수산장을 모델로 한다. 친일파가 지었다가 사라진 건물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여전히 존재하며, 기득권 주류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호텔의 투숙객들은 지금도 사회를 움직이는 50~70대 '기득권 세대'로, 이들은 자신들에게 최적화된 사회 체제를 유지하며 부의 연좌제를 목표로 한다. 부의 대물림을 통해 삶의 질과 자존감을 결정하는 사회 구조는 MZ세대의 허무와 극단적인 물질주의적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설은 이런 구조적 문제를 직면하며, 50~70대 기득권 세대에게는 성찰을, MZ세대에게는 분노와 저항의 메시지를 던진다. 기득권층의 탐욕과 세대를 뛰어넘는 존재론적 고민이 교차하는 이 서사는 독자들에게 인간의 욕망과 도덕성, 그리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깊은 질문을 남긴다.
◆소유냐 존재냐, 결국 사랑이 해답이다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은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을 사용해 추리와 스릴러적 요소를 더한 작품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소설이 묻고자 하는 질문은 단순하다. '소유'인가, '존재'인가. 이는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문제의식이다. 작가는 극단적인 물질만능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영혼'이 아닌 '사랑'을 제시한다.
헝가리 문학이론가 지외르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서문에 등장하는 '심연의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이라는 문구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작가는 인간이 물질화되는 시대 속에서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랑은 오랜 인류의 결핍이자 소망입니다. 사랑의 결핍이 극단적인 사고와 물질만능주의를 초래하고 인간의 존재 의미를 물질화했습니다. 물질로부터 인간 스스로를 구하자는 것이 이 소설이 전하는 궁극적인 메시지입니다."
◆송복남 작가 소개
강원도 원주 출생. 지역지와 시사주간지 기자로 활동했으며, 시사월간 『피플』 발행인 겸 편집장을 역임했다. 2016년 '김민'이라는 필명으로 현대시학 신인상에 당선, 시를 발표했다.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은 10년에 걸쳐 집필한 첫 장편소설이다.
◆책 정보
『그랑호텔의 투숙객들』 | 송복남 지음 | 시방사유 | 776쪽 | 2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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