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무관세로 들어오는 수입산 유제품 여파로 국내 유업계가 생존위기에 놓였다. 내년부터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주요 수입산 유제품에 부과되던 관세가 단계적으로 철폐되는 탓이다. 저출산·고령화로 흰우유 소비가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수입산 우유가 무관세로 들어오게 되면 가격 경쟁력에 밀려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유·버터·치즈, 수입산 전환 가속
25일 업계에 따르면 이미 뉴질랜드·호주·미국 등 낙농 강국의 유제품 수입은 증가 추세다. 특히 분유, 버터, 치즈 등 가공 유제품의 수입 단가는 국산 대비 30~50% 이상 저렴해 급식·제과·외식 시장을 중심으로 수입산으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FTA에 따라 내년부터 미국과 유럽산 유제품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면 올해 2.4% 적용된 관세가 내년부터 0%가 된다.구매 가격은 더 낮아지게 된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유제품 총수입량은 2019년 95만8400t에서 2022년 153만4900t으로 증가했다.
외국산 멸균 우유도 국산 우유보다 가격이 절반 수준으로 저렴해 매년 수입량이 늘고 있다. 2023년 외국산 멸균 우유 수입량은 4만6241t으로 전년대비 23.8% 늘었다. 5년 전인 2018년(4275t)과 비교해 보면 10배 가량 증가했다. 반면 국내 우유 소비량은 감소세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국내 우유 소비량은 2021년 444만8459t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2022년 441만490t, 2023년 430만8350t으로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유업계 관계자는 "수입산은 저렴한 데다 품질도 준수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국산 제품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며 "국내 원유 가격은 리터당 1100원 안팎으로 형성돼 있어 가공식품 원재료로 사용되기엔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 수입산은 가공에 최적화된데다 가격도 저렴해 제과·제빵·가공식품 업계에서 선호도가 높다.
국내 유제품 가격의 높은 원인은 복잡한 원유 수급 구조와 고정 단가제에 있다. 낙농진흥회가 매년 생산자와 유업체 간 협상을 통해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데, 이 제도는 국제 시세 변동을 거의 반영하지 못한다. 그 결과, 국내 원유는 고가에 머무르고 있으며 가격 탄력성도 떨어진다.
유업계는 정부에 ▲원유 가격 결정 구조 개편 ▲가공유 중심의 생산체계 전환 ▲수입산과의 최소한의 가격 장벽 유지 등을 촉구했다.
한국유가공협회 관계자는 "지금처럼 수입 장벽이 계속 허물어진다면, 중소 유업체는 3~5년 내 대거 도산할 수도 있다"며 "단순 보호가 아닌, 국제 시장과 경쟁할 수 있는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낙농제도 개편을 통해 원유 가격을 용도별로 차등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가공유는 가격을 낮추고, 음용유는 일정 수준을 유지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생산자단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실현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자구책 마련
유업계는 생존을 위한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식생활 변화와 소비 트렌드에 맞춰 신사업을 확장하고, 새로운 수익 모델을 적극 모색하는 모습이다.
매일유업은 기존 우유 소비 감소에 대응해 매일두유, 아몬드브리즈, 어메이징 오트 등과 같은 식물성 음료와 가능성 제품 라인으로 대체 식품 시장을 공략하며 푸드서비스 영역도 확장하고 있다.
2018년 친환경 브랜드 '상하목장'을 통해 HMR 시장에 첫발을 들인 매일유업은 최근 외식업 자회사인 엠즈씨드를 앞세워 본격적인 HMR 사업 확대에 나섰다. 크리스탈제이드, 상하키친, 일뽀르노 등 자회사 브랜드의 인기 메뉴를 간편식 형태로 재탄생시켜 소비자 접점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현재 상하키친 핫도그·떡볶이 5종, 일뽀르노 파스타 4종, 크리스탈제이드 메뉴 7종이 시장에 출시돼 있다.
오프라인 외식 사업도 함께 확장 중이다. 크리스탈제이드는 지난해 12월 여의도 IFC몰에 16번째 매장을 오픈했으며, 샤브샤브 전문 브랜드 '샤브상하'의 1호점 개장을 준비 중이다.
남양유업은 건강기능식품을 새로운 성장 축으로 키우고 있다. 남양유업은 2021년 '포스트바이오틱스 이너케어'를 출시했으며, 단백질 전문 브랜드 '테이크핏'과 함께 현재 남양유업 전체 매출의 30%를 책임질 정도로 성장했다. 이와함께 아이스크림·커피 브랜드 '백미당' 확장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전남 광양 LF스퀘어에 신규 매장을 열며 전국 매장은 55곳으로 늘었다.
서울우유는 프리미엄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4월 A2 단백질 유전형질을 가진 젖소의 원유로 만든 100% A2 단백질 'A2+우유'를 출시해 호평을 받았으며 2030년까지 전 제품을 A2우유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소비자단체 한 관계자는 "FTA는 예고된 변화였으나 정부와 생산자 모두 낙농제도 개편에 손놓고 있다가 뒤늦게 대응하려는 모습"이랑며 "피해는 선택지가 줄어드는 소비자와 중소기업 몫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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