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캐피털(VC)'이라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빠른 성장의 기술 스타트업이다. 인공지능(AI), 바이오, 플랫폼 등 유망 기술을 가진 초기 기업에 선별적으로 자금을 태워 성장시키고, 일정 시점에 수익을 회수하는 것이 전통적인 VC의 역할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이같은 방식은 한국 산업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기성 중소기업들에겐 남의 나라 얘기처럼 느껴진다. 창업 10년 이상, 제조·서비스 분야에서 현금흐름 기반으로 운영되는 전통 중소기업은 대부분 VC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기술력이 있더라도 성장성 평가에서 '스타트업답지 않다'는 이유로 투자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이 허다하다.
실제로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24년 VC가 신규로 투자한 약 8조 원 중 대부분이 스타트업 또는 기술 기반 기업에 집중됐다. 창업 7년을 초과한 기업, 특히 제조 기반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은 5% 미만이다. 그나마 존재하는 몇몇 민간 투자기관이나 PEF도 대부분 M&A 또는 회수 목적의 전략에 치중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은 기성 중소기업 입장에서 성장 자금의 단절로 이어진다. 현금흐름은 있지만 R&D나 신사업 확대를 위한 자금을 확보하기 어렵고, 은행권 대출은 담보 중심이어서 한계가 분명하다.
더 큰 문제는 정책 자금과 민간 투자 간의 단절이다. 정부는 지원하는 자금과 보증 등은 단기 운전자금이나 생존 위주 자금이 많아 성장 자본으로 연결되기엔 한계가 있다. 민간 자본 시장의 역할이 필요한 배경이다.
물론 VC의 입장에서 보면 리스크 관리와 수익 회수를 고려했을 때 고성장 가능성이 불확실한 기성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는 부담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VC가 스타트업만 바라보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한국 산업의 중간 허리는 영원히 약한 고리로 남을 수 있다. 특히 후계자 부재, 기술 전환 지체, 해외 진출 좌절 등 구조적 병목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막막한 상황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일부 정책형 VC나 산업특화형 펀드가 중소기업 대상 장기 투자 모델을 실험하는 시도는 의미가 있다.지역 기반 중소기업에 스케일업 자금을 공급하고, 장기 배당 수익을 회수하는 방식의 펀드들이 등장하고 있다. "스타트업만이 아닌 중소기업에도 투자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투자가 단기간 회수만을 목표로 한 '고속 성장 주식'만 좇는 구조로는 장기 산업 기반은 결코 다져지지 않는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모두가 지속 성장 가능한 생태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사라진 '성장 사다리'를 다시 세우려는 투자 생태계의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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