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명의 유급생, 붕괴된 교육 일정, 엉킨 학년. '정원 확대'에 맞선 저항이 결국 의대 교육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자충수가 됐다. 올해 1학기에만 전국 의대생 8305명이 유급됐고, 제적도 46명에 달한다. 전체 재학생 1만9000여 명 중 절반가량이 사실상 수업에서 이탈한 셈이다. 항의는 거셌지만, 책임은 끝내 개인에게 돌아왔다.
그 여파는 내년에도 이어진다. 교육부는 예과 1학년 수업을 들어야 할 인원을 5500명에서 6100명으로 추산한다. 세 개 학번이 한 학년 강의에 몰리는 '트리플링' 현상이다. 교육부는 "예과는 교양 중심 수업이라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일부 의대에서는 본과 수업을 예과로 내려보낼 만큼 여건이 빠듯하다. 강의실과 실습병원 확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의료계는 한목소리로 정부 책임을 지적한다.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는 "교육의 질 유지 없이 밀어붙인다"며 교육부를 비판했고, 대한의사협회는 "부당한 유급과 제적을 철회하라"며 국민감사청구까지 예고했다.
그러나 교육의 질과 학생 보호를 말하면서도 유급이라는 학사 원칙마저 정치화하는 태도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당한 학사 평가 결과조차 '정부의 압박 때문''억울한 조처'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교육기관과 전문가 집단의 태도인지 되묻게 된다.
유급은 교육을 포기한 대가이자, 그 자체로 제도적 책임이다. 아무리 명분 있는 문제 제기라 해도, 자신의 의무를 방기하고 그 대가마저 부정하는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절반 넘는 동료가 교실에 없는 상황에서, 남은 학생들도 압박감 속에 등교하고 있다. 이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학생들이다.
정원 확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합리적인 비판이 비생산적인 저항으로 흐르면 공적 신뢰는 무너진다. 의대생은 단지 '학생'이 아니라, 환자를 마주할 '미래의 의사'다. 공적 책임과 공동체 신뢰를 저버린 선택의 끝에 남은 유급 통계는, 과연 누구를 위한 싸움이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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