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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준비기간만 26년 걸린 공공미술작품

/홍경한 미술평론가

얼마 전 정부 산하 문화예술기관 연구진으로부터 공공미술 사업의 성과 분석 및 미래 방향성 제안을 위한 '국내외 공공미술 우수사례'를 선정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관련 사업의 향후 지향점을 명확히 하려 한다는 것이 요청의 목적이었다. 단, 국내외 각각 1개만 제시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Teeter-Totter Wall'과 '윤슬: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을 추천했다. 전자는 막대기 세 개로 구성된 핑크색 시소로, 사회참여미술이자 정치적 공공미술의 대표적인 예로 평가받는다. 미국 UC 버클리대 건축학과 교수인 로널드 라엘(Ronald Rael)과 멕시코 디자이너 버지니아 산 프라텔로(Virginia San Fratello)가 함께 고안했다. 2019년 미국과 멕시코 국경 장벽에 설치되어 분단과 통제의 상징을 연결과 공존의 공간으로 전환시킨 작품이다.

 

후자는 서울시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서울은 미술관'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강예린, 이재원, 이치훈이 속한 건축사사무소 'SoA'의 2017년 작품으로, 자연 현상인 '윤슬'(햇빛 혹은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의 빛의 미학에 문화적 특수성을 결합했다는 게 특징이다. 도시 경험의 질적 변화를 유도하고 시민들의 감각적 인식을 확장시킨 작업으로 인정받는다.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크리스토(Christo Vladimirov Javacheff)와 잔느 클로드(Jeanne Claude Denat de Guillebon)의 몇몇 작품들도 우수한 공공미술로 손색이 없다. 불가리아와 모로코(프랑스 보호령 시기) 태생의 부부인 이들은 건축과 환경을 아우르는 대지예술의 지표적 작가들로서, 독일 국회의사당을 은회색 폴리프로필렌 천으로 덮은 'Wrapped Reichstag'(1995)의 경우처럼 대상을 천으로 감싸는(Wrapping) 방식으로 유명하다.

 

주요 작품 중에는 2005년 2월 12일부터 약 보름간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선보인 'The Gates'가 있다. 약 37km에 달하는 공원 산책로에 높이 각각 5m 정도 되는 오렌지색 깃발 7,503개를 이용한 포털 형식의 설치물이다.

 

이 작품은 공공미술의 핵심인 사회적 기능성을 비롯해 공공성, 접근성, 장소성, 대중성, 참여성, 일시성을 효과적으로 구현해 짧은 전시 기간 동안 4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센트럴 파크로 끌어들였다. 다른 해 같은 시기 평균 70여만 명이 방문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반응이었다. 지역에 미친 영향도 적지 않아 무려 2,500억 원의 경제효과를 유발했다.

 

의미 있는 공공예술을 만드는 방법, 다시 말해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에게 예술이란 경험하고 느끼는 것임을 상기시키려는 목적과 더불어, 예술이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며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하기 위해 제작된 'The Gates'는 공공 공간에서의 미술을 재정의하고 예술이 어떻게 일상적인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 중요한 사례였다.

 

공공미술의 역사에서 예술과 자연, 공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고 인정받는 'The Gates'는 그 규모와 복잡성으로 인해 제작에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었다. 1979년 처음 구상한 이후 준비기간만 26년에 달했으며, 작품에 사용된 예산 280억 원은 모두 작가가 부담했다. 이는 예술적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그들의 일관된 방식이다. 그리고 작품에 사용된 재료 중 일부는 철거 후 재활용업체에 보내져 화분과 같은 일상용품으로 재탄생했다.

 

공공의 주체가 실종된 편향적이고 일방적인 미술이 공공미술로 둔갑하는 한국에서 공공성과 예술, 도시와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질문한 'The Gates'의 의미는 참여와 경험, 기억의 공동체화라는 동시대 공공미술의 주요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공공미술을 조각이나 벽화 중심의 전통적 개념으로만 이해하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달리 경험 중심의 시공간적 예술로 확장시킨 작품이라는 점 또한 이 작품이 지닌 중요한 의의라고 할 수 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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