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인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은 자산의 전부이자 삶의 기반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전세 시장은 오랫동안 불균형한 구조 속에서 세입자를 취약한 위치에 놓아두었다. 대부분의 상품과 달리, 임대주택 시장에서는 당장 계약서만 봐도 공급자인 임대인에게 '갑'이라는 사회적 지위가 관습적으로 부여되어 왔고, 중개인들은 또한 고객 관리의 지속성 측면에서 임대인의 입장에 치중하는 경우도 많았다. '고객이 왕'이라는 소비 시장의 일관된 진리가 유독 통하지 않는 시장인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전국에서 반복해서 터진 전세 사기 사건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준비되지 않았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임대인의 재정 상황이나 신뢰도를 사전에 확인할 방법이 없었고, 등기부등본이나 주변 시세에 의존한 판단은 종종 전세 사기로 이어졌다. 특히 깡통빌라 사태, 허위 보증보험 가입, 명의 대여 등을 동원한 조직적 사기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구조적 위험이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정부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중심이 되어 시행하게 된 제도가 있다. 바로 '임대인 정보조회 제도'다. 이는 세입자가 계약 전에 임대인의 주택공급자로서의 건전성을 '임대인의 동의 없이' 조회할 수 있는 장치다.
그간 임대인에 대한 정보는 사실상 성역이었다. 계약서를 쓰고 나서야 문제가 있는 임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 정보의 비대칭은 구조적 약자였던 임차인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특별법도 대부분 경·공매시 이를 유예하거나 우선매수를 위한 대출을 제공하는 것인데 이는 사후 약방문이자 오히려 끝까지 집주인의 책임을 피해자의 부담으로 미룰 우려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제도는 소비자로서의 세입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장치이다.
계약을 앞둔 예비세입자는, 그 집의 임대인이 얼마나 많은 집을 가지고 있고, 그중 보증사고가 난 건이 있는지, 그리고 이 사람이 반환보증에 가입할 수 있는 상태인지를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임차인이 피해 가능성을 인지하고 계약을 회피할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물론, 제도는 완전하지 않다. 단순히 '보유 주택 수'만으로 임대인의 위험도를 단정 지을 수는 없고, 조회 건수 제한이나 처리 시간 같은 실효성 문제도 존재한다. 일부에서는 대단지 아파트를 계획적으로 보유한 건전한 임대인이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이 제도가 가진 상징성과 효과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임차인을 단순한 주거 약자가 아닌, '소비자'로 대우한다는 의미이다. 증권 한 장을 사도 주식회사의 정보공개가 의무화된 마당에 수억원의 목돈을 예치할 집주인의 정보공개는 오히려 늦은 감이 있었다.
또한 저가주택 시장을 중심으로 주거비 안정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내가 몇 채의 주택을 보유 중이고, 보증사고 이력이 있는지 세입자에게 공개되는 만큼, 무리한 대출을 일으켜 집을 여러 채 사거나, 보증금으로 또 다른 집을 매입하는 식의 무분별한 갭투자 행태에 심리적 제동이 걸리게 된다. 굳이 복잡한 규제가 없어도 정보의 투명성 자체가 효과적인 규제가 될 수 있다.
시장은 규제가 아니라 이와같이 투명한 정보제공을 통해서 더 건강해진다. 경쟁시장이 되어 갈수록 거품은 끼어들 틈이 없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품의 공급자들이 소비자를 두고 치열하게 다투는 것은 모두를 위해서 좋은 일이다./이수준 로이에아시아 컨설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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