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퇴근 길에 아내가 출타중이어서 저녁에 라면이나 끓여먹을 생각에 집 근처 편의점을 찾았다. 마침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9일 2차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라면 한 개 2000원 한다는데 진짜예요?"라는 발언도 해서 라면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도 궁금하던 차였다. 편의점 매대에 진열된 라면들을 보니 농심 푸팟퐁구리큰사발, 오뚜기 열치즈라면 대컵, 삼양식품 탱글 등 일부 컵라면 등이 2000원 이상에 판매되고 있었다. 국민들이 많이 먹는 신라면과 진라면은 1000원, 너구리는 1150원, 안성탕면과 삼양라면은 각각 950원과 910원, 불닭볶음면은 1250원에 팔리고 있었다. 신라면 더레드 1500원, 신라면 블랙 1900원, 참깨라면과 스낵라면, 킹뚜껑은 1800원이었다. 라면이 처음 나온 1963년 9월 삼양라면 가격이 10원이었던 것을 비교하면 62년만에 100배 이상 오른 것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를 보면 라면값은 1년 전보다 6.2% 올라 전체 물가 상승률의 3배 이상이었다. 지난 3월 농심이 대표상품 신라면의 출고가를 5% 올린 걸 시작으로 오뚜기, 팔도 등이 잇따라 라면 가격을 인상한 영향이다. 커피, 초콜릿, 아이스크림, 과자 등 가공식품 전반으로 가격 인상이 번지며 지난달 전체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4.1%에 달했다. 지난달 가공식품 74개 품목 가운데 70%가 넘는 53개 품목이 6개월 전보다 가격이 뛰어 오른 것이다. 과거에도 국제 곡물가나 환율 급등 등으로 가격이 오른 경우가 있었지만 작년 하반기부터는 원가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인상은 이례적이다. 계엄부터 탄핵, 대선에 이르는 정국 혼란 시기를 틈타 기업들이 집중적으로 가격 인상을 단행한 측면이 다분하다.
우리 국민들은 1인당 한해 평균 74.1개의 라면을 먹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있듯이 라면은 한국인에게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짜장면과 함께 이른바 '소울 푸드(Soul Food)'라 할 수 있다. 라면이 전체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00분의 2.4에 불과할 정도로 가계에 끼치는 영향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대표 먹거리라는 점에서 국민들은 가격에 상당히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이 대통령이 라면 가격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대통령의 발언 속내는 라면 가격을 비유해서 전반적인 먹거리 물가가 뛴 것을 지적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라면 업계의 가격 인상 이유와 시기를 보면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기만적 마케팅)'이라고 비판받기에 충분하다. 그리드플레이션은 별다른 가격 상승 요인이 없는데도 기업이 과도하게 가격을 올려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행태를 일컫는다. 그동안 식품업계는 원재료 가격이 오를 때는 즉각 제품 가격을 인상하다가 원재료가 하락할 땐 인하를 미루거나 외면했다. 아니면 포장과 가격은 그대로 두고 양을 줄이는 방법을 쓰곤 했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정부의 세제 혜택과 지원을 받으며 가격 안정을 약속했음에도 불구, 국정 공백기에 소비자들에게 고통을 떠넘긴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새로 들어선 정부는 식품업계의 무분별한 가격 인상을 자제시키는 동시에 기업간 담합이나 유통구조 왜곡이 없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안 그래도 대중교통비와 집값, 임대료, 사교육비 등 국민의 삶에 가장 밀접한 물가들이 줄줄이 오르고 있어 서민들을 시름에 잠기게 하고 있다. 특히나 생활 물가는 국민들의 민심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정부는 우선적으로 물가 잡기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Copyright ⓒ Metro. All rights reserved. (주)메트로미디어의 모든 기사 또는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주식회사 메트로미디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 ㅣ Tel : 02. 721. 9800 / Fax : 02. 730. 2882
문의메일 : webmaster@metroseoul.co.kr ㅣ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이장규 ㅣ 신문사업 등록번호 : 서울, 가002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2546 ㅣ 등록일 : 2013년 3월 20일 ㅣ 제호 : 메트로신문
사업자등록번호 : 242-88-00131 ISSN : 2635-9219 ㅣ 청소년 보호책임자 및 고충처리인 : 안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