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반도체를 '산업의 쌀'로 재정의하며 국가 차원의 산업 재건에 한창이다. 1990년대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했던 일본이 시장 점유율 10% 미만으로 추락한 지 30여 년 만의 본격적인 반격이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향후 5년간 반도체·AI 분야에 10조 엔(약 91조원)을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것만 봐도 각오가 남다르다. 이미 3조8000억 엔을 투입한 데 이어 거의 3배 규모의 추가 자금을 쏟아붓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략은 단순히 돈을 뿌리는 것이 아니다. 자국이 여전히 강점을 보유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을 기반으로 TSMC, 마이크론 같은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는 투 트랙 접근법이다.
특히 정부와 8개 민간기업이 공동 출자한 '라피더스'는 2027년까지 2나노미터(nm) 첨단 로직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하는 야심작이다. IBM, IMEC 등과의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기술 격차를 단숨에 좁히려는 전략이다.
더 주목할 점은 경제안보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정부펀드인 산업혁신투자기구(JIC)를 활용해 포토레지스트, FC-BGA 등 핵심 소재 기업을 인수하며 기술 유출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정책 지원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단기적 세제 혜택을 넘어 보조금·대출·인프라 등 실효성 있는 중장기 재정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페일세이프(Fail-Safe)' 전략이다. 정책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축적된 기술·인재·지식재산을 활용할 대안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기업의 민첩한 대응 역량 구축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발빠르게 대응하려면 정부와의 공동 전략이 필수다.
셋째, 상호보완적 산업 생태계 구축이다. 국적과 규모에 구애받지 않는 실용적 지원과 기능 중심 생태계가 핵심이다. 지역 단위 반도체 클러스터와 기능별 생태계를 균형 있게 구성하되, 한일 간 상호보완 협력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일본은 반도체 산업을 "국가의 명운이 직결된 전략산업"으로 인식하고 종합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개별 기업의 노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의 상호관세 위기, 중국의 추격, 일본의 재건 의지까지. 한국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일본의 사례는 한국이 반도체 강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거울이다.
반도체는 단순한 수출 효자 품목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다. 일본이 30년 만에 깨달은 이 진실을 한국은 더 늦기 전에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반도체 산업을 '생존전략'으로 인식하고 행동에 나설 때다.
Copyright ⓒ Metro. All rights reserved. (주)메트로미디어의 모든 기사 또는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주식회사 메트로미디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 ㅣ Tel : 02. 721. 9800 / Fax : 02. 730. 2882
문의메일 : webmaster@metroseoul.co.kr ㅣ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이장규 ㅣ 신문사업 등록번호 : 서울, 가002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2546 ㅣ 등록일 : 2013년 3월 20일 ㅣ 제호 : 메트로신문
사업자등록번호 : 242-88-00131 ISSN : 2635-9219 ㅣ 청소년 보호책임자 및 고충처리인 : 안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