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 젊은 총수로 등장 “혁신 아니면 소멸”···딥 체인지 선언
하이닉스 인수, 반도체 명가 배터리·바이오로 미래 성장축 확장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최태원 회장은 만 38세의 젊은 나이에 SK그룹을 맡았다. 갑작스러운 선대회장의 별세와 무너져가는 경제 상황 속에서 그는 "혁신적 변화를 할 것이냐, 천천히 사라질 것이냐"라는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이후 실현된 반도체·배터리·바이오에 이르는 과감한 투자와 장기 전략은 SK를 내수 중심 기업에서 세계적 수출 기업으로 바꾸는 동력이 됐다.
최태원 회장이 SK상사에 입사한 것은 1992년이다. 부장 직급으로 입사해 국제 무역의 최전선에서 경험을 쌓으며 그룹 경영의 밑바탕을 익혔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그룹의 전면에 나서게 된 계기는 6년 뒤 찾아왔다. 한국 경제가 IMF 외환위기로 휘청거리던 1998년 9월, 그룹을 이끌던 최종현 선대회장이 폐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유언조차 남기지 못할 정도로 급작스러운 별세였다.
재계는 물론 그룹 내부에서도 향후 경영권 구도에 대한 예측을 하기 힘든 불확실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창업주 최종건 회장의 장남 고(故)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을 비롯해 사촌 형제들이 뜻을 모으며 위기를 수습했다. "사촌들 중 태원이가 가장 뛰어나다"라는 최윤원 회장의 발언은 젊은 차세대 리더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정적 모멘텀이었다.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등도 경영권 승계에 동의하며 가문의 결속을 보여줬다. IMF로 대기업조차 줄줄이 쓰러지는 상황에서 가족들이 '책임 경영'을 우선한 사례는 재계에서 지금도 '승계 모범사례'로 꼽힌다.
이렇게 만 38세의 젊은 나이에 회장직에 오른 최태원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혁신적 변화를 할 것이냐, 아니면 천천히 사라질 것이냐"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당시 환율, 유가, 금리 등 경제 변수가 하루가 다르게 요동치며 대기업조차 연쇄적으로 도산하던 시기였다. 실제로 당시 30대 그룹 중 절반가량만이 현재까지 생존했다. 'Deep Change'라는 최 회장의 발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SK가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체질 변화의 요구였다.
그가 취임 직후 내세운 첫 번째 과제는 '글로벌'이었다. 내수에 치우친 사업 구조를 수출 드라이브로 바꾸고 해외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했다. 2002년에는 '따로 또 같이' 경영을 선언해 계열사 간 지배-종속 관계를 허물고 브랜드와 문화를 공유하는 수평적 구조를 도입했다. 이는 단순한 지배구조 개편을 넘어 그룹 경영의 철학을 바꾼 사건이었다.
최 회장이 던진 가장 큰 승부수는 반도체였다. 2011년 말, SK그룹은 당시 부진에 빠진 하이닉스를 전격 인수하며 에너지·화학과 ICT 양대 축에 반도체라는 세 번째 축을 더했다. 당시 반도체 업황은 가격 하락과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혹독한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하이닉스 역시 적자에 허덕이며 매수자를 찾지 못하던 상태였다. 그룹 내부 반대 여론도 적지 않았으나, 최 회장은 1년 넘게 직접 반도체 기본 원리와 세계 시장 동향을 공부하며 인수 필요성을 설득했다. 결국 2012년 약 3조4000억 원에 인수를 마무리했다. 이는 1978년 선친 최종현 선대회장이 설립했던 선경반도체의 꿈을 30여 년 만에 이어받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하이닉스는 인수 직후 흑자로 돌아섰고, 2013년 매출 14조 원, 영업이익 3조 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이후에도 매년 수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강자로 자리 잡았다. 청주 테크노폴리스에 15조 원을 투자해 미래 성장을 준비했고, 반도체 소재 기업 인수로 수직계열화를 강화했다.
특히 2009년부터 꾸준히 개발해온 TSV 기반 HBM 기술은 2013년 세계 최초 양산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HBM2E, HBM3, HBM3E까지 잇따라 출시하며 세계 시장을 선도했다.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면서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와 긴밀히 협력해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2025년 1분기에는 D램 시장의 점유율이 36%로 삼성전자를 제치고 사상 처음 세계 1위에 올랐다. 2024년 매출은 66조 원, 영업이익은 23조 원을 기록해 인수 직전과 비교해 매출은 6배, 영업이익은 수십 배로 늘어났다.
최태원 회장의 투자 본능은 반도체에만 머물지 않았다. SK는 배터리와 바이오 분야로 보폭을 넓혔다. 배터리 사업은 1980년대부터 시작해 1996년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에 착수했고, 2010년 현대차의 첫 순수 전기차 블루온에 탑재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이후 2021년 SK온을 분사해 독립 법인으로 출범시켰고, 미국 포드와 '블루오벌SK', 현대차와 북미 합작법인을 세우며 글로벌 공급망을 강화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하며, 전기차 시장 성장세에 발맞춰 2025년 이후 실적 개선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바이오 분야에서도 SK는 석유화학에서 다진 합성·제조 역량을 기반으로 성과를 냈다. SK바이오팜은 2020년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를 미국에 출시해 연 매출 6000억 원을 올리고 있으며, 수면장애 치료제 '솔리암페톨'은 글로벌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을 개발·출시해 한국의 백신 자급화와 수출국 도약에 기여했다. 경북 안동에 구축한 'L하우스'는 다양한 백신 생산 능력을 확보해 국가적 바이오 안보 역량을 높이는 거점으로 평가된다.
최태원 회장은 IMF 위기의 한복판에서 출발해 30년여 동안 SK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반도체·배터리·바이오라는 3대 축은 그가 취임 초 던진 "Deep Change"라는 메시지가 빈말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내수 중심이던 SK는 이제 세계 무대에서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수출 명가로 자리 잡았다.
◆ 약력
-생년월일 : 1960년 12월 3일
-출생지 : 경기도 수원
-현 직함 : SK그룹 회장(1998~), 대한상의 회장(2021~, 2024 연임)
-혼인 :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혼 소송 2017~)
-자녀 : 1남 3녀
-서울 신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미국 시카고대학교 경제학 석· 박사 수료
◆ 경력
-1991년 선경(현 SK) 경영기획실 부장으로 입사
-1993년 선경아메리카 이사대우
-1996년 유공(현 SK이노베이션) 사업개발팀장 상무이사
-1998년 9월 SK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했다.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2012년 SK하이닉스 대표이사 회장 겸임
-2016년 3월 SK 대표이사 회장 겸 이사회 의장
-2021년 3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2024년 2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재선출
◆그룹 매출 6배 키워낸 '최태원식 리더십'···사회적 가치까지 챙겼다
최태원 회장이 취임한 뒤 27년간 SK그룹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1998년 자산 32조8000억원, 매출 32조4000억원 수준이던 그룹은 2024년 말 기준 자산 362조9620억원, 매출 205조9230억원, 당기순이익 18조4480억원 규모로 커졌다. 매출은 6배, 순이익은 180배 이상 늘었고, 재계 순위도 5위에서 2위로 올라섰다.
최 회장은 단순한 성장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경영의 핵심에 두며 'DBL(Double Bottom Line) 경영'을 도입했다. 이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방식으로, SK는 고용·배당·납세 등 '경제간접 기여', 친환경 제품·저소득층 서비스 같은 '비즈니스 사회성과', 기부·봉사활동 등 '사회공헌 성과'를 정량화해 경영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실제 계열사들도 ESG 중심 사업과 사회적 가치 창출에 적극 나섰다. SK이노베이션은 폐플라스틱 재활용과 배터리 재사용을 확대했고, SK하이닉스는 협력사와의 상생, 장애인 채용을 늘리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보급에 기여했으며, SK텔레콤은 취약계층 요금제와 ICT 기반 사회안전망 구축에 나섰다.
최 회장은 "경제적 가치와 함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된다"고 강조하며, '딥 체인지(Deep Change)'를 통해 근본적 혁신과 지속가능 경영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그의 철학은 SK그룹을 재계 2위로 키워낸 성장동력일 뿐 아니라, 한국의 기업 경영 패러다임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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