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일의 세상 이야기] 유네스코 문화유산 24절기의 변화
24절기(節氣)가 변하고 있다. 현재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양력(陽曆)은 1582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기존 '율리우스력'을 보완해 만든 '그레고리력'이다.
또 1월 1일이 새해 첫날이 된 것은 프랑스 샤를 9세가 1564년에 선포한 이후이다. 만우절 탄생 배경처럼 이는 비과학적이고 자연 현상과도 무관하며 극적인 사연도 없다.
이에 비해 동아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달(月)을 중심으로 한 역법(曆法)인 음력(陰曆)을 사용했다. 그래서 달력이다. 음력은 달의 모양만 보고도 날짜를 대략 알 수 있어 역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유용했다. 변화하는 달의 모양에 따라 인간을 포함한 생물들의 생체 활동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성들의 생리 현상인 월경(月經)도 '달이 차고 기우는 주기적 현상'에서 유래했다.
특히 달은 지구에 가까워, 그 위치에 따라 바닷물의 조수간만이 생긴다. 따라서 달의 주기에 따른 '물 때'를 잘 맞추는 것이 어업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음력은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 어려워 농경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계절은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운 채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지구에서 볼 때 1년에 걸쳐서 태양이 하늘을 이동하는 경로를 황도(黃道)라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지구에서 관찰한 태양의 연간 이동 경로를 15도마다 구분을 했다. 즉 360도를 15도마다 나눈 것이 24절기다. 천문학 기준점은 춘분(春分)이다.
입춘(立春), 동지(冬至) 등은 매년 2월 4일과 12일 22일로 윤년을 제외하고는 항상 정해져 있다. 이는 24절기가 철저하게 태양을 중심으로 한 양력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음력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태음태양력(太陰太陽歷)이 완성됐다. 바람, 비, 눈, 더위, 추위 같은 짧은 시간의 상태를 날씨라고 한다면, 수십 년 이상의 긴 주기를 두고 변화한 것을 기후라고 한다.
절기는 계절 변화의 규칙을 반영하고 기후를 예측하는 것이지 일기예보는 아니다. 음력과 절기가 합해진 태음태양력은 천문학적이고 과학적이며 자연 흐름에 가장 적합한 역법이다. 이 때문에 24절기는 2016년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24절기는 고대 중국 진한(秦漢) 시기에 이미 실용화됐으며 우리나라에는 고려 충렬왕 17년(1291년)에 도입됐다. 그러나 발상지가 화북 지방이라 우리나라 기후와 맞지 않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는 속담 등이나 농기구 점검, 밭농사 준비, 작물 모종 키우기 등 체감 날씨나 농사에는 역시 24절기가 사용됐다.
이렇게 오랜 세월 우리에게 익숙한 24절기가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최근 100년간 한반도의 평균 기온은 섭씨 1.5도 상승했다. 여름이 길어지면서 처서(處暑)에도 열대야 현상이 나타난다. 해발 900m가 넘는 고원 지대인 강원도 태백에도 폭염주의보가 내려지기도 한다. 망고와 바나나 같은 아열대 과일이 자라고 남부 지방에서 재배되던 사과는 수도권까지 북상했다. 교과서의 식생과 수산물 지도를 새로 써야 할 상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날씨는 인류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했다. 기후는 개인의 건강이나 정서뿐 아니라 농업, 경제 등 사회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친다. 전쟁의 원인이기도 했다. '호모 클리마투스(Homo-Climatus)'는 처음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기후변화에 적응하면서 생존해 온 인간을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온난화에 따른 이상 날씨가 동시에 발생하는 '복합 재해'가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이제는 인류가 새로운 기후 환경에 적응하고 대비해야 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덧붙여 사주(四柱)는 입춘을 기준으로 '띠'가 정해지는 등 24절기에 따라 팔자(八字)가 정해진다. 그런데 기후가 변하면 그 특성이 달라져 난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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