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인구 절벽이 맞물리며 전장 패러다임 전환
한국형 CCA 등 '자율 전투체계 개발' 본격화
조종사가 사라진 하늘을 이제 무인기가 채우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자율 시스템이 전장을 재편하면서 기술 발전과 인구 감소, 비용 압박이 맞물린 '무인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전쟁의 주체는 사람에서 기계로 이동하고 있고 이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 없는 전쟁, 현실이 되다
한국군 병력은 지난 2019년 56만명에서 올해 45만명 수준으로 줄었다. 향후 10년간 병역자원 절벽이 이어질 것으로 전밍되면서 군 전력 유지의 공백은 불가피하다.
한정된 인력을 대체할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무인체계다. 실제로 군은 폭발물탐지제거로봇, 무인수색차량, 다목적 무인차량 등 '사람 없는 장비'의 도입 양산 단계에 들어섰다. 전장의 인력 문제를 기술이 대신 해결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인화는 단순한 인력 보완책을 넘어 전쟁 양식을 바꾸는 근본적 요인이다. 실제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변화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초기에는 고가의 중고도 무인기(MALE)가 정찰과 타격 임무를 수행했지만 전쟁이 장기화되자 저비용 소모성 드론이 전면에 등장했다. 우크라이나는 일인칭시점(FPV) 드론을 분대 단위로 운용하며 적 전차와 보급선을 공격했다. 대당 100만원 안팎의 FPV 드론이 수천억원짜리 장갑차를 무력화시키는 사례가 속출했다. '싸고 많은 무기'가 '비싸고 정교한 무기'를 압도한 셈이다. 군 관계자는 "병력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무인체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이미 각 군에서 임무별 무인화 전환 계획을 세워 단계적으로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싸고 많은 무기'의 반격
무인화 전환은 단순한 전술 변화가 아닌 경제 논리도 적용되어 있다. 과거에는 한 발의 미사일로 전략 목표를 달성했다면 이제는 수십 대의 드론으로 적의 방공망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란제 샤헤드 드론을 월 2700대씩 생산하며 '양으로 압박하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패트리어트, 나삼스, IRIS-T 등 고가의 미사일로 대응했지만 막대한 비용 부담으로 작용해 이후 대공포·전자전 장비·요격 드론 등 저비용 방어 체계로 전략을 바꿨다. 무기 효율의 기준이 '정밀도'에서 '비용 대비 지속력'으로 옮겨간 것이다.
AI와 자율 시스템의 발전이 전쟁의 양상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과거 로봇이 단순 반복작업에 머물렀다면 지금의 무인기는 '피지컬 AI(Physical AI)' 기술을 통해 스스로 인식·판단·행동하는 수준으로 진화했다. 센서로 외부 환경을 인지하고 비행 경로를 계산해 목표물을 자동 타격하면서 인간은 명령을 내리고 통제하는 위치로 물러났다. 전쟁의 주체가 점점 더 '인간 중심'에서 '시스템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현실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무인체계 경쟁의 본질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데이터와 AI 통합 역량이다"며 "앞으로는 누가 더 효율적으로 자율 시스템을 통제하느냐가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전장을 재편하는 기술 경쟁
세계 주요국은 이미 무인화를 미래 전력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미국은 차세대 공중전력의 핵심으로 'CCA(Collaborative Combat Aircraft)'를 개발 중이다. CCA는 유인 전투기와 편대를 이뤄 공대공·공대지·전자전·정찰 임무를 함께 수행하는 무인기다. 미 공군은 유인기 한 대당 무인기 두 대를 배정하는 체계를 목표로 1000~2000대 조달 계획을 세웠다. 제너럴 아토믹의 'YFQ-42A'와 안두릴의 'YFQ-44A'은 이미 시험 비행을 마쳤고 내년 양산 결정이 예정돼 있다.
미국이 '네트워크 협업형 전력'을 구축하고 있다면 중국은 '물량 중심의 전면 포화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국은 A2/AD(Anti-Access/Area Denia·반접근 지역거부)전략을 기반으로 장거리 타격 능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9월 전승절 열병식에서는 신형 ICBM '둥펑-61'과 SLBM 'JL-3' 외에도 무인 수상정, 무인잠수정, 사이버전 장비 등 첨단 무인 전력을 대거 공개했다. 유럽의 경우 프랑스·독일·스페인 주도의 'FCAS(Remote Carrier)' 프로그램을 통해 투하형 무인기를 실험 중이다.
이같은 무인화 흐름은 군사뿐 아니라 산업 전반의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글로벌 방산시장에서는 드론·로봇·자율 플랫폼 관련 투자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 AI 기반 무인체계 산업은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12%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방산기업의 경쟁력은 기술력이 아니라 '데이터·AI 융합력'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됐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전장 클라우드, 네트워크 통제 체계 등 '전쟁 운영 OS(운영체제)'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 역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병역자원 감소와 국방 예산 효율화 필요성이 맞물리면서 육·해·공 각 군이 무인 자산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폭발물탐지제거로봇으로 국내 최초 무인체계 전력화를 달성했고, 현대로템은 다목적 무인차량 '셰르파', LIG넥스원은 정찰용 무인수상정 체계개발에 나섰다. 공군은 KF-21 전투기를 기반으로 유무인 복합체계(AAP, UCAV) 실증을 추진하며 '한국형 CCA'의 기초를 다지고 있다.
유진투자증권 양승운 연구원은"전쟁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수행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며 "이제 군사력의 우열은 정밀함이나 화력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효율성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AI와 자율화가 무기의 눈과 귀를 대신하면서 전장은 더 넓고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며 "무인의 시대는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생존의 논리로 국가 간 전력 격차를 재편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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