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는 유명한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가진 자들의 위선을 고발했다. 네트워크 밖에서 이미 무지막지한 경쟁률을 뚫고 어렵사리 신분 상승의 사다리에 오르면, 기득권들이 이를 걷어찬다. 공정함은 기대하기 어렵다. 운동장은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상한을 6억원으로 묶는 '6·27' 대책과 LH(한국토지주택공사)를 통해 공공 주도의 주택 공급을 늘리는 '9·7' 대책에도 부동산 가격이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부는 10월15일 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역을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묶는 초강력 규제와 함께 무차별 대출 규제, 실거주가 아니면 집을 살 수 없도록 하는 고강도 정책을 내놨다.
정부는 이번 10·15 대책 초반만 해도 폭등의 열기를 식히고 시장의 과도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일종의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다.
하지만 공급없이 수요만 억제하면서 당장 거주지 이동이 시급한 실수요자 거래마저 불가능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일시적 2주택자는 세금 폭탄, 무주택자에게는 아예 집을 포기하게 하는 등 선량한 피해자들이 속출하는 부작용이 더 도드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부동산 정책을 주도한 경제부처와 금융당국 핵심 인사들이 고가 부동산을 통해 자산 이익을 누리면서도 정작 대출 규제와 갭투기 억제의 대상에서 스스로를 비껴간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책의 공정성과 신뢰를 스스로 흔들었다는 점이다. '나는 강남 살지만 여러분은 강남 올 생각 말라'는 식의 사다리 걷어차기란 비난이 뒤따르고 있다.
지금은 경질된 이상경 국토부 1차관은 30억원대 고가 아파트를 전세 낀 갭투자로 구입한 뒤 국민에게는 "집값이 떨어지면 사라"고 해 국민들을 화나게 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 역시 2013년 재건축을 앞두고 있던 서울 개포동 주공 1단지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대출을 받아 8억5000만원에 매입한 뒤 실거주하지 않고 있다가 2020년 조합원 자격으로 38평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현재 이 아파트 시세는 40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서울 서초구에 47평 아파트 두채를 보유한 것이 국정감사에서 밝혀지자 "한채는 자녀에게 양도하겠다"고 밝혔다가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최근 시세보다 조금 낮은 가격으로 아파트를 급하게 처분했다.
10·15 대책 이후 민심의 흐름이 심상치 않자 정부·여당은 이런 저런 추가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다. 강화된 LTV(주택담보대출비율) 40% 규제를 대환 대출에 적용해 서민들의 불만이 폭주하자 부랴부랴 기존 70%로 한발 물러섰다. 그뿐이 아니다. 전세 퇴거 자금 대출 혼선, 비주택 LTV 규제 정정 등 대책 발표 후 '땜질 처방'만 반복했다.
사실 부동산 정책은 답은 뻔한데 맞추기가 어렵다. 공급과 수요가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그야말로 안하는 것만도 못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특히 28번의 크고 작은 정책을 쏟아낸 문재인 정부의 어설픈 부동산 정책 때문에 시장의 신뢰성은 물론 정권마저 잃어버리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지금의 논란은 투기성 자산 보유를 통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게 한 제도적 허점과 불공정한 규제 구조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을 갖고 규제보다는 공급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과 함께 세제 정상화, 공직윤리 강화 등이 조화를 이루는 종합적 부동산 정책을 내놓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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