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산업연구센터, 한국상품학회가 개최한 면세산업 세미나서 쓴소리 쏟아져
"쇼핑에서 체험으로 트렌드 급변, '박스 떼기' 수출업 벗어나야 산다"
"면세점 산업은 외부 환경 변화에 민감해 언제나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위기는 과거와 결이 다릅니다. '이 시기만 버티면 다시 매출이 올라갈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거대한 메가 트렌드 변화와 맞물린 '구조적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면세산업이 엔데믹 이후에도 긴 침체의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상황을 일시적인 불황이 아닌, 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구조적 붕괴의 전조로 진단했다.
유통산업연구센터는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에서 한국상품학회와 공동으로 '한국 면세산업의 시작과 오늘 그리고 미래'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구진경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면세점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데이터를 통해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날 구 연구원은 '국내 면세점 현황과 특성'을 주제로 발제에 나섰다. 구 연구원은 "2024년 국내 면세점 매출은 14조 원 수준에 머물며 회복세가 둔화된 반면, 중국 면세점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급성장하며 한국을 턱밑까지 추격했다"고 진단했다.
단순히 엔데믹 이후 관광객이 늘어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구 연구원은 "과거 단체 관광객 중심의 '쇼핑 관광'에서 개별 여행객(FIT) 중심의 '체험 관광'으로 트렌드가 급변했고, 해외 직구 활성화로 면세점의 독점적 가격 경쟁력이 상실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시내 면세점 매출 의존도가 80%에 달하는 한국 구조상, 시내 면세점의 부진은 곧 산업 전체의 셧다운을 의미한다.
면세점을 '황금알'로만 인식해 규제 일변도로 대응해온 정부와 공항공사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됐다. 인천국제공항공사 김범호 부사장은 "지난 24년간 면세점으로부터 받은 임대료가 10조 원이 넘는다"며, 이는 제2터미널 건설 등 공항 인프라 확장의 핵심 재원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는 이 막대한 재원이 정작 위기에 빠진 면세 산업의 경쟁력 강화나 재투자로는 이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김태훈 경복궁면세점 대표는 "특허 수수료의 95% 이상을 대기업이 내고 있는데, 이 재원이 면세 산업 발전을 위해 쓰이는지 알 길이 없다"며 기금 운용의 투명성과 산업 재투자를 촉구했다.
유통산업연구센터 박창영 고문은 "면세점은 특혜 산업도, 세금을 안 내는 산업도 아니다"라며 "특허 수수료, 법인세, 공항 임대료 등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음에도 '불투명한 독과점 산업'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규제 강화로 이어져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었다"고 지적했다.
업계를 대변하지 못하는 한국면세점협회에 대한 쓴소리도 이어졌다. 안혜진 시티면세점 대표는 "협회 이사장 자리가 관세청 퇴직 관료들의 쉬어가는 낙하산 자리가 됐다"며 "1~2년 머물다 떠나는 이사장들은 업계의 절박함을 전혀 피부로 느끼지 못하기에 협회가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산업의 미래는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전문가들은 위기 극복의 해법으로 비즈니스 모델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주문했다. 커니(Kearney) 고병욱 상무는 "과거 한국 면세점은 중국 보따리상(따이공)에 의존해, 화장품 박스를 작게 만들어 많이 싣게 하는 사실상의 '수출업'에 가까웠다"고 꼬집었다.
고 상무는 "이제는 국적별, 시간대별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타겟 마케팅을 하는 진정한 유통업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공항 이용객 중 면세점 실제 구매자는 20%에 불과한데, 이를 끌어올리기 위한 고도화된 운영 능력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위기 극복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됐다. 안 대표는 "일본 공항의 필수 구매 품목인 도쿄 바나나처럼, 한국 공항에서만 살 수 있는 독자적인 킬러 콘텐츠 개발을 정부와 공사가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대기업이 취급하지 않는 특정 품목을 중소기업에 배정하는 쿼터제를 도입하거나 임대료 요율을 차등 적용하는 등 실질적인 '상생의 그림'을 그려달라"고 호소했다.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
Copyright ⓒ Metro. All rights reserved. (주)메트로미디어의 모든 기사 또는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주식회사 메트로미디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 ㅣ Tel : 02. 721. 9800 / Fax : 02. 730. 2882
문의메일 : webmaster@metroseoul.co.kr ㅣ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이장규 ㅣ 신문사업 등록번호 : 서울, 가002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2546 ㅣ 등록일 : 2013년 3월 20일 ㅣ 제호 : 메트로신문
사업자등록번호 : 242-88-00131 ISSN : 2635-9219 ㅣ 청소년 보호책임자 및 고충처리인 : 안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