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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윤열의 푸드톡톡] 압력이 만든 간편식의 맛

연윤열 푸드테크 라이터, 식품기술사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맛있다'라는 감정은 단순히 미각의 만족을 넘어 행복한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젓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부드러운 탄력, 씹을 때마다 입안 가득히 번지는 육즙, 달착지근한 양념이 고기 결 사이로 스며들어 형성하는 풍미는 중독에 가깝다.

 

한식은 원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조리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노동력으로 비교하면 가성비 측면에서 매우 열세다. 압력 밥솥은 밀폐된 내부 공간에 열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서 온도가 올라가면 수증기가 팽창하면서 온도가 120도까지 올라가 2기압으로 밥을 짓는다. 평상시에는 1기압으로 100도에서 물이 끓지만 밀폐된 공간에서는 120도까지 올라가서 2기압이 되는 것이다. 압력밥솥은 밥을 더 빠르고 고르게 익히기 위해서 내부 압력은 일반적으로 70~80 kPa (킬로파스칼)정도로 유지된다.

 

레토르트 식품은 압력 밥솥처럼 완성된 음식을 특수 재질의 파우치 용기에 담아 고온, 고압으로 미생물을 멸균하기 때문에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며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다. 레토르트 식품은 국, 탕, 찌개는 물론 카레, 짜장, 볶음밥, 면류, 디저트, 이유식, 캠핑용, 군용식량까지 매우 다양해서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한국의 간편식 시장은 작년 기준 5조 원을 넘어섰고, 레토르트 간편식 시장은 급성장 중이다. 그러나 이 분야는 늘 한가지 난제를 갖고 있다.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고온으로 살균하기 때문에 신선함은 사라지고 풍미와 조직이 무너진다. 한식의 탕류처럼 단맛, 감칠맛, 육향이 정교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제품은 열처리로 인한 단점을 피해 가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최근 푸드테크 기술의 발전에 따라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듯 하다. 이러한 문제 해결의 중심에 바로 고압살균(HPP) 기술이 있다. 고온으로 처리하는 경우 고기를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 분자구조는 몇 분 안에 쉽게 변성되고 지방의 미세한 풍미 성분은 소실된다. 심한 경우 고기의 육질이 물러 지거나 양념의 균형이 깨져 집에서 만든 맛과 다르게 된다.

 

간편식 시장이 확대될수록 소비자가 원하는 품질에 대한 기대치는 그와 비례해서 상승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살균은 뜨겁게 가열해서 유해균을 없애는 방식이다. 하지만 고압살균은 가열 대신 600MPa(메가파스칼) 안팎의 강한 압력을 식품에 균일하게 전달하여 미생물을 비활성화하는 기술이다. 해양 최대 수심이라고 하는 마리아나 해구의 깊이가 약 11㎞라고 하는데 600MPa 압력은 60㎞ 수심에 해당한다.

 

고압살균은 야채나 고기조직을 파괴하지 않고 고온으로 가열 처리하는 방법처럼 단백질을 과도하게 변형시키지도 않는다. 조리 직후의 탄력과 육즙을 손상시키지 않는 점이 프리미엄 요소로 작용한다. 유해한 세균의 세포막을 고압으로 수축시켜 생존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현미경으로 보면 미생물만 손상되고 고기 섬유나 양념 성분은 거의 그대로 보존되는 것이 특징이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원리가 간편식의 품질을 완전히 바꾸기 시작했다. 열처리 방식에서는 고기 속에 함유되어 있는 수분이 빠져나가고 단백질이 빠르게 굳는다. 반면 압력 처리는 수분 유지력을 지키기 때문에 조리했을 때 촉촉함이 남는다. 핵산계 조미성분, 아미노산, 지방등 휘발성 향미물질은 비교적 열에 약한데, 고압살균은 이를 해치지 않는다. 덕분에 집에서 바로 볶은 맛과 유사한 풍미 프로파일이 유지된다.

 

양념은 단맛, 염도, 산도가 미세하게 균형 잡혀야 한다. 고압은 이러한 조합을 흔들지 않고 균형을 유지한다. 따라서 양념의 깊이와 조화가 그대로 살아나 소비자 만족도가 올라간다. 고압으로 병원성 미생물을 억제할 수 있어 클린라벨 설계가 가능해진다.

 

고온에서 처리한 음식에서 많이 생성되는 최종당화산물 (AGEs)의 생성을 감소할 수 있고 고열처리 식품에서 기인하는 마이야르 반응 결과 부산물의 생성이 적다. 이는 염증이나 노화의 지표 증가 가능성을 낮춘다는 의미가 된다. 압력은 지방과 단백질을 과도하게 변형시키지 않기 때문에 소화 과정의 스트레스가 적다. 양념의 당질 구조가 덜 파괴되어 급격한 혈당 상승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향을 보인다.

 

최근에는 고압살균 기술을 활용한 제품들이 프리미엄 간편식 영역에서 눈에 띄고 있다. NFC 착즙 음료, 콜드브루 커피, 전골, 비빔밥, 볶음요리, 샌드위치, 도시락 등 활용도가 점차 넓어져 1~2인 가구에서 재구매율이 증가하고 있다. 가열의 한계를 넘어선 푸드테크 기술은 결국 사람의 삶을 바꾸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열은 빼고 압력이 만든 변화가 식탁 위의 새로운 기준으로 등장하는 시점이다. /연윤열 푸드테크 라이터, 식품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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