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산업계는 새로운 정부 출범과 미국 관세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겹치며 거센 변화를 맞았다. 그 속에서도 각 업권은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초격차 기술력 강화 등 다양한 해법을 모색해왔다. 본 기획은 업권별 주요 이슈와 흐름을 되짚어보고, 산업 전반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올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중동지역의 군사적 긴장은 이전보다 더 날카로워졌다. 2025년 국제 안보 환경은 '불확실성'이라는 단어조차 부족할 만큼 가파르게 변했고, 세계는 다시 무장을 선택했다.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 한가운데에서 한국 방위산업은 단순한 부품 공급국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국가로 올라섰다. 더 빠르게 만들고, 더 안정적으로 공급하면서 2025년 한국 방산은 글로벌 주력국으로 발돋움했다.
◆속도·공급망·기술… 전쟁의 경쟁 기준이 바뀌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은 2조7000억달러(약 3804조원)에 달해 전년 대비 9.4% 증가했는데 이는 냉전 종식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이다. 또한 전쟁 장기화가 지속되면서 무기 성능보다 생산 속도와 공급망, 첨단 기술이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서방의 155mm 포탄 재고는 1년 만에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에 미국은 포탄 생산량을 지난해 월 2만 발에서 올해 월 8만 발로 확대하는 목표를 세웠고, EU도 'ASAP 프로그램'을 통해 155mm 포탄 100만 발을 조기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공급 지연이 전쟁의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다만 미국과 유럽의 대형 방산기업들은 여전히 높은 기술적 우위를 가졌지만, 복잡한 조달 구조와 생산 지연으로 제때 공급하지 못했고, 그 틈은 K-방산이 차지했다.
한국은 전차, 자주포, 장갑차, 탄약, 정비·훈련 패키지까지 통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다. 또한 조립·부품 제조 기반이 밀집되어 있어 포탄·장갑차·미사일 일부 품목에서 6~12개월 단위의 안정적 공급 계약이 가능하다. 단순한 '대체 공급' 효과를 넘어 세계 공급망 재편 속에서 나타난 경쟁력 입증이다.
실제 K9 자주포는 세계 시장 점유율 약 55%를 차지하고 있으며, 연간 생산량을 유럽 경쟁국 대비 2배 이상 빠르게 조정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산 무기의 가격 대비 성능 또한 시장을 확대하는 핵심 요소다. K2 전차의 경우 동일급 서방 전차(M1A2, 레오파르트2A7 등) 대비 가격이 약 30~40% 낮고, 유지·정비 비용까지 포함하면 총수명주기비용(LCC)이 서방 경쟁 제품 대비 50%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는 예산 대비 전력 극대화를 노리는 동유럽 국가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조건이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글로벌 국가들은 방산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현실적 대안으로 보고 있다"며 "한국은 가성비·납기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상대 국가별로 조정된 분업·현지화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K-방산 수출의 폭발 실적과 투자로 증명된 '신뢰의 구조'
2025년 한국 방산기업 4개(한화에어로·KAI·LIG넥스원·현대로템)사는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성장했다.
먼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올해 한국 방산 성장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올해 3분기 기준 매출은 전년 대비 146.5%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79.5% 늘어났다. 단순한 수출 확대 때문만은 아니다. K9 자주포, 천무, 탄약류가 유럽·중동 지역의 대량 수요로 직결되며 생산라인이 연중 가동됐고, 우주·미사일 분야 확장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도 한층 넓어졌다.
현대로템은 K2 전차의 해외 공급이 본격화되면서 매출이 전년 대비 48.1%, 영업이익은 102.1% 증가하며 두 배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폴란드를 중심으로 한 초대형 패키지 계약이 안정적으로 진행됐고, 지상전투체계 분야는 올해 회사 전체 실적을 실제로 견인했다.
LIG넥스원은 올해 가장 '질적 성장'이 두드러진 기업이었다. 정밀타격무기, 대공유도무기, 항공·전자 장비 수주가 늘며 매출 41.7%, 영업이익 72.6% 증가를 기록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변화는 R&D 투자였다. 회사의 R&D 규모는 전년 대비 89% 증가했고, 이는 한국 방산 생태계 중 가장 공격적인 기술 투자였다. LIG넥스원은 유도무기, 전자전, AI 기반 표적 식별 기술 등 전장 지능화의 핵심 요소에 집중하며 기술 중심 기업으로 확실히 체질을 바꿨다.
반면 KAI(한국항공우주산업)는 납품 일정 조정 영향으로 매출이 22.6% 감소, 영업이익 21.1% 감소하며 유일하게 실적이 뒷걸음질했다. 그러나 회사는 단기 실적보다 미래 전력을 선택하면서 R&D 비용은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이는 KF-21 전투기 개발과 유·무인 복합체계(MUM-T) 기술 확보가 향후 항공 방산의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KAI가 올해 잃은 것은 숫자지만, 얻은 것은 미래 성장곡선이다.
4개사의 수주잔고는 총 100조 원에 육박하면서 향후 수년 동안 안정적인 공급 기반을 확보했다. 이는 단순한 '일회성 수출 호황'이 아니라, 한국 방산이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 공급국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AI·무인기 대전환 2025년, 전쟁의 중심이 사람이 아니게 되다
2025년은 전장에서 '인공지능'과 '무인기'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전력의 기본 단위가 된 해였다. 드론은 전차와 견줄 전력으로 성장했고, 군집드론(드론스윔)은 기존 방공 체계를 무력화시키는 새로운 변수로 부상했다. 더불어 AI는 표적 탐지, 위협 식별, 전장 상황 판단, 전자전 대응 등 기존에 인간이 하던 역할을 점점 대체하고 있다.
한국 역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병역자원 감소와 국방 예산 효율화 필요성이 맞물리면서 육·해·공 각 군이 무인 자산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폭발물탐지제거로봇으로 국내 최초 무인체계 전력화를 달성했고, 현대로템은 다목적 무인차량 '셰르파', LIG넥스원은 정찰용 무인수상정 체계개발에 나섰다. 공군은 KF-21 전투기를 기반으로 유무인 복합체계(AAP, UCAV) 실증을 추진하며 '한국형 CCA'의 기초를 다지고 있다. CCA는 유인 전투기와 편대를 이뤄 공대공·공대지·전자전·정찰 임무를 함께 수행하는 무인기다.
AI와 무인기는 더 이상 기술 옵션이 아니라 전쟁의 언어 자체를 바꾼 요소이며, 2025년 한국 기업들은 이 변화의 중심을 향해 확실하게 이동했다.
올해 한국 방산산업의 성과는 단순한 호황이 아니다. 세계 방산 시장의 기준이 '최첨단 무기'에서 '지속 가능한 공급국'으로 바뀌는 전환점에서, 한국은 정확히 그 자리를 선점했다. 동시에 AI·무인기·전자전 등 미래 전장 기술 투자도 가속화하며 'K-방산 2.0 시대'의 초입에 들어섰다.
유진투자증권 양승운 연구원은"AI와 자율화가 무기의 눈과 귀를 대신하면서 전장은 더 넓고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며 "무인의 시대는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생존의 논리로 국가 간 전력 격차를 재편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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