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바야흐로 '팬덤'의 시대다. 과거 노사모가 정치인 팬덤의 서막을 알렸다면, 지금 여의도를 지배하는 팬덤은 그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민주당의 개딸(개혁의 딸)로 대변되는 강성 지지층의 등장을 보며 "전체주의적 행태"라 비판하던 보수 정당 역시, 이제는 팬덤 현상 한가운데 서 있다. 이러한 팬덤이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다.
대상만 다를 뿐, 방식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특정 인물을 절대 선(善)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비판을 악으로 간주하며 집단행동에 나선다. 여야를 막론하고 특정 인물을 아이돌처럼 소비하고, 그를 맹목적으로 호위하는 이 현상.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정치 문화인가, 아니면 민주주의가 중우(衆愚)정치로 퇴행하는 징후인지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팬덤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정당의 무력화다. 과거 정치는 정당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정책과 노선으로 경쟁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능동적인 대중이 등장한 지금, 정당의 시스템은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처럼 여겨질 수 있다.
이제는 정당을 거치지 않고 유력 정치인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 내 손으로 정치인을 키우고 지킨다는 정치적 효능감은 투표장에만 머물던 유권자를 광장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로 끌어냈다. 이것은 분명 민주주의의 외연을 넓힌 참여의 에너지다.
문제는 그 에너지가 향하는 방향이다. 팬덤 정치의 핵심 동력은 배타적 분노다. "우리 정치인을 지켜야 한다"라는 비장함은 내부의 건전한 비판조차 배신으로 낙인찍는다. 예를 들면,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당내 비판 세력을 '수박'이라 부르며 좌표를 찍었던 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이 국민의힘에서도 이루어지려 하고 있다. 지금의 팬덤 정치는 정치인을 공적 대리인이 아닌, 욕망이 투영된 아바타이자 아이돌로 변질시키고 있다.
정당의 생명은 다양성과 자정 능력에 있다. 그러나 팬덤의 화력이 당의 시스템을 압도하는 순간, 정치인들은 당론이나 양심보다 당원 게시판의 여론을 먼저 살피게 될 것이다. 극단적 목소리만 과대 대표되는 반지성주의가 당을 잠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팬덤 정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팬덤 현상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상수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을 새로운 문화라고 긍정하며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당은 팬덤의 함성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
이제 정치권은 팬덤 뒤에 숨는 비겁함을 버려야 한다. 지지자들의 환호가 달콤할지라도, 그들이 배타적인 공격성을 보일 때는 단호하게 자제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 남을 공격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진정한 정치인의 자격이다.
지지자들 또한 변해야 한다. 진정한 지지는 맹목적인 숭배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정치인이 민주적 절차를 지키는지, 품격을 잃지 않는지 감시하는 눈을 가질 때 팬덤은 비로소 건강한 정치 문화로 인정받을 수 있다.
여의도를 집어삼킨 팬덤 정치. 이것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흉기가 될지, 정치를 혁신하는 도구가 될지는 오직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다. 맹신하는 신도가 될 것인가, 깨어있는 시민이 될 것인가.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안동현 전 국민의힘 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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