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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데미안 허스트, 왜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인가

/홍경한 미술평론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지난해 론 뮤익(Ron Mueck)의 극사실주의 조각 회고전으로 53만 관람객을 동원하며 서울관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신체의 물질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시각적 압도감은 대중의 경탄을 자아냈지만, 1990년대 후반 조각의 문법을 갱신한 작가의 회고전을 2025년 한국의 국립기관에서 개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질문도 남겼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채 내려지기도 전에 또 하나의 블록버스터급 전시가 마련됐다. 바로 지난 3월 20일(~6월 28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막한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개인전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이다.

 

허스트는 1980년대 말 골드스미스 대학 출신들을 주축으로 결성되어, 파격적인 소재와 충격 요법,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과의 긴밀한 공생을 통해 침체되었던 영국 미술을 세계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격상시킨 예술가 그룹인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중심인물이다. 지금은 그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인 작가다.

 

그런 그가 한국 유일의 국립미술관에 초대된 건 올해를 시발점으로 하는 '국제 거장전 정례화'에 의해서다. 영국의 '테이트 모던'이나 미국의 'MoMA'에서나 볼 법한 전시를 국내 관람객에게 소개한다는 취지다.

 

전시장에는 허스트의 예술 세계를 지탱해 온 핵심 작품 50여점이 빼곡히 들어섰다. 대표작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을 필두로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 <죄인>(1988), <천년>(1990) 등이다. 2017년 베니스에서 선보인 '믿을 수 없는 난파선의 보물' 전만큼은 아니지만 규모와 강렬함 측면에선 꽤나 묵직한 편이다. 무엇보다 삶, 죽음, 종교, 과학, 믿음, 욕망 등을 주제로 한 허스트 예술 40여년의 궤적을 일거에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

 

그러나 이 전시에 대한 미술계 전문가들의 비판도 적지 않다. 굳이 30억 원이라는 세금을 쏟아 부으며 이미 '역사화'가 완료된(철지난) 작가를 '모실' 필요가 있는지, 해외에 나가야만 볼 수 있는 작품들을 소개한다는 게 목적이라지만 그게 왜 국립현대미술관인지는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의 유명 미술관 소장품들을 대중적 비즈니스로 활용하는 전시기획사는 우리나라에도 차고 넘친다.

 

90년대 YBA를 통해 보여준 파격이 이미 상업 화랑과 아트페어를 통해 충분히 소구되었다는 점도 어째서 지금 이 전시를 열어야 하는지 되묻게 하는 요인이다. 무엇이 새로운지 불분명한 '뒷북 기획'이라는 것이다. 특히 국립 미술관이 동시대 미술의 담론형성보다 '흥행'을 좆는 듯한 여운이나, 싫든 좋든 '사업가'에 가까운 작가의 시장 가치를 더욱 공고히 해주는 '보증인' 역할을 자처하는 현실도 이 전시의 그늘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본령은 '좋은 전시를 가져오는 곳'이 아니라, 한국미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균형 있게 구축하고 그 관계망을 연구·제시하는 것이다. 국가의 문화적 방향성을 설정하면서 한국 미술의 근간을 체계적으로 설계하는 책무가 우선이다.

 

따라서 국립현대미술관이 허스트를 선택한 것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단지 '세계적 작가 소개'가 아닌, 이 전시가 한국 현대미술의 맥락과 어떻게 접속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지점이 명확히 읽히지 않는다. 완성된 브랜드의 광채를 빌려 기관의 위상을 투사하는 것보다 더욱 가치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르진 않을 텐데 말이다.■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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