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거리는 온통 붉고 푸른 유혹으로 넘쳐났다. 평소에는 문턱조차 높던 정치인들이 시장 바닥에 엎드려 조아리고, 거친 손을 맞잡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이크를 잡은 그들의 입에서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이 약속이라도 한 듯 터져 나왔다. 민심을 받들고, 국민의 삶을 최우선으로 챙기겠다는 다짐들이 사방에 메아리쳤다.
하지만 늘 그렇듯, 풍요로운 약속의 계절은 짧다.
투표함이 닫히고 당선증이 교부되는 순간, 마법처럼 공기의 흐름이 바뀐다. 시장통에서 허리를 굽히던 이들은 어느새 높은 단상 위로 올라가고, 국민의 목소리는 거대한 권력의 장벽에 부딪혀 희미해진다. 민심을 외치던 입은 비판을 방어하는 방패가 되고, 권력은 오롯이 당선인과 그 세력의 전유물이 되어간다.
"선거가 끝나면 국민은 곧바로 당선인의 노예가 된다."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가 던진 이 거칠고도 서글픈 경고는, 오늘날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권력은 속성상 감시받지 않으면 오만해지고, 견제받지 않으면 반드시 국민 위에 군림하려 들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치 현실을 보라. 선거 전에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이들이, 당선 이후에는 자신들을 향한 정당한 비판조차 '정치 공세'라며 불쾌해한다. 국민의 고단한 삶을 해결하는 정책보다, 어떻게 하면 권력을 유지하고 다음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지 계산하는 정치공학이 판을 친다. 우리가 피땀 흘려 세운 민주주의의 무대 위에서, 주인이어야 할 국민은 어느새 변방의 구경꾼으로 밀려나 있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격언이 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이 말은 결코 과거 역사책 속에만 존재하는 과격한 수사가 아니다. 우리가 오늘날 누리는 투표의 자유,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권리는 결코 권력자들이 시혜처럼 베푼 것이 아니다. 수많은 평범한 시민의 희생과 저항, 불의에 맞서 자유를 지키려 했던 치열한 투쟁의 대가로 얻어진 '피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선거일 단 하루, 투표 도장을 찍는 행위로 완성되지 않는다. 방심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린다. 국민이 침묵하고 방관할 때, 권력은 스스로를 견제하는 법이 없다. 침묵은 오만한 권력에게 보내는 가장 강력한 지지서한과 다름없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우리가 뽑은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며, 잘못된 길을 갈 때는 거침없이 저항해야 한다.
선거는 끝나겠지만, 민주주의는 끝나지 않는다. 권력을 주인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진짜 주인으로 남을 것인가. 그 마지막 힘은 결국 투표함이 닫힌 뒤 시작되는 국민의 깨어 있는 행동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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