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마트 매대를 직접 보며 브랜드를 고르거나, 포털 창에 맛집을 검색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식품·외식업계의 마케팅 대상이 인간 소비자에서 'AI 알고리즘'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어서다. 이른바 'B2AI(Business to AI)' 전략이 식품업계의 새로운 생존 방정식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식품 기업들의 지상 과제는 대형마트의 '골든 존(소비자 눈높이에 맞는 매대)'을 선점하거나, TV 광고 및 SNS 인플루언서를 통해 소비자에게 시각적 자극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AI가 소비자의 구매를 대행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외형적 마케팅의 위력은 감소하고 있다. AI 추천 영역에서는 패키지나 감성 카피보다 정형화된 데이터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식품 대기업들은 자사 제품의 영양 성분, 칼로리, 원재료, 알레르기 유발 물질 등의 데이터를 AI가 가장 완벽하게 긁어갈 수 있는 형태로 재구조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과거의 검색엔진 최적화(SEO)를 넘어선 'AI 엔진 최적화(AIEO: AI Engine Optimization)' 고도화다.
대표적으로 CJ제일제당은 공식몰 'CJ더마켓'을 통해 지난해부터 생성형 AI 기술 기반의 대화형 자연어 검색 서비스 'Fai(파이)'를 선보였다. 상품명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 기존 '목적형 구매' 검색의 한계를 깨고 AI가 고객의 모호한 질문 속 의도를 파악해 제품을 골라주는 시스템이다.
소비자가 "오늘 저녁 뭐 먹지?"라거나 "고단백이면서 저칼로리인 간편식은 없을까?"라고 물으면 AI가 수많은 제품의 영양성분, 알레르기 유발 물질, 원재료 함량 데이터를 즉시 분석해 맞춤형 상품을 제안한다. 구매 후기와 검색 패턴 등 사용자 데이터를 AI가 스스로 학습해 캠핑, 홈파티 등 특정 상황(T.P.O)에 맞는 최적의 식품 조합을 역으로 큐레이션해 주기도 한다.
풀무원헬스케어 역시 헬스케어 플랫폼 '디자인밀' 모바일 앱을 전면 개편하고, AI 기반의 '개인 맞춤형 토탈케어 서비스'를 전면에 내세웠다. 기존의 단순 식단 구독 서비스를 넘어 AI가 고객의 식습관 데이터를 분석해 영양 진단부터 식단 추천, 섭취 후 관리까지 이어지는 촘촘한 통합 알고리즘을 구축했다.
매일 아침 AI가 전날 섭취한 데이터를 분석해 부족하거나 과다한 영양소를 짚어주는 '데일리 영양 리포트'를 배달하며, 음식 사진을 촬영하거나 음성으로 메뉴를 말하기만 하면 AI가 자동으로 식단을 기록하고 영양소를 분석하는 기술도 도입했다. 회사는 전문적인 영양 설계 노하우와 고도화된 데이터 분석 기술을 결합해 라이프스타일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AIEO에 속도를 낼 수 있는 바탕에는 정부 기관의 방대한 공공 데이터 인프라가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농촌진흥청은 국민 식생활 변화와 식품산업 현장 수요를 반영해 식품 3366점에 대한 영양성분 정보 30만 4853건을 담은 '국가표준식품성분 데이터베이스(DB) 10.4'를 공개했다.
1970년 초판 발간 이후 5년마다 개정되던 식품성분표는 2019년부터 매년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갱신되며 고도화되고 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영양조사나 학교급식시스템 등 공공 영역뿐만 아니라, 식품업체의 제품 개발, 영양표시 관리, 그리고 AI 기반의 맞춤형 식단 설계 등 식품산업 전반의 '기준점'으로 쓰이고 있다. 민간의 AI 알고리즘이 오차 없이 구동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정밀한 '데이터 나침반'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B2AI 마케팅의 성공은 단순히 데이터 입력에 그치지 않는다. AI 알고리즘은 아무리 영양 성분이 훌륭한 제품이라도 '품절'이 잦거나 '배송 예측 시간'이 맞지 않으면 추천 순위에서 사정없이 배제한다. 결국 전방의 AI 마케팅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후방 밸류체인(물류·유통)의 전면적인 AI화가 필수적이다.
최근 유통·외식업계가 AI 기반의 수요 예측 및 스마트 물류 시스템 도입에 천문학적인 액수를 투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농산물 작황과 기상 흐름을 AI로 분석해 원자재 가격 변동에 선제 대응하는 것은 물론, 요일별, 날씨별 주문량을 예측해 식자재 발주를 자동화함으로써 '품절 제로'와 '잔반 최소화'를 동시에 꾀한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제품 패키지를 예쁘게 만드는 것보다 소비자가 AI에게 질문했을 때 우리 제품이 가장 먼저 매칭되도록 미세한 영양 성분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태깅(Tagging)하는 작업이 훨씬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초개인화된 AI 식생활이 가져올 편리함을 환영하면서도 독점에 따른 부작용을 경고한다. 소비자가 AI의 추천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될 경우 자본력으로 AI 알고리즘 최적화를 끝낸 몇몇 대기업의 제품만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 식품업체나 골목상권의 밀키트 전문점은 AI의 선택지에서 아예 지워질 위험이 크다. 또 데이터에 기반한 효율성만 추구하다 보면 식문화의 다양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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