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급락후 코스피 8000 재탈환
증권가 '일만피' 공식 전망도 속속…예금에서 증시로 머니무브, 신용융자 늘며 상승장 가속
반도체 쏠림·빚투 급증·외국인 차익실현·유가와 금리 변수
코스피가 사상 처음 8000선을 넘어섰다. 시장이 더 놀라는 것은 숫자보다 속도다. 지난해 10월 4000선을 돌파한 이후 불과 6개월여 만에 지수는 두 배가 됐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에 따른 반도체 슈퍼사이클, 상법 개정과 자본시장 구조 개혁, 예금에서 증시로 이동하는 시중자금이 동시에 맞물리며 한국 증시는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상승장을 연출하고 있다. 증권가에서 나오는 '일만피(코스피 1만)' 전망은 이제 '대세'가 됐다. 하지만 특정 업종 쏠림, 빚투 급증, 외국인 차익실현, 실물경제와의 괴리는 '팔천피' 뒤에 드리운 그림자로 꼽힌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99.80포인트(2.55%) 오른 8047.51에 마감하며 종가 기준 8000선을 돌파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시가총액도 6058조원에서 6581조원으로 증가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15일 장중 사상 처음으로 8000선을 돌파, 8046.78포인트까지 고점을 올리며 또다시 상승 기대가 커진바 있지만 팔천피 돌파 직후 약 25분 만에 하락 전환해 한때 7371.58까지 밀렸다가 488.23포인트(6.12%) 급락한 7493.18에 장을 마감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은 8100을 거뜬히 넘기며 '일만피'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코스피가 1000에서 2000까지 오르는 데 18년 4개월, 2000에서 3000까지 13년 5개월, 3000에서 4000까지 4년 9개월이 걸렸다. 반면 4000에서 5000까지는 3개월, 5000에서 6000까지는 한 달, 6000에서 7000까지는 47거래일, 7000에서 8000까지는 단 7거래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15일 8000선 돌파 직후 급락하며 7493.18에 마감했지만, 대체공휴일을 제외하고 단 6거래일 만에 8000선을 탈환을 넘어 8100선마저 돌파하며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 반도체와 개혁 기대가 만든 '코스피 1만' 전망
이번 랠리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폭증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전망이 급격히 상향되면서 코스피 전체를 끌어올렸다. 26일 종가 기준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대비 132.26% 상승했고, SK하이닉스는 203.10% 올랐다. SK증권은 최근 두 회사의 목표주가를 각각 50만원과 300만원으로 제시했다. 국내 증권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도체 호황은 경제 전망도 바꿔놓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2.5%로 상향 조정했다. 성장률 상향분 가운데 절반 이상이 반도체 수출 확대에 따른 효과라는 설명이다. 지난 4월 반도체 수출은 319억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73.5% 급증했고 전체 수출의 37.1%를 차지했다. KDI는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2390억달러로 전망했다.
실적이 상승장의 본체라면 정책은 밸류에이션 재평가를 촉진하는 촉매다. 상법 개정과 지배구조 개선, 밸류업 정책, 외국인 투자 접근성 확대가 동시에 추진되면서 한국 증시의 구조적 할인 요인이 빠르게 완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JP모건은 반도체를 비롯해 방산, 조선, 전력기기 등 미래 성장 산업의 20% 이상 이익 증가와 정부의 개혁 정책을 한국 증시 재평가의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정치권의 추가 입법도 시장 기대를 키우고 있다. 정부는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 집중투표제 확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세 차례 상법 개정에 이어 중복상장 원칙 금지와 코스닥 2부 리그 승강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주가 누르기 방지법"이 주목받고 있다. 2년 연속 PBR 1배 미만이거나 수익성이 낮은 상장사에 기업가치 제고계획 공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7월부터 저PBR 기업 리스트를 반기마다 공개하고 종목명 앞에 "저PBR" 태그를 붙이는 방안도 준비 중이다.
이 같은 기대를 바탕으로 증권사들의 목표치도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KB증권은 올해 코스피 목표 상단을 1만500으로 상향 조정했고, 모건스탠리는 연말 목표 범위를 6500~9500으로 제시하며 강세장에서는 1만포인트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 반도체 쏠림·유가·금리까지…팔천피의 진짜 시험대
코스피는 올해 들어 약 88% 올라 주요 20개국(G20) 증시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지만, 시장이 환호하는 바로 그 이유가 동시에 가장 큰 불안 요인이기도 하다. 지금의 상승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대형주와 정책 기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상승 동력이 강력한 만큼 그 동력에 대한 의존도 역시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의미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반도체 업종의 올해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5.2배에 불과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코스피 PER은 15.3배에 달한다. 반도체는 실적 개선이 주가 상승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다른 업종은 상대적으로 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졌다는 뜻이다. 산업 지표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올해 1분기 반도체 생산은 전 분기 대비 14.1% 증가했지만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 생산은 0.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 4월 수출 역시 반도체가 전년 동월 대비 173.5% 급증하며 전체 수출의 37.1%를 차지했다. 성장과 수출, 주가가 모두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반도체 한 산업이 상당 부분을 떠받치고 있는 구조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최근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차익실현에 나서고 있다. 지난 7일부터 13일까지 5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가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각각 11조원, 10조원 넘게 순매도했다. 증권가에서는 구조적 이탈보다 단기 급등 이후 숨 고르기라는 해석이 우세하지만, 상승장의 핵심 동력에 대한 수급 변화가 시작됐다는 점은 부담이다.
실물경제의 체감 온도는 여전히 낮다.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이달 106.1를 기록하며 기준선인 100을 겨우 사수했다. 주식시장에서는 '일만피' 전망이 쏟아지고 있지만 가계가 느끼는 체감 경기는 오히려 위축되고 있다는 의미다.
하반기로 갈수록 변수는 더 많아진다. 일부 증권사들은 8~9월을 전후해 반도체 투자심리가 정점을 통과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BNK투자증권은 최근 SK하이닉스 투자의견을 '보유'로 낮추며 HBM4 확대에 따른 수익성 둔화를 예상했다.
중동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과 물가 압력도 부담이다. KDI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7%로 전망했다. 국내외 중앙은행 인사들은 잇따라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승훈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8~9월에는 반도체 투자심리 피크아웃 우려가 제기될 수 있고,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차익실현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며 "가을철 조정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코스피 '8000'은 한국 증시가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다는 상징적 숫자다. 그러나 숫자가 높아질수록 시장은 더 좁은 변수에 의존하게 된다. 반도체 실적, 정책 기대, 풍부한 유동성이 만들어낸 상승 동력이 내수와 소비, 고용, 중소형주까지 확산된다면 8000선은 '코스피 1만 시대'로 가는 중간 이정표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반도체 업황 둔화나 금리 충격이 현실화될 경우, 팔천피는 한국 증시의 가능성과 취약성을 동시에 보여준 기록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코스피 '8000'은 한국 증시가 처음으로 '1만 시대'를 논의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섰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숫자다. 반도체 실적 개선과 자본시장 개혁 기대, 풍부한 유동성이 맞물리면서 시장의 눈높이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다만 향후 상승 흐름이 이어질지는 반도체 업황의 지속 여부와 금리 방향, 그리고 자본시장 개혁이 실제 기업 가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연주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 개선 속도는 빠르지만 여전히 글로벌 경쟁사 대비 밸류에이션은 낮은 수준"이라며 "중장기 이익 안정성에 대한 신뢰가 확보된다면 추가적인 재평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만피 시대'를 열고 보다 장기적으로 미국처럼 주식시장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려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며 "기술 인재 육성, 벤처투자 생태계 조성, 연구개발 지원, 규제 환경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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