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리서치]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 "실패를 통해 혁신"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은 의사로 일하다 기업인의 길을 걷게 된 남다른 이력의 소유자다. 신 의장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두 번의 험난한 파고를 넘었다. 그리고 교보생명의 내실 성장을 주도해 왔다. ◆ 산부인과 의사, 내실경영 '산파'로 신 의장은 1996년 11월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직을 뒤로 하고 교보생명 부회장에 취임했다. 당시 암투병 중이던 선친 신용호 창립자의 간곡한 권유에 따른 것이다. 신 의장은 18년 동안 입었던 흰 가운을 벗고 '인생 2막'을 시작했다. 4년 뒤인 2000년 5월 교보생명 대표에 올라 최고 사령탑을 맡았다. 그해 교보생명은 총체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외환위기 여파로 수년간 떠안은 자산 손실만 2조3869억원에 달했다. 순손실 규모만 2540억원이었다. 신 의장은 '수술대'에 오른 교보생명에 메스를 꺼내들었다. 당시 보험업계는 허울 뿐인 외형 경쟁 탓에 부실 계약 사례가 만연했다. 설계사와 영업소장이 합심해 가공 계약을 체결하고 수당만 받아 바로 해약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신 의장은 불법적인 영업 관행에 마침표를 찍고 매출 경쟁이 아닌 교보생명의 창업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정도'를 벗어나는 것은 그가 추구하는 경영 철학과 결이 맞지 않았다. 수입보험료 확대가 아닌 고객을 앞세운 퀄리티 경영, 내실 경영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2011년엔 보장 유지에 초점을 맞춘 '평생든든 서비스'를 선보이고 고객 중심 경영을 한층 강화했다. 재무설계사들이 고객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현재 가입 중인 보험상품의 내역을 직접 설명해주고 놓친 보험금이 없는지 확인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고객서비스 방식이었다. 신 의장은 "의대 교수를 하다가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평생 생보업에 종사하게 된 제 운명을 그 무엇보다 보람 있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생명보험이야말로 고난을 겪는 사람들을 다른 이들이 사랑의 마음으로 도와주는 상부상조 정신을 실천하는 가장 아름다운 금융제도이다"라고 말했다 ◆ '인본주의적 지속가능경영' 선친 때부터 이어온 '국민교육 진흥'이란 창립 이념과 사람 중심의 기업문화는 이해관계자 모두의 균형 있는 성장을 추구하는 '인본주의적 지속가능경영'으로 한 단계 도약했다. 기업의 존재 이유를 '사회적 책임(CSR) 경영'보다 한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개념이란 평가다. 신 의장은 회사가 단순한 이익 창출을 넘어 고객, 재무설계사(FP), 임직원, 투자자, 정부, 지역사회 등을 균형 있게 고려할 때 지속가능한 상생의 선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기업 경영을 산소에 비유해 "사람은 산소가 없으면 살 수 없지만 산소를 위해 살지 않는 것 처럼 기업의 이익은 생존을 위한 연료지만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본질에 집중해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한다는 게 신 의장의 확고한 경영 철학이다. 교보생명의 혁신은 괄목할 만한 재무성과로 이어졌다. 2000년 2500억원이 넘는 적자에서 연간 5000억원대 순이익을 올리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도 좋은 점수를 주고 있다. 무디스 9년 연속 'A1', 피치 11년 연속 'A+' 등 세계 주요 신용평가사로부터 금융권 최고 수준의 신용등급을 부여받았다. 업계의 부당한 관행을 털어내고 내실 경영에 집중해 올린 성과여서 더 돋보인다는 평가다. 신 의장의 인본주의적 지속가능 경영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세계보험협회(IIS)로부터 '보험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2023 보험 명예의 전당 월계관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1996년 명예의 전당에 오른 신용호 창립자에 이어 세계 보험산업 역사상 최초로 부자(父子)가 함께 헌액됐다. 조시 란다우 IIS 대표는 "신 의장은 변화 혁신과 통찰적 리더십, 사람 중심 경영을 통해 '보험 명예의 전당'의 정신을 구현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신 의장은 "생명보험이 사랑의 정신으로 운영되는 금융제도임을 널리 확산시키고 생보사들이 우리 사회를 보호하는 사회복지 및 금융시스템으로 충실히 운영되도록 노력하겠다"며 "그것이야말로 저의 사명이자 사회적 책임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 '정도경영'·'윤리경영' 실천 신 의장의 '정도경영'은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올 사람이란 얘기가 나돌 정도다. 그는 "세상에는 거저와 비밀이 없다"는 선친의 가르침을 새기며 오랜 윤리경영으로 쌓은 교보생명의 명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신용호 창립자가 2003년 별세할 때 신 의장 일가는 당시로서는 사상 최대 규모인 1830억원의 상속세를 냈다. 당시 세금을 납부할 현금이 없었던 신 의장은 납세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교보생명 주식을 물납하기도 했다. 또한 신 의장은 회사 경비 역시 결코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매년 명절 때마다 임원에게 보내는 선물세트 역시 모두 사비에서 충당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신 의장의 독특한 소통 방식은 중요 포인트마다 임직원들의 행동 변화를 이끌었다. 지난 2000년 회사가 어려울 때 교보생명이 금융감독원에 파산 신청을 냈다는 가상 뉴스를 제작한 게 대표적이다. 마치 지상파 방송 뉴스처럼 만들어진 덕에 당시 연수원에 모여 시청한 임직원들이 실제 상황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이는 회사 안팎에 "변화와 혁신이 아니면 모두 죽는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신 의장의 개혁 추진에도 큰 도움이 됐다. 지난 2001년 회사 비전과 기업이미지(CI)를 선포하는 자리에서 개그맨 이경규씨의 가면을 쓰고 등장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간판만 바꾼다고 회사가 변하는 게 아니라 임직원들의 행동이 바뀌어야 비로소 진정한 혁신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고객만족 재무설계사(FP) 대상 시상식에선 컨설턴트의 수고에 보답한다는 의미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으로 감동을 선사했다. 임직원들 앞에 통기타를 든 가수로 변신하거나 가짜 수염을 붙인 채 난타공연을 선보이는 등 재벌 회장답지 않은 친근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신 의장은 직원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이 필요하다"며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고객의 문제를 찾고 해결하기 위한 과감한 혁신과 이 과정에서 조직원들이 건강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는 기업 문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 의장은 "실패는 성공을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며 "실패를 통해서 배우고 또 혁신을 지속해야 된다"고 강조한다./김주형기자 gh471@metroseoul.co.kr <출생 연도> ▲1953년 10월 31일 <주요 학력> ▲1972년 경기고 ▲1978년 서울대 의과대학 ▲1981년 서울대 의학대학원 의학석사 ▲1989년 서울대 의학대학원 의학박사 <주요 경력> ▲1987~1996년 서울대 의과대학 산부인과 교수 ▲1993년~현재 대산문화재단 이사장 ▲1996년 교보생명 부회장 ▲1999년~현재 교보생명 대표 겸 이사회 의장 ▲2000년~현재 한국메세나협회 부회장 ▲2004년~현재 한국여성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