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윤열의 푸드톡톡] AI가 150년 된 화학반응에서 요리의 답을 찾다
영화 '아이언맨' 속 인공지능(AI) 비서 '자비스'는 주인공의 말 한마디에 복잡한 데이터를 분석해서 최적의 해결책을 척척 내 놓는다. 만약 이런 AI 기술을 활용한 AI 셰프가 우리 집 주방에 들어 온다면 된장찌개를 가장 맛있고 건강하게 끓이는 법과, 스테이크를 완벽하게 구워서 최고의 풍미를 찾아내는 비법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공상과학 영화 같았던 이 상상이 현실이 될 날이 머지 않았다. 최근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국내 과학기술원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 한 편이 그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화학자들은 온도, 농도, 시간 등 수많은 변수들이 얽혀 있는 화학 반응의 최적 조건을 찾기 위해 제한된 실험에 의존 해야만 했다. 마치 유명 셰프가 오랜 경험과 직관에 의존해 레시피를 개발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로봇 자동화 기술을 이용하면 하루에 수천 가지가 넘는 다양한 조건에서 음식을 조리할 때 분자간 화학 반응을 실험하고, 그 결과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획기적인 플랫폼 개발이 가능하다. 이는 사람이 평생 실험을 해도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것을 단 며칠만에 끝내고,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최적의 황금 레시피를 찾아내는 것과 유사하다. 식품의 맛, 향, 식감은 아미노산, 당, 유기산 등 다양한 성분간의 복잡한 화학반응에 의해 결정된다. AI 로봇플랫폼은 온도, 시간, pH, 원료의 농도 비율 등 수많은 변수를 조합해서 탐색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특정 로스팅 조건에서 피라진과 같은 향기 성분이 최대로 생성되는지, 혹은 인돌과 같은 불쾌한 냄새를 유발하는 부산물을 최소화하는 조건을 체계적으로 찾아낼 수 있다. 이 AI 로봇플랫폼은 지치지 않는 초정밀 셰프 군단과도 같다. 로봇 팔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온도, 시간, 재료의 농도를 미세하게 바꿔가며 수백, 수천 개의 요리를 동시에 진행한다. AI는 이 수많은 요리의 맛과 품질을 자외선-가시광선 분광법이라는 빛을 이용한 분석기술을 활용해 음식에 빛을 쏘아 흡수되거나 반사되는 패턴을 분석하면, 그 안에 어떤 성분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기존 정밀 분석기술이 한가지 샘플을 분석하는 데 몇 시간씩 걸리고 비용도 비쌌던 반면, 이 기술은 샘플 하나당 1분 이내에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분석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로봇은 망설임 없이 수천 가지 실험을 진행하며 맛과 영양의 비밀을 담은 거대한 지도를 그려 나갈 수 있다. 이 기술은 단순히 최상의 레시피 하나를 찾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연구팀은 150년 가까이 연구된 고전적인 화학반응을 이 로봇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던 9종류의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였고 이들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는지 전체적인 복잡계를 밝혀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재료의 비율을 조금 바꾸는 것 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전등 스위치를 켜고 끄듯, 원하는 맛의 경로를 활성화시키는 것과 흡사하다. 이 원리를 돼지고기, 김치, 두부, 고추장 등 같은 재료로 김치찌개를 끓인다고 가정해 볼 때, 깊고 진한 맛을 원한다면 돼지고기 지방을 먼저 충분히 볶아 기름을 이끌어 낸 뒤 신김치를 넣고 특정 온도에서 오래 끓이면 마이야르 반응이 극대화되어 깊고 진한 감칠맛이 폭증하는 김치찌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깔끔하고 시원한 맛을 원한다면 반대로 채수에 김치를 먼저 넣고 짧게 끓여 아삭함을 살린 뒤 돼지고기와 두부를 나중에 넣어 익히면, 같은 재료라도 완전히 다른 깔끔하고 시원한 맛의 김치찌개가 완성될 수 있다. AI 로봇은 이처럼 수천 가지 변수 조합을 탐색해서 각각의 '맛 스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찾아낼 수 있게 된다. 덕분에 우리는 같은 재료로도 목적과 취향에 따라 자유 자재로 맛을 조절하는 '맞춤형 요리' 시대를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이 기술은 맛을 넘어 식품안전과 건강까지 책임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온에서 감자를 튀기거나 빵을 구울 때 아크릴아마이드라는 유해물질이 생성될 수 있다. AI 로봇은 어떤 온도와 시간, 재료 조합에서 이 물질이 많이 생성되는지 유해물질 예측 지도를 정확히 그려낼 수 있다. 이를 통해 유해물질 생성은 최소화하면서도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풍미는 최대로 살리는 최적의 튀김 및 베이킹 공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특정 식물에서 항산화 물질인 폴리페놀을 추출할 때, 어떤 용매와 온도, 압력 조건에서 추출 효율이 가장 높은지 찾아내어 고부가가치 건강기능식품 원료를 더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도 있다. 물론 이 로봇 셰프가 당장 우리 집 주방에 들어 오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연구는 우리가 음식을 만들고 즐기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혁신적인 첫걸음이 될 것이다. 경험과 감에 의존하던 요리의 세계가 정밀한 데이터와 AI를 만나서 누구나 최고의 맛과 최상의 영양을 누릴 수 있는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머지않아 우리는 스마트폰 앱으로 "오늘은 스테이크를 부드럽고 발암물질은 최소로 구워줘"라고 주문만 하면 AI가 찾아낸 황금 레시피가 우리 집 주방으로 전송되는 날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연윤열 식품기술사, 직업능력개발훈련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