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사, ESG경영 광폭 행보
국내 자산운용사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광폭 행보에 나섰다. ESG위원회를 설립하고, ESG 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 등 관련 상품을 출시하고, 더 나아가 자체적인 ESG 평가 지표를 만들어낸 곳도 등장했다. 자산운용사의 ESG 열풍에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영향을 미쳤다. 래리 핑크 회장은 올해 초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사업구조를 탄소 배출 제로와 양립할 수 있는 계획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ESG경영 여부를 투자 판단의 핵심 근거로 삼겠다는 것이다. 또 지난해 화석연료에서 수익의 25% 이상이 발생하는 기업의 주식과 채권을 처분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2019년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코스피 상장사를 중심으로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투자자에게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개정했다. 지난 1월 금융당국은 ESG 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 차원에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자율공시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2030년까지 전체 코스피 상장사에 의무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KB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 신한자산운용, BNK자산운용 등이 ESG 운용위원회를 신설했다. 삼성자산운용도 ESG운용위원회 설립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관련재무공시협의체(TCFD·Task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지지 선언을 밝히는 운용사도 늘었다. 신한자산운용, KB자산운용, 삼성자산운용, 키움자산운용, 안다자산운용 등이 TCFD에 가입했다. TCFD란 기업의 기후 변화 관련 재무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권고안으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협의체인 금융안정위원회(FSB)가 만들었다. 78개국 1900여개 이상의 기관이 가입했다. TCFD는 기후 변화를 재무 영역에 통합하는 가장 강력한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실제로 신한자산운용은 지난해 10월 국내 자산운용사 최초로 TCFD 권고안에 따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 242곳에 주주 서한과 질의서를 보냈다. 탄소 배출, 녹색 경영 현황 등 기업의 기후 변화 관련 재무 정보 공개를 요구한 것. 신한운용의 '한국판 블랙록' 움직임에 주요 기업 242곳 중 101곳에서 답변이 왔다. 신한운용은 확보한 데이터를 활용해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 포트폴리오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ESG 등급을 확보한 기업 비중이 70%가 넘도록 관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체적인 ESG 평가 지표 만들기 위한 움직임도 일고 있다. 키움투자자산운용은 올해 1분기 내에 ESG 평가 시스템 개발을 완료하고, 시스템을 구축해 다양한 상품개발과 운용역량 증대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키움운용은 ESG 평가가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닌 투자판단의 기본요소가 될 것이라며, 자체 애널리스트가 직접 투자기업에 대한 ESG 평가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외부 컨설팅과 함께 ESG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며, NH-아문디자산운용은 ESG 자체 평가 방법론을 개발해 아문디 ESG 벤치마크 지수를 도입했다. 단, 기관마다 ESG 평가 지표와 기준이 상이해 평가 결과에 차이가 발생하는 등 투자 자체가 모호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국내외 ESG 평가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외 주요 ESG 평가 기관별로 기준과 항목별 가중치가 달라 평가 결과의 차이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 중 대표 ESG 평가 기관(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레피니티브, 기업지배구조원)이 모두 등급을 발표한 55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ESG 등급 평균 격차는 1.4단계였으며, 3단계 이상 차이가 나는 기업은 22개로 전체의 40%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경련은 "기관마다 평가 결과에 차이가 있는 만큼 각 기업이 ESG를 추구하는 이유에 따라 벤치마킹할 기관과 지표를 명확히 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미경기자 mikyung96@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