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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한중관계 결정적 시점, 원만히 해결해야"…좌석배치 '외교적 결례' 구설수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특사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만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문제로 경색된 한중관계의 원만한 해결 필요성에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19일 인민대회당에서 이 특사와 만나 한중 양국간 갈등을 원만하게 처리하자고 밝혔다고 중국 관영 언론들은 일제히 보도했다. 시 주석은 "현재 한중 양국 관계는 결정적인 시점에 처해 있다"며 "중국은 한·중 관계를 중시하며, 한국 측과 함께 어렵게 얻은 양국 관계의 성과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상호 이해, 상호 존중 기초 위에 정치적인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갈등을 원만하게 처리하며 양국 관계가 이른 시일 내 정상적인 궤도로 돌아오도록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특사는 "한국은 중국의 중대한 우려를 충분히 이해하며 중국 측과 소통과 협력을 통해 양국 관계 발전을 저해하는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화답하며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이 특사와 시 주석은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시 주석은 "중국은 한국 새 정부와 소통을 강화하고, 지역 긴장 정세의 조속한 완화, 한반도 비핵화 추진, 대화의 조속한 재개를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기존 중국 정부의 원칙을 재확인했으며, 이에 이 특사는 "한국도 중국 정부과 함께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지역 평화와 안정, 안전을 위해 노력하려 한다"고 답했다. 한편, 이날 접견에서의 이 특사의 면담 좌석 배치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전 대통령 특사와의 면담 시 나란히 앉았던 것과는 달리 이날 시 주석은 대형 테이블 가운데인 상석에, 이 특사는 몇 걸음 떨어진 테이블 우측 옆쪽에 앉아 면담이 진행돼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특히 사드 문제에 대한 한국에 대한 중국의 '불만 표시'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특사단 측은 "중국이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를 베이징으로 불러 공항에서 특사단을 영접토록 하는 등 배려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공항에서) 한국 특사를 모시고 중국대사가 본국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라며 이러한 해석을 경계했다. 또한 "(이날 면담에서도) 시 주석이 당초 예정된 20분을 넘겨 40분간 특사단과 대화를 했으며 이 전 총리를 단장으로한 특사단 구성도 한중관계의 중요성을 고려했다며 높게 평가했다"라고 밝혔다.

2017-05-19 17:10:28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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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새는 왜 강에서 발걸음을 멈출까

댓바람부터 예닐곱 참새들이 수런거린다. 뭐라 지껄이는데, 목청을 돋우는 걸 보니 녀석들의 일상도 꽤 바쁘긴 바쁜 모양이다. 한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길섶에 동그마니 앉은 숲으로 쭈르르 숨는다. 저만치 숲을 쬐여주는 봄 햇살이 착하다. 풀밭 위로 구슬처럼 구르는 새들의 지저귐! 그 언어의 속뜻을 모르니 감성 다르게 들린다. 향긋한 풀 바람을 맞으며 들으면 흥겨운 콧노래로 들리고, 세상이 팍팍하고 궁할 땐 슬프고, 마음이 호사스러울 땐 정겨워라. 새소리는 이렇게 사소하고 변덕스럽게, 그러나 매번 감탄으로 나를 적신다. 어디 새소리뿐이랴. 산정에서 마주치는 한 자락의 바람소리, 나뭇잎 뒹구는 소리, 몸을 비비는 숲 소리, 졸졸거리는 시냇물 소리, 바람결에 파릇파릇 일어나는 풀잎 소리, 풀벌레 소리. 지금 5월의 산은 비발디의 봄 협주곡을 연주하며 농익어가고 있다. 자연의 소리를 꼭 산 속을 들어가야만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그시 눈감으면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아련한 추억의 소리도 있다. 시인들은 웅숭깊은 소리는 마음으로 듣는다고 했더랬다. 나부시 하늘거리는 나비의 날개 짓 소리를 듣고, 나뭇잎에 맺힌 영롱한 이슬과 언덕 너머로 피어나는 물안개에도 소리가 묻어 있다는 걸 느끼는 까닭일 것이다. 오래전 몽돌해변에서 들었던 몽돌들의 속삭임이 시정(詩情)으로 밀려온다. 건반의 마술사 파도가 수천수만 음표를 지닌 몽돌과 협연하는 콘서트! 저 부드럽게 찰랑대는 물결이 그 모난 돌을 곱고 둥근 음표로 다듬기까지 얼마나 연주했던 걸까. 우리는 파도와 몽돌이 빚어내는 협주곡을 통해 지혜를 배운다. 부드러움이 거침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내 안을 다스리게도 한다. 번잡한 세파 속에 곧추서는 번뇌를 누그러뜨리고 다독이는 부드러운 솜털이 거기에 있다. 추억의 소리를 더듬다보면 마음이 건반이 되고 악보가 되는 것이다. 때론 눅진하게 눌어붙은 삶의 고단함을 씻어내곤 한다. 잃어버린 삶의 감각을 되살려주기도 하고, 소리 내지 않는 소리를 어떻게 귀 기울여들어야 하는지도 깨닫게 해준다. 소리란 참 신통하고 묘하다. 낯선 소리는 설렘으로 오고, 귀에 익은 소리는 반가움으로 다가 온다. 그러나 마음에 묻어둔 추억의 소리는 시간 다르게, 계절 다르게, 장소 다르게, 감성 다르게 들려온다. 웅숭깊어서인가. 그땐 못 느꼈던 소리가 문득문득 큰 울림으로, 뭉클함으로, 때론 애틋함으로 밀려온다. 찰나적으로 번득이면서도 불멸의 여운으로 남아 있는 까닭일 것이다. 그래서다. 추억의 소리가 조각조각 한데 어우러지면 산과 강이 되고 들녘을 이룬다. 여행길에 호젓한 강변을 거닐다 보면 새를 발견하게 된다. 하필이면 앙상한 나뭇가지에 앉은 새를 말이다. 자태가 왠지 처연하다. 새들은 왜 강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걸까? 깃털을 휘날리며 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일까? 강을 향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아무도 기억해낼 수 없는 아득한 태고의 신비한 천연의 소리가 듣고 싶다고 중얼거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휴대폰 벨소리며, 자동차소리며, 번잡한 첨단 기계음들을 씻어내자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천연의 소리는 때 묻지 않은 순백의 소리, 진솔한 소리, 첨단 과학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본질적인 소리다. 천연 소리의 극치는 소리 내지 않는 정밀(靜謐)한 늪의 소리다. 침묵한다고 해서 왜 소리가 없겠는가. 지극히 잔잔한 밀물과 썰물이 있다. 늪에도 소통하는 물결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큰 소리에만 귀를 쫑긋 세운다. 그래서 늪이 우리에게 일러준다. 소통이 제대로 되려면 큰 소리에 묻혔을지도 모를 작은 소리를 찾아내 귀 기울여야 한다고.

2017-05-17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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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화해

밀레의 만종(晩鐘)! 그저 바라만 보아도 고요해지고 평온해진다. 어스름이 깔리는 황혼녘, 저 목가풍의 광활하고 황량한 들판 한가운데에 서서 기도를 올리는 한 쌍의 농부. 그림의 스토리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고, 반목도 다툼도 없다. 그 시각 시계바늘은 ‘평화’에 멎어 있다. 두 손을 모은 채 고개 숙인 부부 농부의 실루엣이 그렇고, 들판에 쉬고 있는 손수레와 바구니, 자루가 평화롭다. 새 아침을 맞은 이 시각. 밀레는 세상을 향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을까. 나는 그를 통해 화해하는 감성을 익혔다. 삶이란 수고와 그 고단함을 늘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일전에 우연히 그를 조우할 수 있었다. 햇살이 선한 봄날, 책갈피에서 갑갑증을 느끼고 있을 활자들이 안쓰러워 기지개라도 켜줘야겠다 싶어 책장을 정리하다 낱장으로 발견한 것이다. 그간 무심하게 방치하다시피 했으니 이게 얼마만인가? 하고 손을 내밀기도 겸연쩍었다. 어쩌다 그와 마주치노라면 한 편의 감동 드라마가 아련하게 펼쳐진다. 그를 처음 본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동네 허름한 이발소에서였다. 그의 분신인 만종은 액자 속에 담겨 거울 위 벽면 한복판에 걸려 있었다. 내 말똥거리던 눈은 그러나 거울 속에 비친 장미꽃에 빠져 있었다. 길 건너 담장 너머로 만발한 장미꽃! 같은 반 친구 집의 꽃이었다. 하오의 햇살은 화사했고, 장미꽃은 눈부셨다. 꽃이 그토록 아름답다는 걸 그 때 알았다. 언젠가 친구에게 한 송이를 달라고 간곡하게 말했던 그 장미꽃. 친구는 언하에 거절했다. 친구가 야속했던 건 장미꽃 때문만은 아니었다. 산수시간 시계공부를 위해 학습용 시계를 구입해야 했다. 큰 바늘과 작은 바늘이 달린 손바닥 크기의 플라스틱 원형 시계. 학용품이 귀했던 그 시절, 학습 시계를 구입한 학생은 열에 한두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 금쪽같은 시계를 구입한 날 눈앞에서 사라졌다. 교문과 신작로를 이어주던 다리 아래 어디론가 말이다. 친구가 내 시계를 뺏으려 손을 치는 바람에 다리 아래 그 성깔 사나웠던 강물에 휩쓸려 간 것이다. 친구는 그 길로 도망자 신세가 됐다. 만일 친구 자신이 갖고 있던 시계를 공동 명의로 공유했더라면 문제는 쉽게 타결됐을 것이다. 그는 그런 협상을 거부했고, 내 시야에서 점점 벗어났다. 우정도 아득하게 멀어졌다. 나는 시계공부 시간 때마다 허탈해진 빈손을 만지작거려야만 했다. 내 조급한 마음의 시계바늘은 그렇게 돌아갔고, 서너 주 후에야 시계공부가 끝나면서 멎었다. 그러나 내 기억의 시계태엽은 머리를 깎는 내내 뿔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뿔난 화를 누그러뜨린 건 거울 위 그림이었다. 이발소를 들를 때마다 무심하게 바라보았던 밀레의 만종. 화가의 이름도 제목도 관심 밖이었다. 그저 내 어린 가슴에 평온하게 와 닿았던 그림. 때론 슬퍼지는, 지금 생각해보면 뭐랄까 우수(憂愁) 같은 것도 느꼈던 것 같다. 그 그림이 울화를 풀어주고, 슬픔을 다독거려주는 넉넉한 뜰이었다는 사실을 그땐 난 몰랐다. 웬일인지 그날따라 그 그림에 내 시선은 오래 머물렀지만 그걸 눈치 채지 못했다. 마냥 평화로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토록 야속했던 내 친구가 거울 속에 있지 않은가. 활짝 열린 이발소 문 옆에 숨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장미꽃 여러 송이를 든 채 말이다. 화해란 이렇게 감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인가. 새 아침을 맞은 이 시각. 치열했던 대선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이 시각. 밀레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그동안 빚어졌던 대립과 반목을 훌훌 털어내고 화해와 소통의 손길을 내밀어보라고.

2017-05-10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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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뿔이 달린 말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속뜻을 전할 순 없을까? 뜬금없이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되는 건 말들이 범람해서일 것이다. 왜 그런 의사소통이 없겠나.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산과 강, 공원으로 나들이 길에 오르면 길목 저편에서 얼마든지 그런 침묵의 소통을 목도할 수 있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손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그 마주잡은 손끝에서, 벤치에 앉은 연인들의 맞댄 어깨에서, 말없이 그러나 사무치도록 대화가 끊임없이 오가는 것을. 침묵의 의사소통! 거기에는 수천수만 가지의 언어들이 불꽃처럼 스친다. 말을 토해내지 않아도 영롱한 언어들이 손끝과 어깨에 굴러다니는 것이다. 어느 가수는 그래서 소리 없는 침묵으로도 말할 수 있다고 목 놓아 사랑을 노래했다. 침묵하는 것만으로도 하나가 된다고 했다. 그렇다. 오랜 세월 긴 그림자를 함께 이끌고 온 노부부는 마주잡은 손끝만으로도 그 고단함이 풀렸을 것이고, 연인들의 사랑은 맞댄 어깨의 작은 몸짓 하나만으로도 영글었을 것이다. 사랑은 어쩌면 침묵 속에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침묵이 최고 경지의 언어라고 했던 걸까. 사랑이 잠재운 침묵. 그곳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곳이 고즈넉한 길섶이든 시선이 폭우처럼 쏟아지는 거리든 빗장을 걸지 않아도 방해받지 않는다. 침묵은 눈빛의 언어이자 마음의 언어이기에 그럴 것이다. 어느 날 문득 화사한 햇빛이 금가루를 뿌리거나, 소낙비라도 내려줄 양이면 무언의 속삭임은 한 편의 시가 된다. 눈빛과 마음의 언어! 그것이 정녕 뜨거우면 심장을 고동치게 하고, 절절하면 눈물겹기까지 하다. 엄마와 아기가 대화하는 모습을 보라. 엄마들은 아기의 옹알이를 금세 알아듣는다. 소리보다 눈빛과 마음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고, 가슴으로 듣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이 가슴으로 의사소통할 수만 있다면? 세상 시계바늘은 일찍이 '평화'를 가리키고 있었을 터다. 세상이 시끄럽고 때론 흐려지는 것은 이해득실에 오염된 헛말들이 먼지투성이로 풀풀거리는 까닭이다. 말은 참 묘한 녀석이다. 같은 말이라도 뱉어내는 입에 따라 숨은 뜻이 다르거니와 듣는 귀에 따라 천차만별로 해석된다. 신경을 곤두세워도 의사소통이 어려운 이유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범속한 일상에서 말이 많으면 괜한 오해의 불씨를 낳기 십상이다. 그 오해가 천리 길을 달려가는 게 문제다. 그러기에 우리 경험칙이 이렇게 일러주었다. 생각 없이 쏟아내는 말끝은 늘 허전해지고, 더러는 흉기로 변해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경고했더랬다.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은 잡담이라고 부른다. 잡담에는 사색과 성찰이 담겨 있지 않다. 그나마 세월의 나이테가 만들어주는 자신의 언어마저도 타성의 와류에 휩쓸리고 만다. 영혼의 빛깔이 퇴색되는 것이다. 사색과 성찰이라는 필터를 여과한 말에는 영롱한 진실이 고여 있다. 그것이 참말이다. 참말은 무게가 있고, 와 닿는 울림이 크거니와 역설적이게도 짧을수록 여운이 길다. 이해의 폭도 넉넉하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말에는 표정이 있다. 말 구절구절마다 그 사람이 보인다. 넉넉한 뜰이 있는 말에는 따스함이 묻어나고, 사랑이 넘실거린다. 자연의 순백 향기를 맡을 줄 아는 말은 고결한 품성이 배어난다. 바람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말은 깊은 감성이 보인다. 뿔이 달린 말은 가슴 아파하는 얼굴이 숨겨져 있고, 소리 없이 울부짖는 눈물이 보인다. 그 말 속에는 식솔들을 책임져야 하는 집안의 가장들과 취업난에 좌절한 젊은이들이 웅크리고 있다.

2017-04-26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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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마을버스를 끈 아이

잠결에 봄비 스치는 소리가 어째 좀 요란하다했다. 훤하게 무더기로 피었던 벚꽃이 길섶에 흥건히 누워 있다. 야속하다. 꽃 눈송이를 흠뻑 맞게 해줬더라면 이토록 서운하진 않았을 것이다. 봄비도 인간만큼이나 변덕스럽다. 메마른 꽃봉오리를 틔워 눈부시게 꽃 사태를 만들더니, 밤사이 시샘하듯 강풍까지 불러내 흩뿌려 놓았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봄비와 시간이 다르게 교차되는 기온의 오락가락에 아직 채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의 헷갈림은 또 어쩌란 말이냐. 지난 주말 동네 공원을 가로질러가는 길. 마을버스 차창 밖의 봄날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모처럼 친구와의 약속이 있어 가는 길이다. 시내 약속이 있을 땐 어지간해선 걷는 편이다. 한가한 날 늘어지는 몸에 탄력을 붙일 기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걸어서 30분내 거리다. 이 날은 약속이 늦었다는 핑계로 몸은 마을버스 뒤 좌석에 싣고 있었다. 성급하게 지는 봄꽃이 아쉬워서일까. 차창 밖을 내다보는 승객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무겁다. 화난 것 같다. 노쇠한 마을버스의 몸짓도 웬일인지 예사롭지 않다. 정차할 때마다 동작이 크다. 운전석 백미러엔 뿔난 운전사의 얼굴을 채우고 있다. 운전사의 심기를 누가 할퀸 것인가. 불현 듯 오래전 일이 떠오른다. 시장입구 정류장이었을 것이다. 그때도 마을버스의 액션이 컸었다. 닫히던 탑승 문이 뭔가에 놀란 듯 덜컹! 재차 열렸다. 얼마 후 툭! 묵직한 게 승차계단 상단에 얹힌다. 괴나리봇짐이다. 또 수초가 흘렸을까. 꾸부정한 할머니가 한 계단 한 계단 힘겹게 올라온다. 갈 길은 바빠도 어쩌겠나. 쉬엄쉬엄 굴러가는 게 마을버스인 것을. 할머니와 노쇠한 마을버스. 라이프 사이클이 '슬로우'라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문제는 할머니가 차에 올라 크게 한 숨을 돌리더니 자리에 앉으면서 생겼다. 차가 부동자세로 묶인 것이다. 할머니가 차비를 지불할 때까지 안전을 위해 정차해야 하는 상황. "할머니 차비내세요" 그런데 할머니는 묵묵부답이다. 성질이 났는지 차는 부르릉대며 공회전했고, 할머니는 차창 밖을 응시하며 딴청을 부린다. 운전사는 등을 돌려 할머니의 눈과 마주치지 않아야 했다. "또 그 할머니잖아! 이번엔 안 통해요" 운전사는 이런 날을 단단히 벼른 듯 차비를 받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을 기세다. 할머니가 무임승차를 꽤 한 모양이다. 급기야 엔진 소리도 멎었다. 앞좌석에 앉은 한 아저씨가 대신 차비를 지불하겠다며 어서 가자고 재촉했다. 운전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할머니만 쳐다본다. 발이 묶인 그 마을버스를 움직이게 한 건 네다섯 살짜리 꼬마 여자 아이였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또랑또랑하고 맑은 천상의 목소리가 한바탕의 신경전을 일순 잠재운다. 엄마와 함께 차에 오른 아이의 결정적인 또 한마디가 가슴을 파고든다. "운전하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세요! 아저씨" 운전사의 수고로움을 토닥여주는 따스한 한마디. "응 그래" 운전사의 목은 메어 있었고, 차는 출발했다. 아이의 인사 한 마디가 마을버스를 움직이게 한 것이다. 인사의 힘이란 이런 걸까. 그래서 인사란 돈이 들지 않는 동력이라고 했던 걸까. 곱씹어 생각할수록 콧잔등을 시큰하게 하는 추억. 세월이 흐르고 세태가, 방식이 바뀌었어도 인사는 늘 반갑다. 인사는 감동을 주는가하면, 용서하게 하고, 눈물을 흐르게도 한다. 이런 말은 그러나 그 아이에겐 때 묻은 논리에 불과할 것이다. 차에서 내려 한참 동안 마을버스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뒤뚱뒤뚱 평화롭다. 봄날은 그 때의 정겨운 추억을 싣고 그렇게 굴러가고 있었다. 무심한 봄비와 강풍이 밤새 벚꽃을 흩뿌려놓은들 어떠리.

2017-04-19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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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만년필의 글 여행길

이따금씩 습작을 할 때 만년필로 쓴다. 너덜거리는 원고지에, 따스한 햇살을 초대하고, 향 그윽한 원두커피 한 잔을 곁들이면 팍팍한 마음이 녹는다. 무얼 긁적거리려나? 궁금했는지 봄 햇살이 저 먼저 원고지에 걸터앉아 아지랑이 파티를 연다. 종이 냄새가 풀풀거리는 누런 원고지, 물기 젖은 잉크, 짙은 커피 향. 만년필에 그토록 집착하게 된 건 이런 고전적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스마트워크 시대에 잊혀져 가는 육필(肉筆)에 대한 정감을 간직하고 싶어서이다. 문득 책 앞장에서, 행간에서 만년필로 쓴 글씨를 발견할 때마다 흑백 필름이 스친다. 아! 그때 그랬었지. 세월은 흘렀어도 육필에는 여전히 숨이 붙어 있다. 한자 한자가 감탄사이고, 더러는 그 때 그 시절의 표정과 몸짓들이 보인다. 책과 연을 맺었던 문청들의 눈매가 아른거리고, 목소리가 들린다. 어쩌다 밑줄 친 행간에 쓴 메모를 읽노라면 번민이 와락 가슴으로 밀려든다. 육필의 힘이란 게 바로 이런 걸까. 내 만년필이 원고지를 긁적거리며 뛰노는 까닭이다. 만년필이 문청들의 전형이 된 시절이 있었다. 만년필 곁에는 늘 원고지와 커피 한 잔이 따라 다녔다. 7080 다방 풍경이 그런 모습을 담았더랬다. 저마다 칙칙한 다방 한 귀퉁이 자리를 차지하고는 식은 커피를 마시며 원고지에 시 몇 줄을 긁적거리곤 했다. 당시 커피가 시 구절에 단골 메뉴로 등장한 배경일 것이다, 그러나 코끝에 오래 머무는 원두커피는 아니었다. 더러는 쓰디 쓴 블랙으로 마시긴 했어도 대개가 커피가루, 프림, 설탕을 혼합한 다방식 커피였다. 내 만년필을 추억의 뒷장으로 넘긴 건 기자용 노트북이었다. 1991년, 신문사 서너 군데에 처음 노트북이 지급됐다. 들고 다니는 미니컴퓨터. 다들 신기해했다. 문제는 원고작성이었다. 손 글씨에서 자판 글씨로의 전환. 그건 아날로그 문명에서 디지털 문명으로 넘어가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 이정표 앞에서 펜에 익숙한 손은 한동안 방황해야 했다. 자판을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퉁기는 데 수개월이 걸렸지 싶다. 노트북의 등장과 함께 편집국엔 원고지가 사라졌고, 속도전을 펼치는 자판 소리만 요란했다. 내 만년필은 유물이 됐다. 그 만년필이 요즘 라이터돌 역할을 해주고 있다. 글이 떠오르지 않을 때 불을 댕겨주는 것이다. 원고지에 이런저런 상념들을 긁적거리다 보면 불꽃이 튈 때가 있기 때문이다. 펜촉이 서걱거리는 촉감도 각별하거니와 글자 한자 한자에 나름의 자세가 있고, 표정이 있다. 육필이어서 그런가. 만년필이 마음을 곧게 세운다는 것을 느낀다. 대형 서점이나 문구점을 가면 만년필코너를 들른다. 그렇다고 만년필을 수집하는 마니아는 아니다. 종류에도 관심이 없다. 만년필이 더 이상 골동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반갑다. 일전에 친구는 자신의 애장품이 가방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내 애장품은 만년필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내 마음을 알고, 체온을 느끼고, 때론 함께 눈물을 적시고, 그런 내 삶의 진솔한 궤적을 함께 했기에 그럴 것이다. 반질반질 손 떼가 묻은 만년필. 일상의 삶이 고단하고 답답할 때 내 애장품 만년필은 글 여행길에 오른다. 펜촉은 마주하는 풍경마다 아름답게 채색해 작품을 탄생시킨다. 파란 하늘 아래 꼬불거리는 길섶은 그림 감상문이 되고, 그 주변에 알록달록 춤추는 봄꽃은 시가 되고, 편지가 된다. 정물화만 있는 게 아니다. 저만치 고즈넉한 시골 고샅길에서 들려오는 연인들의 이야기들은 에세이가 되는 것을.

2017-04-12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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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칭찬의 기적

어쩌다 지하철에 몸을 실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마주하는 군상들의 표정에서 밀도 높은 일상을 담금질해온 삶의 고단한 흔적이 보인다. 더러는 주름진 얼굴에서 굴곡진 한 편의 대하드라마 같은 인생 스토리가 흐른다는 걸 느낀다. 지하철과 사람은 꽤 닮아 있다. 종착역을 향해 내닫는 지하철은 꿈과 희망을 안고 클라이맥스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는 군상의 모습이다. 찌든 삶을, 강퍅한 세파를, 무거운 짐을, 아귀다툼을 연소하는 모습이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엊그제, 지하철 안은 화사했다. 병아리색 원복을 차려 입은 유치원생 열댓 명이 군데군데 샛노란 꽃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사생대회라도 다녀왔는지 서너 명씩 옹기종기 모여 스케치북을 펼쳐들고 그림 품평회가 한창이다. 시끌벅적했지만, 승객들은 모처럼 '병아리 떼 쫑쫑' 재롱에, 향수에 젖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어린 여선생님이 이따금씩 집게손가락 하나를 치켜들어 쉬! 입술에 얹힐 때마다 떠들썩은 재잘재잘로 가라앉는다. 그런데 내 옆 한 녀석은 아까부터 어째 조용하다. 어디 아픈가. 힐끔 녀석을 보니 잔뜩 주눅이 든 얼굴이다. 눈꼬리가 축 처진 채다. 손에는 스케치북에서 뜯어낸 그림 한 장이 들려 있다. 꼬깃꼬깃 구겨진 그림. 그건 또 왜 구겨졌을까. 그림에 무슨 사연이 있나 싶어 막 감상할 참이었다. 그 때 건너편 한 녀석이 달려와 그림을 덥석 낚아챈 뒤 아이들에게 들어 보인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친다. "선생님, 그림이 이상해요!" 눈 처진 아이는 그림을 되찾으려 달려들었고, 한바탕 소동이 인다. "공공장소에서 떠드는 것 아니랬지!" 선생님의 경고가 아이들을 돌려세운다. 그림은 눈 처진 아이의 손에 다시 꼭 쥐어졌다. 전후사정을 보니 아이들이 그 그림을 놀림감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떤 그림을 그렸기에? 그림을 보니 덩그러니 나무 한 그루다. 소나무를 그린 것 같은데, 문제는 색깔이었다. 엉뚱했다. 잎 색깔이 온통 노란색이다. 초록색이래야 점박이처럼 드문드문이다. 상식의 틀을 깬 색칠. 그게 눈 처진 아이를 놀림감으로, 외톨이로 만든 것이다. 왜 그렇게 그렸을까. 잎마다 봄 햇살이 부서진 황금색을 입히려 했던 걸까. 혹여 사람들은 그 아이의 그런 시선을, 감성을 알아보지 못하고 뭉개고 있었던 건 아닐까. 녀석은 내 눈치를 살핀다. 눈빛은 애절했다. 방금 내가 생각한 걸 말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잎이 금가루를 뿌린 듯 햇살 가득 하네", "상상력이 풍부하구나!" 순간 녀석의 뺨에 눈물이 또르르 굴렸다. 칭찬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 놀려댈 줄 알았던 모양인데 뜻밖의 칭찬에 감동했던 것이다. 저만치 선생님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고, 환한 미소가 번졌다. 좌절과 절망의 늪에 빠진 녀석을 건져냈다는 생각이 문득 스치자 전율이 인다. 칭찬 한 모금에 저토록 목말라했던 걸까. 칭찬의 갈증! 녀석의 눈물은 그걸 말하고 있었다. 세상 물정을 아는 어른들도 칭찬 한 마디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것을. 흰 도화지인 새싹들은 오죽할까. 그 새싹의 뿌리에 따스한 칭찬이 스며들면 자신감이 자라나고,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꽃이 활짝 필 것이다. 칭찬 여부에 따라 인간관계와 인생행로의 열매가 달라지는 것이다. 혹자는 그래서 칭찬은 인생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했더랬다. 미국의 유명 경영 컨설턴트인 켄 블랜차드의 저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가 거저 나온 게 아니다. 가슴에서 우러나는 칭찬 한 마디가 아이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다.

2017-04-05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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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감동의 순간

수런수런 돋아나는 새싹들이 어느덧 봄을 말하고 있다. 이 골짝 이 골짝 봄노래가 메아리친다. 매화며, 산수유며, 개나리가 꽃망울을 톡톡 터뜨린다. 겨우내 잎들을 털어낸 나무들은 옹기종기 둘러앉아 햇볕을 쬐며 싹을 틔운다. 그 군락의 밑동을 붙들고 있는 흙무더기는 들숨날숨으로 풀풀 거린다. 이제 봄의 문턱인가 싶었는데 숲은 벌써 연두색 물감을 풀어놓았다. 계곡을 타고 달려온 물바람의 설렘은 또 어떤가. 연둣빛 이슬로 꽃망울 주변을 서성거리는 것을. 봄소식은 이렇게 햇빛으로, 바람으로, 흙으로, 색으로 말한다. 이 기막힌 봄 향연에 조화를 부리는 주연은 햇빛이다. 따스한 생명의 입김을 흙무더기에 불어넣고, 싹을 틔우고, 꽃망울을 터뜨리고, 종내 열정을 태워 화사한 꽃으로 산화하는 것이다. 과일을 영글게 하는 것도 햇빛이다. 금빛 가루의 그 거름이 달디 단 맛으로 올라오고, 알록달록 색깔을 입히고, 상큼한 향기를 선사한다. 햇빛이 싹으로, 잎으로, 꽃으로, 과일로, 향기로 변하는 저 경이로운 조화! 햇빛의 조화가 어디 나무들에게만 있겠는가. 무겁고 고단한 우리네 일상에도 조화를 부린다. 우리는 그러나 그걸 잊고 산다. 햇빛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설렘으로 차오르고, 감동이 되고, 감탄사가 된다는 것을. 걱정과 근심의 우울한 그림자를 지우는 활력소가 반짝거린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고 산다. 느낄 줄도 모르고, 아니 느끼려고도 하지 않는다. 햇빛은 눈으로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감동이 불꽃 튀고, 울화를 풀어주고, 닫힌 마음을 열어준다고 했더랬다. 가슴으로 느끼는 햇빛의 맛은 어떨까? 요리를 천천히 음미하듯이. 이 물음을 던지는 순간 세상 햇빛이 새로운 몸짓으로 다가온다. 이른 아침 베란다에 한가득 채워진 햇빛이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마음이 호사스럽다. 발을 간지럽히는 것만으로도 왠지 따스하고 행복하다. 산속을 헤매다 야트막한 언덕 너머로 불쑥 나타나는 한 줄기의 햇살은 반갑고 신비롭다. 울적한 날 때맞춰 쨍하고 해가 뜨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연두색을 물들인 숲 속의 햇빛은 싱그럽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햇빛의 맛을 알았다. 햇볕이 내리쬐는 큰 나무통 앞에서 그와 알렉산더 대왕이 주고받은 대화가 이를 방증한다. 문답이 걸작이다.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말해라"는 알렉산더의 물음에 그는 한마디로 일갈한다.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비켜 달라"고. 영혼이 자유로운 그에겐 햇빛은 상념의 날개였으며, 철학을 샘솟게 하는 자양분이었다. 이따금 이 문답을 접할 때마다 놀란다. 어쩌면 그가 '일조권'의 창시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서다. 햇볕을 쬘 권리. 그는 그걸 알았다. 어떠한 권력으로도,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햇빛의 절대적 가치를 알아차렸다. 피부로 맛보는 달콤한 행복. 햇빛을 즐기는 그 잣대에 따라 행복감이 천양지차라는 상대적 가치를 그는 간파했다. 그가 왜 '작은 것에 만족하라'고 설파했는지를 되새김하게 한다. 햇빛은 흔하고 거저 얻어지기에, 세속적인 잣대로는 작은 것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미처 몰랐던 감동을 찾을 수만 있다면 행복이 클 것이라는 그 역설을 말이다. 그래서 행복은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했던가. 감정선이 점점 무뎌가는 세태에 디오게네스가 던지는 메시지는 '느껴라'일 것이다. 무르익어가는 이 봄, 일상 속에 뿌려지는 한 빛 한 빛을 한눈팔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하고 싶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한 조각의 잎사귀까지도 '감동의 순간'으로 기억하련다. 햇빛을 통해 행복이 무엇인지 느끼고 싶은 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2017-03-29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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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미소가 봄을 만나면

시골 친구는 명랑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서울의 모든 아가씨들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환상에 푹 빠져 있었다. 지나가는 아가씨에게 길을 물으면 살갑도록 요모조모 안내해준다는 것인데, 하나같이 미소로 추파를 던진다는 거다. 자신에게 무슨 흑심을 품는 것 같다나. 물론 사람 나름이겠지만 그는 그럴만한 위인은 아니었다. 작달막한 키에, 배가 튀어나온 체형부터가 아이돌 스타일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양말 한 켤레를 사나흘 신는 집념을 보이는 괴짜였다. 새싹이 파릇파릇 춘 삼월로 향해 발돋움하던 딱 이 무렵, 그의 자유로운 환상도 봄 햇살을 받고 날개를 한껏 펼치고 있었다. 고교시절 백면서생처럼 공부밖에 몰랐던 그는 서울 땅을 밟은 이후 이성에 반짝 눈을 떴다. 어쩌면 오랜 전부터 갈망했을 풋사랑에 허기를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환상이 날개를 접은 건 생애 첫 미팅을 하고 난 직후였다. 생끗 미소를 짓던 파트너에게 '내가 그렇게 좋냐'며 겁 없이 영웅본색을 들이댔다가 된통 퇴짜를 맞았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춘 삼월의 환상은 깨졌고, 상처는 깊었다. 자존심이 유난했던 그는 한동안 소식을 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는 여자에 관한한 숙맥이었다. 그런 그 앞에 청춘을 스케치할 백지의 새 도화지가 툭 던져졌으니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굳이 민태원의 중수필 '청춘예찬'의 첫 대목을 빌릴 것도 없이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었을 것이다. 뭘 그릴까? 신세계를 만난 그는 색연필을 만지작거리는 어린아이 마냥 달떠 있었다. 환상에 젖을 만도 했다. 돋보기로 전후사정을 들여다보면 그가 착각에 빠질 만도 했다. 파트너의 '상냥한 말씨'는 무뚝뚝하고 투박한 사투리에 농익은 촌놈의 귀에는 '호감의 언어'로 번역돼 입력됐다. 파트너가 띄운 야릇한 미소는 '난 사랑에 빠졌어요'로 해석했다. 청춘 도화지에 이런 오류를 색칠했던 거다. 촌티 나는 패션에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의 그를 보면 웃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파트너의 입장에선 코믹한 당신을 보면 '그저 웃지요'에 불과했다. 그 웃음을 내면으로 삭이면 미소가 된다. 한 길 속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미소의 속성이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의 미소를 보라. 보는 사람에 따라, 마음에 따라, 시각에 따라, 시대에 따라 해석이 천차만별이지 않은가. 신비스런 미소로 읽는가 하면 더러는 슬픔을 머금은 미소로 본다. 그 미소에 담긴 의미는 510여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미스터리로 풀리지 않고 있다. 친구는 그 날 미팅 파트너의 야릇한 미소가 수수께끼로 느껴졌을 것이다. 보면 볼수록 애매모호하게 다가오는 모나리자의 미소. 그것은 한 점의 미소에는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이 함축돼 있다는 방증이다. 미소 한 번 벙긋거리는데 50여개의 얼굴 근육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니 그럴 것이다. 순백의 미소는 그러나 그 어떤 의미를 담든 거기엔 마음을 흔들어 놓는 감동의 마력이 불꽃 튄다. 호감을 갖게 하고, 가슴을 설레게 하고, 사랑에 젖게 하고, 때로는 세파에 지친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주는 그런 미소의 힘 말이다. 봄의 길목에서 서성거리는 삼월! 너울거리던 미소가 꽃 내음이 짙은 봄을 만나려 한다. 여기저기 돋아나는 새순이며, 살랑대는 봄바람이며, 찬란하게 부서지는 고운 햇살이며, 파란 하늘이며, 거기에 피어난 하얀 뭉게구름이며, 숲에서 지저귀는 산새들이며, 그렇게 약동하는 봄 향연의 도화지에 미소의 꽃을 그려 넣고 화사하게 색칠하고 싶은 계절이다. 순백의 미소가 꽃피는 봄 풍경을 마음의 화폭에 담아보는 건 어떨까.

2017-03-22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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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밥터

그것을 허물었다면 무척 서먹서먹했을 거다. 손바닥만한 밥상 한복판에 걸터앉은 칸막이! 눈높이만큼 끌어올린 그것은 프라이버시를 가려주는 커튼이었다, 숟가락 하나가 뻗칠 수 있는 한계 영역을 규정한 밥터의 담벼락이랄까.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두 방랑 식객은 그 불문율을 알기라도 하는 듯 단단히 빗장을 지른 채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서울 중심가 어느 맛 집의 혼자 먹는 밥, 이른바 '혼밥' 풍경이다. "혼자예요?" 나홀로 식객들의 귀를 쫑긋거리게 하는 질문 공세. 저만치 노른자위 밥터가 유혹하는데 별도리가 있겠나. 핏대를 세워 목청을 뽑는 종업원의 '응답하라 혼밥!'에 득달같이 화답할 수밖에.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급행 서빙은 없었다. "합석해도 될까요?" 양해와 눈치의 갈등 속에 더디게 굼뜨던 완행의 서빙만 찔끔거렸다. 세상 편하게 달라진 혼밥. 혹자는 한마디 거든다. 이 식당이 아니면 누가 이 혼밥의 고민을 알아줄까? 그러나 이 절규를 풀어준 건 뜻밖에도 7080 시절의 밥집 아주머니들이었다. 아주머니들은 알아차렸다. 혼자 밥을 먹고 싶어도 쑥스럽고 어색해 식당가를 배회한다는 것을. 눈총과 홀대를 받지 않는 혼밥 향유권을 꿈꾸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그래서 혼밥의 서러움과 아픔을 힐링해줄 식당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주머니들은 알아차렸다. 모두들 그 실현 가능성에 의문부호를 달았지만 아주머니들은 그걸 해냈다. 엄마표 밥집은 그렇게 눈을 떴다. 식당은 허름했다. 주 고객은 자취생, 고시생, 직장 초년생들이었다. 너도나도 혼자였다. 뭉뚱그려 2030 혼밥족. 다들 혼자라고 해서 개별 밥상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칸막이로 장벽을 친 것도 아니다. 독서실처럼 벽을 마주보고 앉는 혼밥 전용 좌석을 갖춘 것도 아니다. 엄마표 밥집은 묘했다. 종업원이 없었다. 모든 게 셀프였다. 누구든 밥상에 숟가락을 올리면 한 가족이 됐으며, 밥상머리마다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한솥밥이 갖는 마력일 것이다. 밥에는 정성이 묻어났다. 늘 뜨끈뜨끈했다. 정(情)이 모락거렸다. 타향살이의 서러움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겐 찬밥은 눈물 젖은 빵에 다름 아니다. 그곳엔 그런 진한 공감대가 흘렀다. 밥집 아주머니는 이따금씩 눈물을 찍어내곤 했다. 밥은 자르르 윤기가 흘렀다. 고봉밥이었다. 밥이 보약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좀 안다는 자취생들은 밥집을 선택할 때 밥의 윤기를 보고 결정한다. 밥심이 오래갈 밥을 찾는 것이다. 엄마표 밥집은 늘 북적거렸다. 밥집 아주머니들이 긴장하는 때가 있었다. 사법고시, 행정고시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이다. 아주머니들에겐 밥심의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모두가 숨죽여야 했다. 그날 저녁 밥집마다 희비는 엇갈렸다. 합격자 수와 대강의 합격률이 나오는 것이다. 대박, 쪽박이란 말은 이때 써먹는 줄 알았다. 희비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어느 밥집이 명당이니 하는 풍수지리설이 설왕설래했다. 당시 전설처럼 내려오는 밥집이 있었다. 심지어 어느 밥상까지. 그 혼밥 풍경은 세월 빠르게 달라졌다. 모처럼 맛소풍을 나왔을 혼밥족. 그들은 그러나 밥터의 향유권은 고사하고 비좁은 공간에서 쫓기듯 허겁지겁 그릇을 비워야 한다. 대화가 없는 침묵의 식사.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묻고 화답할 뿐이다. 그렇다면 사색할 시간도 가질 만도 한데 요즘 혼밥 세태는 그러나 7080 엄마표 밥집과 같은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 때 그 시절의 정겨운 혼밥 풍경을 반추하게 되는 까닭이다.

2017-03-15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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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봄 이사시즌의 삽화

누군가 기약 없이 떠나는 건 쓸쓸하다. 일전에 댓바람부터 이삿짐 트럭 한 대가 아파트 현관문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동틀 무렵 어슬렁거리는 이사는 십중팔구 오는 게 아니라 가는 쪽이다. 여태 통성명조차 나눈 적이 없는 이웃과의 이별. 그래도 한 지붕 아래 살았기에 이웃의 얼굴이 낯익다. 행여 추억의 한 단편이라도 있을까 싶어 톺아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갈피가 없다. 그냥 타인일 뿐이다. 그런데 왜 가슴 한 켠에 우수(憂愁) 같은 것이 스치는 걸까. 그럴 것이다. 현관 앞에서, 주차장에서, 장터가 열리는 앞마당에서 마주치고 엘리베이터를, 때론 계단을 오르내리며 시나브로 고였을 이웃 간의 정(情)이 일렁거려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 물기 마른 정을 뒤척거리며 잘 가시라 환송하자니 생뚱맞고 겸연쩍다. 유행가 가사를 들출 것도 없이 '떠날 때는 말없이'다. 꾸역꾸역 쟁여지는 짐 꾸러미에 찬바람이 스몄고, 짐을 꾸리던 노인의 주름진 얼굴에 아파트 삶의 태생적 그늘이 드리워져 있음을 보고야 말았다. 진작에 통성명을 건네 것을, 몇 마디 말이라도 섞어볼 것을.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식사에 초대해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울 것을. 이런 식으로 랑데부됐더라면 석별의 정을 나누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을 거다. 후회한 게 어디 한두 번이겠느냐마는 우리네 아파트 삶은 이런 열린 마음의 여백을 준비조차 못한다. 가만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직 공간! 위아래 층이 막힌 '성냥갑'식 수직 프레임은 이웃을 단절시켰다. 소통할 평면 공간이 없는 까닭이다. 얼굴을 맞댈 공간이래야 엘리베이터 박스 안. 엘리베이터는 그러나 틈만 보이면 비약하고 생략하는 심보를 드러낸다. 성급한 스피드에 오염된 여닫이 버튼은 이웃을 층층이 갈라놓기에 바쁘다. 말 섞기가 무섭게 이웃의 등을 떼밀고 냉정하게 문을 닫는다. 어쩌다 낯선 사람이 끼어들면 맨송맨송한 표정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다. 시선은 층수를 알려주는 디지털 숫자판에 일제히 꽂힌다. 눈 둘 바를 모르는 것이다. 왜 이래야만 하는 걸까. 아파트 품앗이라도 있었더라면 사정은 달라졌을 거다. 우리네 수직 아파트 일상은 그러나 각자도생의 세태로 너무 달려가 있다. 정이 넘쳐나도 쉬 파편화 된다. 그 단절된 정을 새삼 더듬게 되는 봄 이사시즌엔 추억의 인기 드라마 '전원일기'의 마을을 떠올리곤 한다. 진한 향수와 감동이 꽃피고, 사람 냄새가 물씬거렸다. 그 마을이 그리운 건 내 마음속에 여전히 그런 마을을 가꾸고 있음일 것이다. 자취를 하던 학창시절이었다. 집주인 할아버지는 작별이 못내 아쉬워 대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신작로를 내다보고 있었다. 이사 가는 날 친구와 함께 짐을 꾸린 리어카를 이끌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던 길이었다. 새 자취방은 골목골목을 파고들어 처마 끝을 서로 맞댄 집들 틈에 끼어 있었다. 문간방이었다. 한 지붕 여섯 가구. 방방마다 사람들이 몰려나와 짐을 날라 주었다. 내 기억의 창고에 보물처럼 보관하고 있는 봄철 이사의 색 바랜 삽화다. 그 자취 시절 이웃 간의 정이 무엇인지 겨우 눈을 떴다. 한 지붕 여섯 가구의 집에는 정을 담을 그릇이 컸다. 마음을 더하고 뺄 공간이 넓고 아늑했다. 눈물의 짐은 서로 나누어 덜어냈고, 웃음의 짐은 보태고 또 보태 꽃동산을 만들었다. 그런 정이 홀연히 떠난 빈자리가 커 보인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봄 이사시즌이 찾아오면 그때 그 시절의 갈피 속에 꿈틀거리는 정을 일깨워 새삼 가꾸어본다.

2017-03-08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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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원시의 봄

봄비는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 계절을 알아차리고 슬그머니 찾아와 땅부터 적셔 놓았다. 새침데기다. 조용히 흩뿌리고선, 은근히 그러나 오달지게 적시는 봄비! 화들짝 놀란 땅은 꼭 무슨 일을 벌일 것만 같다. 연방 새싹들을 밀어 올릴 기세다. 꼬장꼬장 메마른 나무들도 생기가 돌았다. 뭉게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고개를 내미는 햇살이 따스하다. 수런대던 새들은 우르르 몰려나와 살랑대는 바람을 타고 동네 산허리를 가로지르며 한 폭의 수채화를 완성한다. 우수(雨水)를 흘러 보낸 요 며칠사이 비는 그렇게 우리 모두를 적시고 있었던 거다. 사실 봄 낌새는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마음부터 설렌다. 그런데 봄은 참 묘하다. 그 심쿵거리는 마음 밑바닥에 허허로움이 겹치니 말이다. 어릴 적부터 무한대로 느꼈을, 그러나 종잡을 수 없는 신기루랄까. 그 까닭모를 감성의 맥박을 진작에 더듬고 있었다면 이토록 공허하진 않았을 것이다. 몸앓이에 가슴앓이까지, 혹자는 그런 걸 두고 봄앓이라고 했더랬다. 봄비 적신 동네 공원을 걷는 날 왜 뜬금없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누렇게 바랜 잔디밭에서 묻어나는 흙냄새 때문이었을 게다. 한 줄기의 추억이 빗소리에 실려 온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마로니에 공원이 온통 흙바닥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빗줄기가 후드득 꽂힐 때 풀풀거리던 흙냄새가 좋았다. 아는 연극배우와 자주 만나던 곳이다. 무대가 끝나는 날 흙바닥에 퍼질러 앉아 비 적시며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다. 퍽 낭만적이었다. 나는 마로니에 흙길을 거닐면서 비의 정서를 배웠다. 비 오는 날 흙바닥에 떨어진 꽃잎이 보석처럼 빛난다는 걸 알았으며, 비 젖은 텅 빈 벤치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있다는 것도 배웠다. 울적한 마음을 씻어내는 것도 비다. 지금도 비를 온전히 맞는 걸 좋아한다. 어쩌다 호젓한 흙길을 만나면 반갑다. 낙엽이 흙이 된 오솔길이면 더 좋다. 그곳에서 예기치 않은 단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코를 킁킁거리며 흙냄새를 맡곤 한다. 마로니에 공원이 기억 저편에서 아른거리게 된 건 그 누런 흙바닥이 아스팔트로, 콘크리트로 코팅됐기 때문일 것이다. 원시의 흙냄새! 그 추억의 흙을 만나려 요즘 동네 산에 자주 오른다. 나뭇가지들은 앙상하지만 산은 왠지 포근하다. 흙이 산을 감싸고 있음이다. 산그늘이 앉으면 아늑하다. 비와 어울리는 산이다. 비가 추적거리면 헤아릴 수도 없는 다양한 빛깔의 흙냄새가 풋과일처럼 물씬거린다. 빗소리도 다양한 빛깔의 건반을 탄다. 동네 산 아래 공원은 왁자지껄하다. 뛰노는 아이들이 정겹다. 아이들의 질주 본능이 나온다. 그러나 바닥은 아스팔트다. 저러다 넘어지면 어쩌나. 아니나 다를까 아이의 이름 부르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뛰면 다친다는 경고의 메시지다. '하지 마라'는 소리에 유난히 길들여진 아이들은 이내 뛰는 걸 멈춘다. 아이들은 날개를 한껏 펼쳐 달리고, 뛰고, 뒹굴고 싶었을 것이다. 흙은 푹신한 솜이불 같은 존재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도심의 아이들은 흙을 모른다. 그 웅숭깊은 포근함을, 촉감을, 숨결을, 내음을 모른다. 흙이 '흙수저'로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세월 빠르게 달라지는 세태를 어찌 탓할 수 있으랴마는 흙은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희망의 씨를 싹 틔우고, 까닭모를 허허로움을 위로해줄 마음의 쉼터가 바로 흙이라고. 단비가 풋풋한 흙냄새를 퍼올리며 봄을 재촉하고 있다.

2017-02-22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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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첫인상

첫인상은 뜻밖에도 이국적이었다. 르네상스 양식에 비잔틴 풍의 돔! 물 건너온 그런 서양 건축 양식을 차려입은 게 서울역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시골 촌놈은 서울역 광장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내 중학교 수학여행 기념사진에 박힌 한 장면이다. 시끌벅적했다. 팔도 사투리가 뒤엉켰고, 사람들은 더 엉켰다. 귀는 먹먹했고, 현란한 불빛에 눈은 휘둥그레졌다. 그 첫인상을 바꾸는데 무려 29년이나 걸렸다. 2003년 12월 지금의 현대식 고속철 역사가 준공되기까지 말이다. 저 유난했던 옛 서울역은 '문화역서울 284'로 문패를 바꿔단 채 기억 저편의 역사가 됐고, 그 바통을 이어받은 고속철 역사는 지금 재기발랄하다. 널찍해서 산뜻하고 밝다. 쇼핑 장터가 섰고. 볼거리를 제공할 무대도 설치됐으며, 먹거리 천지다. 객들은 시계바늘처럼 째깍거리지만 질서 있고 차분하다. 내 첫인상의 서울역은 이렇게 새 단장했다. 첫인상이 결판나는 건 단 3초! 사람의 경우 표정이나 동작까지 통째 그 째깍 몇 번에 결정된다니 취업 면접관의 예리한 속성 파노라마는 오죽할까.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아쉬의 입을 빌리면 취업 준비생들의 눈이 번쩍 뜨일 거다. 한번 박힌 첫인상은 나중에 들어오는 그 사람의 후속 스토리에 대해 좀체 귀 기울이지 않는 고집불통의 잣대가 된다는 거다. 금세 굳는 콘크리트 같은 묘한 집착. 이게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초두효과'라는 것이다. 일전에 고장 난 스마트폰을 수리하려 시내 서비스센터를 찾아간 적이 있다. 건물 안을 두리번거리는데 무섭게 입구를 지키고 있던 사설 경비원에게 가로막혔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는 다짜고짜 어디 가느냐고 묻는데 고압적이었다. 문간을 지키는 경비원이 저 정도면 이 건물의 주인은? 경비원이 눈을 희번덕거리는 사이 물음표를 단 상상은 증폭됐다. 다행히 건물 안은 친절했기에 망정이지, 내 스마트폰 회사 로고의 이미지는 하마터면 구겨질 뻔했다. 취준생과 기업과의 첫 맞선! 인상 깊고, 여운도 길다. 취업시즌을 맞아 면접 체험기가 가슴 아리게 들려온다. 최악의 취업 한파 와중에 면접 갑질이 고개를 드는 모양이다. 질문 속에 학연, 지연에 대한 편견이 녹아 있는가하면 성차별, 외모 비하, 연애담에, 말 자르기까지. 디지털 시대에 입사 면접은 여전히 아날로그에 멎어 있다. 냉수 한 잔 제공은커녕 슬리퍼를 신고 나오는 면접관의 개념 없는 자세에서 그 회사의 얼굴을, 아니 미래를 본다. 취준생 면접은 기업에 대한 또 다른 면접이라는 역설을 왜 모르는 걸까. 며칠 밤을 뒤척이며 퀭한 눈으로 면접장 문을 두드렸을 청춘들! 내일은 또다시 내일의 태양이 뜬다지만 숱하게 쓴 맛을 본 좌절의 그늘은 너무 짙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그 그늘을 지우려 얼마나 애썼을까. 혹여 이번에도 들러리용으로 세운 건 아닐까, 겨우겨우 면접까지 올라와 지푸라기라도 건지려는 그들은 그러나 무성의하고 생뚱맞은 질문에도 아연한 기색조차 숨죽여야 했을 것이다. 그런 청춘들의 마음 밑바닥에는 과연 어떤 생각들이 고였을까. 첫인상의 경제학적 역학이 여기에 숨어 있다. 사람 귀한 줄을 모르는 기업에 인재가 모일 리가 만무하다. 고용하는 입장에서 보면 자식, 동생, 조카 뻘 되는 청춘들이다. 요즈음 취업 한파에 밤마다 울음을 삼키는 취준생들이 부지기수다. 그 청춘의 정신적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서라도 면접은 정중하고 인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2017-02-15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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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2월의 전설

2월의 대학 교정은 쓸쓸했다. 교정은 내 젊은 날의 추억이 살아 숨 쉬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지난 주말 나는 그 흔적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크고 작은 뜰엔 잔설이 희끗거렸고, 시선은 낯익은 소나무 숲에 오래 머물렀다. 졸업사진의 풍경으로 수놓았던 소나무 숲! 아련함이 가슴을 차고 올라왔다. 눈은 시렸다. 입춘을 알아차린 소나무 숲은 초록빛을 따스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대학 졸업식 즈음이면 더욱 짙은 물감을 풀 것이다. 2월이 오면, 아니 졸업의 계절이 오면 내 기억의 창고엔 허허로움이 스친다. 졸업하던 그날의 추억이 거센 숨결로 밀려왔다. 졸업식 날 취업한 과동기들이 눌러쓴 사각모는 눈부시도록 빛났으며, 그 가족들 주변엔 따스하고 향기로운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걸 봤다. 대학원 진학을 빼고 취업 못한 동기는 손꼽을 정도였다. 개중 한 사람이었던 나는 사각모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시골서 올라온 가족들은 그 엇갈린 표정을 읽고 얼마나 가슴 아파했을까. 2월은 냉혹했다. 나는 교문을 나서면서 '자취방 학생'에서 '실업자 김 씨'로 바뀌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취직한 친구들에겐 교문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개선문이었지만, 나에겐 무너진 상아탑이었다. 그땐 그렇게 보였다. 2월의 밤은 처연했다. 그날 밤 자취방을 나와 흰 눈을 펑펑 맞으며 소나무 숲 부근 교정을 배회했다. 살을 에는 눈바람. 소나무 숲은 침묵했고, 나는 그 아래 웅크린 채 울먹거렸다. 눈바람은 뜨겁게 젖은 얼굴을 죽비처럼 마구 때렸다. 불현 듯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의 긴 그림자에서 내 2월의 아픈 뒤안길을 본다. 졸업철이다. 60대 이상의 실버 취업자 수가 20대 청년을 앞지른 취업구조. 설렘과 기대 속에 교문을 나서는 졸업생들도 있겠지만 내 아픈 2월을 답습할 졸업생은 또 얼마나 많을까. 혹자는 '마무리와 시작이 공존하는 2월'이라고 하지만 미취업생들에겐 '마무리와 시작이 충돌하는 2월'이다. 그 충돌의 스파크 속에 그들의 가슴은 타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 말자. 졸업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 윈스턴 처칠은 영국 옥스퍼드대 졸업식에서 이런 축사를 했더랬다. '포기하지 말라.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얘기일 것이다. 성공은 꿈꾸는 자에게 있고, 그 꿈의 뿌리는 희망이다. 희망이 흔들리면 꿈이 흔들린다. 그래서 혹자는 '실업보다 더 무서운 게 꿈과 희망을 잃는 것'이라고 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절망하지 않아야 하는 까닭이다. 마음이 추울수록 따스한 봄을 기다리는 꿈은 더욱 간절해지고, 단단해지는 법이다. 나무줄기에 매달려 저 꿈틀대는 고치를 보라. 그 무엇이 고치껍데기 밖 세상에 나오려 발버둥치는 광경을 말이다. 그건 취업을 갈망하는 졸업생들의 몸부림이자 절규에 다름 아니다. 안쓰럽다고 해서, 고치껍데기를 섣불리 벗겨주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거기에서 나비는 온전할까. 과연 날개를 펴고 제대로 날 수 있을까. 아니다. 날개의 힘! 그것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고치를 수없이 떼밀어냈을, 그 고통을 감내해야 비로소 훨훨 나는 나비가 되는 것이다. 병아리가 달걀의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이치와 같다. 인고의 세월을 건너뛰어서는 비상할 힘, 세상 급류를 헤쳐 나갈 생존본능이 생기지 않는다. 그 고통의 허물을 벗고 사회의 첫 발을 힘차게 내딛는 건 온전히 자기 몫이다. 내 2월의 전설이 가르쳐준 체감 교훈이다.

2017-02-08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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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완행열차의 3분

어쩌다 덜커덩거리며 완행하는 기차를 보면 만남과 이별이 교차한다. 그리운 임 만나려 버선발로 달려가는 기차는 출발부터 설레지만, 변심한 임을 실은 기차는 붙잡아도 뿌리치며 냉정하게 발차한다. 행선지는 같아도 사연에 따라 기차는 색감 다르게 사무치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달려온 기차의 녹슨 창틀의 모습엔 그런 애환이 비친다. 명절날의 기차 이미지는 만남과 설렘. 매서운 추위가 종종걸음을 재촉하던 이번 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른 아침 서울역 플랫폼 앞에 들어선 KTX 고속 열차는 허연 입김을 푹푹 뿜어내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몸을 싣자 KTX는 미끄러지듯 역을 빠져나가더니 금세 속도에 탄력이 붙였다. 시속 300㎞의 속력! KTX가 그 질주본능을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전날부터 한껏 부풀었던 설렘이 무뎌지지 않았을 거다. 번득이는 스피드는 시간과 공간만 좁힌 게 아니었다. 강퍅한 세파를 누그러뜨리며 어렵사리 싹 틔우는 감성의 여유조차 좁혔다. 아련하게 스케치하던 향수의 낱장들을 동심의 물감으로 채 물들이기도 전에 어서 내려라 한다. 플랫폼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눈 깜짝할 새 증발하는 기차를 바라보는 연인의 심경은 또 어떨까. 맨바닥에 퍼질러 앉아 목 놓아 울기엔 기차는 너무 쏜살같다. 찔끔 눈물 한 방울도 허용하지 않는 냉정한 속도다. 헉! 이 짧은 외마디의 카타르시스로 이별 정거장이 종영되는 이런 어색함도 없다. 스피드의 속성은 야멸차다. 뿌리치는 기차를 원망할, 감정을 추스를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세상은 그러나 빠르고 편리하게 진화하는 것이기에 스피드를 탓할 순 없다. 빠른 속도에 매료돼 우리네 심장박동은 뛰었고, 그렇게 불붙은 속도 경쟁은 정보 통신(IT) 강국으로 일궈냈기에 그렇다. 스피드는 부와 성공을 안겨주었고, 그 두 단어의 대명사가 됐다. 사람들은 성공했을 때 '앞만 보고 달렸다'는 표현을 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가히 스피드가 미덕인 세상이다. 객차 창밖 시골 풍경의 필름은 달리는 속도에 압도돼 숨 가쁘게 돌아갔다. 컷마다 스토리를 담아낼 완행 정물화는 실종됐다. 사람들이 열차가 출발하자마자 커튼을 치고 잠을 청하는 까닭이다. 더러는 무슨 영문인지 스마트폰과 열심히 싸운다. 널따란 창에서 손바닥 크기의 IT 화면으로 대체된 생각의 공간. 옆 사람과 말을 나눌 여유는커녕 눈길조차 던지지 않는 시대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수런수런 이야기꽃이 피어나던 저 완행의 추억이 그래서 그립다. KTX가 경부선의 중간 역인 대전역에 정차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그 기회가 찾아왔다. 객실 창 너머의 무궁화호 열차! 그 무궁화호가 시곗바늘을 30년 전으로 되돌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완행열차 통일호를 마주하게 해준 것이다. '쉬어간들 어떠리'라고 벽계수의 말고삐를 잡는 황진이 같았던 통일호는 속도에 갇혀 지워진 낭만을 떠올려주었다. 객차의 덜컹거림이며, 군침 돌게 하던 삶은 계란이며, 왁자지껄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던 모습을…. 대전역엔 잊을 수 없는 추억 한 장이 담겨 있다. 1980년대 당시 플랫폼 부근에 간이 우동집이 있었다. 우동 먹는 재미가 여간 아니었다. 정차시간은 3분. 내리고 타고, 우동값 계산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빼면 채 2분도 안될 거다. 주문은 쇄도했고, 초를 다투며 몇 가닥을 입속에 넣으려다 기차를 놓칠 뻔했다. 기차는 움직였고, 스톱! 외치고 또 외쳤다. 기차는 멈춰 서줬다. 그 인정 넘치던 낭만 완행열차가 그립다.

2017-02-01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