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노동사법화 리스크로 위기…현대차·한국지엠·포스코 등 기업경영 부담 가중
국내 산업계가 노동사법화 리스크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 금리 인상,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장기화등 대외적 악재에 사법 리스크까지 커지면서 기업은 본연의 경영보다 법적 대응에 시간과 비용을 쏟아부으며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런 상황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해를 거듭할 수록 더욱 악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의 임단협 잠정합의안이 타결되자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정규직 노조의 채용합의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지회는 성명문에서 10년만에 추진되는 신규인력 채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주장했다. 대우조선해양은 하청업체 노동조합의 파업과 불법 점거 농성으로 약 50일간 도크가 멈추면서 추정 누계손실액만 6600억원이 넘는 피해를 입었다. 정부가 중재에 나서고 법원이 불법점거 퇴거 명령을 내렸지만 여전히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이에 한국산업연합포럼(KIAF)과 자동차산업연합회(KAIA)는 19일 '기업 경쟁력 관점에서 본 국내 노동환경'을 주제로 제23회 산업발전포럼 겸 제28회 자동차산업발전포럼을 개최했다. 산업계는 노동 환경의 경직성이 투자와 성장을 막는 핵심 요인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특히 하청업체, 하도급, 도급, 비정규직 노동자를 둘러싼 갈등은 기업 경영의 뇌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산업계 강타한 '직고용' 리스크…흔들리는 '생산유연성' 산업계에서는 현대차와 기아, 현대제철, 한국지엠, 포스코 등 5개 기업이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최종 패소할 경우, 부담해야 할 인건비가 2021년 평균 연봉을 기준으로 연간 3조1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계속되는 반도체 부품 수급 난항으로 생산 차질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파견법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전문지식·기술·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해 32개 업무를 대상으로 파견 기간은 2년으로 한정됐다. 그러나 실제 기업의 수요가 가장 많은 제조업 생산공정 등의 업무는 배제돼 있기 때문에 국내 기업은 고육지책으로 사내 하도급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경기 변동성이 큰 조선이나 자동차 산업은 파견인력을 기초로 생산유연성이 필수적인데 이를 사내하도급으로 대응했다. 문제는 이러한 파견법과 사내하도급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지휘·명령권이 어디에 있느냐가 '불법파견'과 '적법도급'의 판단 기준이다. 원청이 사내하도급 근로자에게 직접 지휘·명령권을 행사하면 불법파견, 도급업체가 지휘·명령하면 적법도급이 된다. 한국지엠의 경우 2013년에 실시된 특별근로감독 결과 관련부처로부터 적법하게 하도급을 운영하고 있다는 판단을 받았다. 그러나 하도급법과 파견법 사이의 판결이 갈리면서 하도급 근로자들로부터의 민사소송, 불법파견과 관련된 형사소송, 고용노동부의 직접고용명령 등 다각도로 하도급 근로자 채용 압력을 받고 있다. 현재 약 2000명 정도가 한국지엠에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8000명 수준의 한국지엠 정규직 근로자의 25%에 해당된다. 현대차는 2010년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법정소송에서 패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소송에 시달려왔다. 현대차 노사는 2015년 대법원 판결에 앞서 사내하도급 특별고용 합의를 통해 비정규직 45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이후에도 정규직 채용시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우대키로 했다. 그러나 2020년 대법원 판결 이후 고용노동부가 현대차 3개 공장 사내하도급 노동자 3668명을 그해 12월 28일까지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시정지시를 내렸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이 외에도 포스코가 1만8000명, 현대제철 7000명, 기아 800~900명 등 규모는 다르지만 많은 기업들이 '직고용' 리스크에 직면해있는 상황이다. 이욱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전 세계 많은 기업들이 외부 기업과 아웃소싱, 도급, 용역, 위탁 등 다양한 형태의 계약관계를 맺고 분업을 통한 경영의 효율을 추구하고 있다"라며 "반면 우리나라는 파견법이 가장 강력한 규제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제조업, 서비스업, 사외도급 등 업종과 형태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영역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며 직고용 리스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글로벌 경쟁의 격화, 스테그플레이션에 따른 경기위축과 저출산·고령화 심화, 디지털화, 텔레워크 확산 등에 따른 고용환경 변화에 맞춰 1953년 집단적·획일적 공장근로를 전제로 설계된 노동법의 현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근 들어 노사가 내부의 노동갈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소송으로 이어지는 '노동의 사법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최근 노동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을 보면 동일한 사안을 두고 심급에 따라 재판부에 따라 심지어는 담당판사에 따라 상반된 판결이 나오는 등 일관성이 없고 예상이 불가능하여 산업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러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노사합의를 전제로 하는 자치규율이나 노사관행 및 주무행정관청의 유권해석에 따라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사법부도 행정부의 유권해석이나 지침 등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정만기 KIAF겸 KAIA회장은 "최근 우리 산업은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으로 인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글로벌 수요위축 등 시장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점일 것"이라며 유럽·일본 등의 노동유연성 사례를 들어 "우리나라는 해고나 채용의 자유가 제한돼, 내부 노동시장의 유연성마저 확보하지 못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수요 변화에 대한 노사간 합의에 의한 자발적, 창의적 대응을 촉진한다는 측면에서 노사간 합의를 존중하는 대대적 노동 혁신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