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개정, 한국경제에 양날의 검 될까
# 쌍용씨앤이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은 최근 'A'에서 'A-'로 강등됐다. 한국기업평가는 과한 배당 등으로 재무구조가 저하됐다는 점을 등급 조정의 사유로 꼽았다. 한기평은 "2025년 4월에는 2024년 결산 배당금 2219억원을 지급하면서 상장폐지 이후에도 주주환원 목적의 자금소요가 지속되고 있다"며 "전방산업 부진으로 인한 현금창출력의 저하 가능성, 주주환원 관련 자금소요 등을 감안하면 의미 있는 수준의 재무구조 개선에는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쌍용씨앤이는 사모펀드 한앤코시멘트홀딩스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기업의 발목을 잡는 '청구서'일까. 기업의 투자와 인수합병(M&A)을 촉진할 '마중물'일까. 25일 더 '센 추가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시장 참여자들사이에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 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기존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 8단체는 "상법 추가 개정은 사업재편 반대, 주요 자산 매각 등 해외 투기자본의 무리한 요구로 이어져 주력산업의 구조조정과 새로운 성장동력 확충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용평가사들은 상법개정이 '신용 강등' 청구서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는다. 반면, 주주가치 제고로 기업 자금 조달이 확대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도 추진 중이다. ◆기업 발목잡는 상법개정안, 한국경제 발목 잡나 2016년 헤지펀드 엘리엇은 삼성전자에 설비투자 예산 75% 수준인 30조원의 주주환원 요구했다. 또 잉여현금흐름의 75%를 주주들에게 계속 환원하겠다고 발표하라고 촉구했다. 2018년엔 현대차에 순이익 4배 수준인 8조원의 주주환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 2차 상법개정안은 2016년과 2018년 엘리엇의 아픈 기억을 소환한다. 기업들이 주주환원에 초점을 둔 재무 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는 기업 신용도를 끌어내릴 명분이 된다. 김경무 한국기업평가 평가기준실 실장은 '상법 개정과 신용평가-경영재무전략 변화에 따른 채권자 이익 침해 경계해야'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소액 주주 이익 보호에 초점을 맞춘 상법 개정으로 채권자보다는 주주 이익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기업의 의사 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은 채권자 입장에서는 불리한 요인"이라며 "채권자의 이익이 침해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신용도 저하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배당 확대, 유상증자 위축, 자사주 소각 등의 추진은 재무 위험 측면에서 신용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배당 확대의 경우 부채 비율, 차입금 의존도 등 레버리지 지표 저하에 따른 재무 위험이 확대될 수 있고, 유상증자 위축은 재무 안정성 저하, 신종자본증권 등 대체 자본 활용 증가에 따른 자본의 질적 저하를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자사주 소각의 경우 자사주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나 교환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등 재무 전략의 유연성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고 부연했다. 이 같은 경고는 글로벌 신용평가사도 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2019년 '높아지는 신용 위험에 직면한 한국 기업들' 보고서를 통해"주주 환원 확대 정책이 기업의 신용등급과 등급 전망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주가치 제고, 기업 자금조달 초석 반면, 개정 상법이 주주 가치를 끌어 올리고, 기업 자금 조달을 원활하게 할 것이란 주장도 있다. 기업 신용등급 하락을 우려한 한기평 김경무 실장도 상법법 개정으로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와 주주 환원 부족이라는 국내 주식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이 해소돼 주식 시장을 통한 기업의 자금 조달에 도움이 된다는 점은 긍정적 요인"이라고 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주주권 행사 과잉으로 장기적 기업가치 제고가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도 있지만, 지금까지 한국 증시에서 주주들로 인해 기업 경영이 타격을 입은 사례는 단 한번도 없었다"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것으로 봤다. 이정빈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외국인 순매수 흐름은 지배구조 개혁 기대를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다"며 "ESG 관점에서는 이사회 독립성, 주주권리 보호 등에서 긍정적 평가가 가능하다"고 봤다. 이어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소수주주 권리 보장이 강화되고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이 높아질수록 한국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신뢰도는 향상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주주환원에 모든 걸 다 걸 수는 없다. 애플은 지난 10년 동안 7363억 달러를 자사주 매입과 현금 배당을 통해 주주에게 돌려줬는데, 이는 같은 기간의 당기순이익 누계액(6506억 달러)보다 더 큰 규모다. 그 결과 애플의 자기자본은 시간이 지나면서 감소하고 있다. 기업이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에서 주주환원을 뺀 금액이 유보라는 명목으로 자기자본에 더해지는데, 당기순이익보다 주주환원 규모가 크니 자기자본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애플의 자기자본은 2017년 결산기 말 1340억 달러에서 2023년 말에는 621억달러까지 53% 줄어들었다. 애플보다 더한 회사도 많다. 미국의 우량주 상당수는 아예 자기자본이 마이너스다. 스타벅스와 보잉, 맥도널드 등 S&P500지수에 속해 있는 종목 중 31개가 그렇다. 회계적으로는 부채가 자산보다 큰 완전 자본 잠식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자본 잠식은 적자가 누적되는 부실기업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은행은 '주주 환원 정책이 기업 가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시설 투자, 연구·개발 등 자본 투자가 필수적인 IT 고성장 산업들은 주주 환원보다는 자본 투자가 기업 가치 제고에 더 효과적"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