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풍향계' 유권자가 말하는 차기 서울시장 역할은?
"요새는 다 그놈이 그놈이기 때문에 자기를 이롭게 하는 사람을 찍는다. 당보고, 사람보고 뽑는 시절은 갔다. 나는 나한테 득 될 사람에게 표를 줬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위해 7일 투표장을 찾은 유권자들은 보수냐 진보냐, 좌파냐 우파냐를 보고 표를 던지지 않고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후보를 다음 시장으로 점지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오전 10시10분경 서울 영등포구 신길6동 제3투표소에서 만난 시민 이경영(이하 가명·55) 씨는 "옛날에 금호그룹 다녔을 때 모 후보가 우리 회사 와가지고 하는 특강을 듣고 그때부터 그 사람을 좋아했다"며 "그간 쭉 지켜봤는데 할 말은 하고 또 행동으로 보여주고, 그래서 참 소신 있게 느껴져 오랜 기간 팬이었다"고 고백했다. 이 씨는 "그런데 그 후보는 안 찍었다. 왜냐면 공약이 별로였다"면서 "현재 갖고 있는 집이 없어서 아파트를 싸게 준다는 다른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털어놨다. 신길5동에 사는 조일권(73) 씨는 "일년짜리 시장이 주택 30만호 짓는 거? 말도 안 된다. 우리 동네도 재건축한다 만다 말만 많고, 집 헐기 시작한 지 4년이 넘었는데 반도 못했다"면서 "다음 정권 바뀌면 또 마찬가지다. 공약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토론회 나와서 싸우는 거 보면 둘 다 똑같고. 어휴. 그게 정치를 하는 건가? 나는 이해를 못 하겠어"라며 혀를 끌끌 찼다. 조 씨는 "나는 인품이 좋고 상대를 존중할 줄 알고 그런 사람을 뽑으려고 했는데 없어서 투표할 때 참 힘들었다"고 말했다. 7일 투표장에 온 시민들이 다음 시장에게 가장 바라는 점은 '집값 안정'이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대로, 있는 사람들은 있는 사람대로 잔뜩 성난 상태에서 투표장을 찾았다. 서울영신고등학교에서 한표를 행사한 박숙경(65) 씨는 "집 없는 사람들 좀 제발 잘 살게 해줬으면 좋겠다. 집 있는 사람들은 세금 많이 낸다고 뭐라 할지 모르겠으나 우리 같은 무주택자들은 전셋값이 올라서 진짜 악에 받친다"면서 "집이 없으니까 최고로 화가 나고 살맛도 안 난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신길동 주민 박선주(58) 씨는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깎아준다는 사람을 시장으로 뽑았다. 은퇴자들 집 하나 갖고 있는데 돈을 어디서 구해서 내냐"면서 "재난지원금으로 10만원 주는 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이런 거 하지 말고 세금이나 올리지 마라. 재산세 때문에 의료보험료도 올랐다. 세금 폭탄 맞아서 부글부글 끓는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투표를 하려는 시민들로 붐볐던 영등포구 영신고등학교와 달리 마포구 성산초등학교는 다소 한산한 모습이었다. 신길6동 제3투표소는 투표소 밖으로 줄이 길게 늘어섰지만 합정동 제2투표소는 약 2분 간격으로 시민들이 한 두명씩 드문드문 나타나 차기 시장에게 표를 던지고 갔다. 이날 왼쪽 발에 깁스를 하고 합정동 제2투표소에 온 이라영(66) 씨는 "요즘 코로나 때문에도 그렇고 경기가 너무 안 좋다. 경제를 일으키고 서울을 좀 융화하면서 발전시켜 나갈 사람에게 투표하고 싶었는데 없어서 그나마 좀 나은 사람을 뽑았다"면서 "깁스한지는 한달 좀 넘었는데 다리를 다쳤어도 한표가 또 소중하니까 그래서 투표하러 나왔다"며 뿌듯해했다. 7일 오전 11시20분께 투표를 위해 마포구 성산초등학교를 방문한 주부 이정수(64) 씨는 "전세 사는데 집값이 너무 많이 올라가지고 부동산을 좀 안정화시킬 후보를 뽑으러 왔다. 집 없는 사람들이 제일 문제"라면서 "제 딸이 42살인데 걔는 직장 다녀서 사전투표했다고 했는데 누구한테 투표했나 모르겠다. 그런 얘기를 절대로 안 해서"라며 머쓱하게 웃었다. 지팡이를 짚고 합정동 제2투표소를 찾은 김선순(85) 씨는 "시정을 잘 펼쳐나갈 믿음직한 사람에게 투표했다. 말로만 공수표 내던지는 사람, 그런 사람 찍으면 세금만 더 들지. 모두에게 돈 10만원 주는 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뭐, 지 돈 주나?"라면서 "나이로 봐서 이게 마지막 선거일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한 끝까지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7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제2투표소(서울농학교 대강당)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다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 투표소를 찾았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윤관기(45) 씨는 "다음 서울시장은 미세먼지 대책을 꼭 세워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윤 씨는 "집값 폭등이 정부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집으로 돈 벌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정책을 강력하게 하면 오히려 선의의 피해자만 생긴다"며 "위에서 잘하면 국민들은 따라줄 것이니 집값 안정화를 꼭 이뤄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가영(20) 씨는 "집값이 너무 급등했다. 집값 못 잡은 것은 민주당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세종대 부동산학과 임재만 교수는 앞으로의 서울시 부동산 정책 방향에 대해 "서울시는 기본적으로 거의 다 만들어져 있는 도시로,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오래된 주택이 있고 오래된 주택은 아니어도 저이용되는 주택이 꽤 많은 점이다. 그중에서도 역세권처럼 접근성이 좋은 곳에 저이용·저층 주택이 있다면 그런 곳은 고밀 개발할 필요가 있다"며 "도시를 확장하거나 서울에만 사람이 몰리게 하는 개발은 지양해야 한다. 전체적인 국토의 균형발전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건축·재개발에 대해 임 교수는 "수요-공급 법칙을 생각해볼 때, 집값이 올라야만 재건축·재개발이 가능하다. 사람들은 내 집을 헐고 다시 지어 되팔 때 남는 차익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과거 뉴타운 지정 때도 상당히 많은 곳을 지정했는데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떨어지면서 다시 뉴타운 지정 해제를 했다. 지금도 재건축을 기다리는 지역이 있는데 만약 집값이 떨어지면 아무리 규제를 완화해도 개발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투표장에서 만난 20·30대는 정권심판론으로 무게가 쏠린 모습이었다. 투표 후 서울농학교를 빠져나가던 최한석(23) 씨는 '어떤 기준을 갖고 다음 시장을 선택했냐'는 물음에 "후보들의 정책은 믿지 않는다. 정권 심판을 해야한다"며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이나 되는 거대 여당이다. 지금쯤 제동을 걸어줘야 한다"고 답했다. 전아영(20) 씨는 현재 진행 중인 광화문 광장 공사에 불만을 드러냈다. 전 씨는 "광화문 광장 전면 백지화를 내건 후보에 투표했다. 도로도 막히고 소음도 많이 나고 전체적으로 주민 불편이 너무 심해 다니기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투표소를 잘못 찾아 자신에게 맞는 투표소로 되돌아가던 김유연(21) 씨는 "주택과 일자리 정책이 쓸만하고 청렴한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했다. 김신일(33) 씨는 "전임 시장처럼 이상한 짓만 안 했으면 좋겠다"며 "1년밖에 못하는 시장이기 때문에 새로운 거 하지 말고 그냥 하던 거 잘했으면..."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투표하러 오기 전에 공약을 쭉 읽어보고 왔는데 기호 15번 신지예 후보가 문화예술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40대 황상용 씨는 "누가 되든 박원순 시장 정도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20·30세대의 민심 이반에 대해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이종찬 교수는 "첫째는 청년 세대가 조국사태, LH 임직원 투기 의혹 사건을 보고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공정에 실망한 것이 가장 큰 이유고, 둘째는 현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의 실패로 인한 취업난, 내수 악화로 이어진 청년들의 좌절이 민심 이반의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강남 3구에서 투표율이 비교적 높게 나오고 있다. 투표율이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오세훈 후보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