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윤열의 푸드톡톡] '0'의 발견에서 제로 칼로리까지, 마케팅에 숨겨진 진실
기상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한달 전국 평균기온은 27.1도로 7월 1~10일 평균기온 1위, 서울·강릉 등 열대야 일수 1위, 서산, 광주지역 1시간 최다 강수량 1위로 역대 기록을 경신하였다. '20세기 최악의 여름'으로 기록된 1994년과 거의 동급 수준이었다. 폭염철 가장 인기 있는 품목중 하나가 청량 음료다. 음료를 포함한 각종 가공식품 포장지에 적혀있는 '제로'라는 숫자에 대한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보자. 고대 인도에서 발견된 0(제로)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아무것도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0은 위치 기수법을 가능하게 하여 수학과 과학 발전의 토대가 되었고, 현대에 이르러 0과 1로 작동하는 컴퓨터의 이진법 디지털 혁명을 이끌었다. 하지만 식품 포장지에 적혀있는 '제로'는 수학적 의미의 0이 아니다. '제로 칼로리', '제로 슈가', '제로 지방'이라는 표시가 붙은 제품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마치 모든 것이 '0'으로 귀결되는 듯한 이 시대에 과연 이 '제로'가 의미하는 뜻이 무엇인지 봐야 한다. 수학에서 0이라는 숫자가 인류 문명에 혁명을 가져다준 것처럼, 식품 업계의 '제로' 마케팅도 소비자들의 인식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식품의 규격과 기준을 정하고 있는 식품공전에 따르면, '무(無)' 또는 '제로'라는 표현을 사용하려면 해당 성분이 식품 100g당 특정 기준 이하여야 한다. 칼로리의 경우 100g당 4㎉ 이하, 당류는 100g당 0.5g 이하, 나트륨은 100g당 5㎎ 이하면 '제로'라고 표시할 수 있다. 즉, 완전한 0이 아니라도 '제로'라고 광고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500ml 음료에 당분이 2g 들어 있다면 100ml당 0.4g이 들어 있음에도 '제로 슈가'라고 표시할 수 있다. 소비자가 전체 용량을 마시면 결국 2g의 당분을 섭취하게 되지만, 제품 포장에는 당당히(?) '제로'라고 적혀있는 셈이다. 이는 마치 컴퓨터의 이진법처럼 명확한 0과 1의 구분이 아니라, 회색지대가 존재하는 아날로그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제로 칼로리' 제품들이 단맛을 내는 비결은 인공감미료에 있다. 아스파탐, 수크랄로스, 스테비아 등 다양한 당 알코올에 속하는 감미료들이 설탕 대신 사용되고 있다. 이들은 설탕보다 수백 배 단맛이 강해 극소량만 사용해도 충분한 단맛을 낼 수 있어 칼로리를 대폭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인공감미료에 대한 연구 결과는 엇갈린다. 일부 연구에서는 인공감미료가 장내 미생물 균형을 깨뜨리고 당분에 대한 갈망을 오히려 증가시킬 수 있다고 보고한다. 또한 인공감미료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러운 단맛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져 더 강한 단맛을 찾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특히 아스파탐의 경우, 페닐케톤뇨증 환자에게는 위험할 수 있어 반드시 주의 표시를 해야 한다. 또한 임신부나 어린이의 경우 인공감미료 섭취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제로 지방' 제품들도 마찬가지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가공식품과 음식에서 지방을 제거하면 자연스럽게 맛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당분이나 나트륨을 더 많이 첨가하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지방 함량은 줄었지만 전체 칼로리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반 요거트와 무지방 요거트를 비교해 보면, 무지방 요거트에는 설탕이나 과일 시럽이 더 많이 들어있어 칼로리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경우가 있다. 또한 지방은 포만감을 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를 제거하면 오히려 더 많이 먹게 될 수도 있다. '저나트륨' 또는 '무염' 제품들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나트륨을 줄이면 자연스럽게 짠맛이 부족해지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MSG나 다른 화학 조미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염분을 줄인 대신 단맛을 강화하여 전체적인 맛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기도 한다. 특히 가공육류나 치즈 등에서 나트륨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보존성과 안전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저나트륨' 제품을 선택할 때는 다른 첨가물들이 증가했는지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 메트로 독자들을 위해 똑똑한 소비자가 되는 5가지 원칙을 공개한다. 첫째, 영양성분표를 꼼꼼히 읽는 습관을 기르자. 앞면의 광고 문구보다는 뒷면의 영양성분표가 진실을 말해준다. 특히 1회 제공량당 영양성분을 확인하고, 실제로 섭취하는 양과 비교해보자. 둘째, 원재료명을 확인하자. 성분은 함량이 많은 순서대로 표시되므로, 앞쪽에 위치한 재료들이 주성분이다. '제로 슈가'라고 적혀있어도 원재료명 앞쪽에 인공감미료가 여러 개 나열되어 있다면 단맛이 강한 제품일 가능성이 높다. 셋째,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제로' 제품이라고 해서 무제한 섭취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칼로리가 낮다고 해서 영양가가 높은 것도 아니며, 인공첨가물에 의존한 제품일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넷째, 다양성을 추구하자. 한 가지 '제로' 제품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자연식품을 포함한 다양한 식품을 균형 있게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공도가 낮은 식품일수록 인공첨가물 없이도 자연스러운 맛과 영양을 얻을 수 있다. 다섯째, 개인의 건강 상태를 고려하자. 당뇨병 환자라면 '제로 슈가' 제품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임신부나 성장기 어린이라면 인공감미료보다는 자연스러운 단맛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수 있다. 결국 '제로' 마케팅의 홍수 속에서 현명한 소비자가 되려면 광고 문구에 현혹되지 않고 실질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0이라는 숫자가 수학에서 혁명을 일으켰듯이, 우리의 식품 선택에도 진정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연윤열 식품기술사, (사)인천푸드테크협회 사무총장, (사)미래안보산업전략연구원 식량안보연구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