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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이선호의 베이스볼 카페]이치로의 부상방지 본능

스즈키 이치로(40·뉴욕 양키스)가 얼마 전 개인통산 4000안타를 때렸다. 메이저리그에서 4000안타를 넘긴 선수는 피트 로즈(4256개)와 타이 캅(4189개)이었다. 그런데 일본 안타수가 포함돼 있어 메이저리그 4000안타와 견주기는 어렵다는 논란이 벌어졌다. 만일 이치로가 일본 오릭스가 아닌 1994년부터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경기수(162경기) 때문에 훨씬 많은 안타를 기록했을 수 있다. 이치로는 2001년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평균 200개가 넘는 안타를 때렸으니 어쩌면 로즈의 기록을 넘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그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베스트 툴스 플레이어'다. 탁월한 컨택 능력, 내야 안타 생산력까지 더해 안타 부문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빠른 발을 이용한 주루와 폭 넓은 수비력, 강한 어깨까지 갖췄고 경기를 읽는 영리함도 갖췄다. 더욱 높은 평가를 받는 대목은 노력과 성실성이다. 그는 풀타임 주전으로 발돋음한 1994년부터 정확하게 20년 동안 단 한번도 부상 장기 이탈이 없었다. 그만큼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훈련패턴은 언제나 똑같다. 오히려 음식은 편식이 있는 편이다. 야채보다는 불고기를 좋아하고 아내가 만들어준 카레를 즐기는 정도다. 그의 모토는 부상예방이다. "다치고 후회하지 않게끔 미리 예방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일어나서 잘 때까지 시계추처럼 똑같은 패턴을 갖고 있다. 야구장 도착과 훈련시각은 한치의 틀림도 없다. 허리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소파 대신 딱딱한 의자를 사용한다. 아울러 유연성을 기르는 훈련을 중시한다.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은 피하고 심지어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스파이크 대신 슬리퍼를 신는다. 심지어 끝내기 승리 직후 선수들끼리 격하게 몸을 부딪칠 때도 다치지 않도록 미리 충격완화를 생각한다고 한다. 이것이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로서 자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상이 많은 한국 선수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한 자세가 아닌가 싶다. /OSEN 야구전문기자

2013-08-26 17:21:10 유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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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사이다는 원래 사과술

무색투명한 탄산음료를 우리는 사이다(cider)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영어사전에는 사과술, 혹은 사과즙이라는 뜻으로 나온다. 톡 쏘는 맛의 탄산음료, 청량음료라는 의미는 전혀 없다. 본고장인 서양에서는 사과술을 나타내는 단어가 왜 한국에서는 엉뚱하게 탄산음료를 가리키는 단어로 변신했을까? 먼저 탄산음료를 뜻하는 사이다는 일본에서 만들어져 전해진 단어다. 그렇기 때문에 사과술인 사이다를 탄산음료라는 뜻으로 쓰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일본에서 사이다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에도시대 말기다. '닛케이(日經) 디자인'이라는 잡지에 의하면 1868년 영국의 무역회사가 요코하마에서 샴페인 사이다라는 음료를 판매했는데 이것을 줄여서 '사이다'라고 불렀다. 샴페인 사이다의 정체는 탄산음료가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사과술로 만든 발포성 알코올 음료, 그러니까 스파클링 와인 종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까지는 사이다라는 이름이 제대로 쓰였다. 하지만 샴페인 사이다를 줄여서 사이다라고 부르는 과정에서 사과술이라는 의미는 사라지고 톡 쏘는 성분만 강조됐다. 1899년 요코하마에서 당시로서는 새로운 음료인 탄산음료가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때 마실 때 톡 쏘는 음료라는 것을 강조하는 뜻에서 사이다라는 상표를 붙였고 이 음료가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팔리면서 사이다가 사과술 대신 탄산음료를 뜻하는 단어로 굳어졌다. 우리나라에는 한일합방 이전인 1905년, 조선 거주 일본인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탄산음료가 처음 들어왔다. 그리고 해방될 때까지 일본인들이 탄산음료를 독점 생산하면서 역시 사이다가 탄산음료를 가리키는 단어가 됐다./음식문화평론가

2013-08-21 13:02:10 안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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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식후에 왜 사탕을 먹을까?

보통 식후에는 먹는 디저트로는 과일이나 초콜릿, 사탕처럼 달콤한 음식이 많이 나온다. 특히 따로 후식을 내오지 않는 대중음식점에서는 식후 입가심하라고 계산대에 박하사탕 종류를 놓는다. 밥 실컷 먹었는데 살찌게 왜 또 사탕이냐며 타박하는 사람까지 있는데, 왜 하필 사탕을 주는 것일까? 단순하게 입가심하라거나, 아니면 소화를 돕는다는 이유가 전부일까? 사탕의 역사를 알면 음식점에서 왜 사탕을 주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요즘 사탕은 아이들의 충치를 유발하고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눈총을 받고 있지만 옛날 사탕은 원래 약이었다. 건강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지켜주는 식품이었다. 게다가 요즘은 아이들 군것질거리에 불과하지만 옛날에는 귀족이나 부자 아니면 언감생심, 감히 먹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고급 사치음식이었다. 때문에 설탕이 처음 유럽에 소개됐을 때는 값이 비싸 주로 약국에서 의료 목적으로 쓰였다. 유럽에서는 주로 기침, 감기, 가슴 통증, 오한 등 겨울철 감기치료에 특효가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부자들의 식후 소화제로도 사용했다. 유럽의 귀족들은 배불리 먹고 난 후에는 소화를 시킨다며 사탕이나 설탕에 절인 과일을 침실로 가져가는 풍속이 있었다. 남미에서 초콜릿이 전해진 후에는 사탕 대신 초콜릿을 먹었으니 요즘 디저트로 초콜릿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사탕과 약은 발달의 역사가 같다. 중세 의사들은 약의 고약한 맛을 없애기 위해 설탕을 입혀 딱딱하게 만들었다. 현대 당의정(糖衣錠)의 뿌리이자 사탕의 원조다. 약초의 쓴 맛을 없앨 뿐만 아니라 설탕 자체가 약이었으니 일석이조였던 것이다. 사탕과 당의정은 뿌리가 같은 셈이다. /음식문화평론가

2013-08-08 09:10:38 안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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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 스토리]불도장, 스님이 담장을 넘었다?

불도장, 스님이 담장을 넘었다? 불도장은 중국의 여름 보양식이다. 길 가던 스님이 집 건너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담장을 뛰어넘고 파계했다는 음식이다. 부처 불(佛)·뛸 도(跳)·담장 장(墻)자를 써서 '스님이 담장을 넘었다'는 희한한 요리 이름이 여기서 비롯됐다. 불도장은 어떤 음식일까? 제대로 만들면 모두 서른 가지의 재료가 들어간다. 샥스핀·전복·해삼·사슴꼬리·생선입술·자라 등의 고대 산해진미와 버섯· 죽순·구기자 등 각종 약재를 전통 명주인 소흥주 항아리에 담아 연잎으로 밀봉한 후 다섯 시간 넘게 고아 만든다. 불도장은 왜 유명해졌을까? 부자들의 값비싼 음식 때문도 아니고, 스님이 파계할 만큼 맛있기 때문도 아니다. 분명한 사실은 음식 때문에 담장을 넘은 스님은 없었다. '항아리 뚜껑 여니 음식향기 사방에 진동하고/길 가던 스님, 참선도 포기하고 담장을 넘었다네.' 맛에 반한 손님이 지었다는 시로 불도장이라는 이름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문학적 창작의 결과다. 널리 알려진 중국 요리 치고는 역사도 짧다. 기껏 백년을 조금 넘었을 뿐이다. 청나라 말기 푸젠성의 금융기관 책임자가 상급 감독관청 관리를 접대하려고 만든 것이 효시다. 지방요리에 불과한 불도장이 세계적 명품 요리가 된 직접적 계기는 중국 외교 덕분이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만찬음식으로 불도장을 준비했다. 여기에 스님이 담을 넘었다는 허구의 스토리까지 더해져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이 됐다. 불도장 이야기에서 중국의 문화와 역사가 만들어 내는 소프트파워가 느껴진다. 앞으로 다가 올 차이나 쇼크는 중국의 경제력이 아니라 문화의 힘이 아닐까 싶다.

2013-08-01 11:34:22 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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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장어는 세계인의 여름 보양식

몸도 마음도 쉽게 지치는 여름철, 기운을 차릴 수 있는 보양식으로 장어를 먹는다. 힘이 세고 생명력이 강한 물고기여서인지 사람들은 장어를 먹으며 힘이 고스란히 자신의 몸속으로 전해지기를 빌었는지, 한국·중국·일본 등 동양은 물론 바다 건너 유럽에서도 여름 장어는 특별하게 취급했다. 우리한테 여름 장어는 어떤 음식보다 좋은 영양식이었다. 오죽하면 '숙주, 고사리 넣고 끓인 장어탕을 먹고 난 후에 다른 국을 먹으면 맹물에 조약돌 삶은 맛이 난다'고 했을까. 장어는 더위에 잃어버린 입맛을 찾아주는 식욕 촉진제였다. 고려 왕실에서도 여름이면 보양식으로 장어를 먹었는데 옛날에는 임진강 장어가 유명해 여름에 잡히는 장어는 우선적으로 송도 왕궁으로 보냈다. 일본은 우리보다 더 장어를 사랑했다. '여름에 장어를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속설까지 있으니 특히 복날이면 우리가 삼계탕 먹는 것처럼 일본인은 장어덮밥을 먹으며 여름을 보낸다. 중국 역시 전통적으로 장어를 보양식으로 여겼다. 송나라 때 '태평광기'에는 영양이 풍부한 여름 장어를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는 보양식으로 보았다. 사실 한·중·일 3국에서 추어탕이 여름철 농민들의 보신 음식이었다면 장어는 중산층의 하절기 보양식이었다. 유럽도 여름철에 장어를 먹는다. 동양과는 보신의 개념이 다르지만 독일 북부에서도 여름 별식으로 '알 주페'를 즐겨 먹는데 독일어로 알(Aal)은 장어, 주페(Suppe)는 수프이니 바로 장어탕에 다름 아니다. 유럽에는 독일 말고도 여름 별식이나 해장 음식으로 장어를 먹는 나라가 여럿 있으니 동서양이 모두 장어를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하다. 장어의 힘이 필요한 계절이 됐다./음식문화평론가

2013-07-24 18:56:33 안용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