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먹는 하마' 군인연금, 10년간 누적 지원금 18.2조
# 지난해 말 육군 중령으로 예편한 A씨(49)는 매달 연금으로 300만원을 지급 받는다. 최근에는 중견 무역회사 취업에도 성공했다. 덕분에 월 수입이 크게 늘었다. A씨는 "퇴직한 군인이 관공서나 일반 기업 등에 재취업하면, 연봉 1억원 이상일 경우 군인연금의 50%를 지급 받는다"며 "연봉에 따라 지급 비율이 나뉘는데, 6000만원 이상일 경우 90%, 7000만원 80%, 8000만원 70%, 9000만원 60%를 지급 받는다"고 말했다. A씨는 "재직에 따른 연봉과 퇴직 후 군인연금을 합치면 월 수입은 일반 국민연금 수령자들의 것과 비교해 상당한 수준"이라고 흡족해했다. 군인연금 지급에 필요한 돈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공무원·사학연금 개혁에 이어 군인연금 제도 개선책 마련도 시급하단 지적이다. 일각에선 오는 2030년까지 병력을 50만여 명으로 줄이는 국방개혁 실천을 위해서라도 군인연금 제도 개선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0일 기획재정부와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는 올해 군인연금 보전금으로 1조3665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배정했다. 전년 1조3431억원 대비 234억원 증가한 규모이다. 지난 2010년 1조566억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1조원을 넘긴 군인연금 국가 보전금은 2011년 1조2266억원, 2012년 1조2499억원, 2013년 1조3692억원, 2014년 1조3733억원 등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30년까지 군인연금 누적 국가 보조금 32조원 추산" 지난 1963년 공무원연금에서 분리된 군인연금은 10년 만인 1973년부터 고갈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3대 특수직역연금(공무원·사학·군인연금) 가운데 가장 먼저 혈세가 투입됐다. 기재부는 지난해까지 최근 10년 동안 군인연금 누적 지원금만 18조200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한다. 공무원연금 지원 예산(20조3857억원)에 맞먹는 규모다. 기재부는 "오는 2030년까지 군인연금 누적 국가 보조금은 3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망했다. 또 지난 2014년 회계결산 기준 군인연금 충당부채(앞으로 75년간 내줘야 할 금액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여 반영한 결과)는 119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당해 기준 총 국가부채(1211조원)의 9.8%에 이르는 수치다. 정부 관계자는 "만 60세 이상까지 정년을 보장해주는 공무원 연금과 달리 계급 정년이 있는 군인 직업의 특수성을 반영해 군인연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군인연금 제도 개선이 지연될 경우 이는 결국 국민들의 부담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군인연금 수령 인원, 오는 2050년 15만여 명 육박 지난 2014년 기준 군인연금 수령 인원은 3만9533명에 달한다. 당해 발표된 국방통계연보에 따르면 24년 복무한 중령의 퇴직 시 월 연금수령액은 300만원. 29년 복무한 대령은 330만원, 준장은 353만원, 33년 복무한 소장은 386만원, 중장 430만원, 대장 452만원 등이다. 정확한 직급별 군인연금 지급 인원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체 군인연금 지급액은 한해에만 대략 수조원에 이른다. 기재부는 "오는 2020년까지 10만5067명, 2050년까지 15만4612명으로 군인연금 수령 인원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군인연금은 복무가 시작된 해로부터 19년 6개월이 되는 시점, 약 20년 이상 근무 후 퇴직하면 바로 연금이 지급된다. 국민연금이 출생연도별로 63·64·65세 이후 지급 받는 것과 비교하면 큰 혜택이다. 예컨대 23세에 장교에 임관할 경우 43세 전역 후 바로 평균 월 300만원 이상의 연금을 지급받게 된다. 정부 관계자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복무기간을 마치고 퇴직하는 군인에 있어 연금을 지급하는 것은 국가 예산 낭비"라며 "국가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연금 수령 나이를 늦추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국가 재정 압박 심화…개혁 꼭 성공해야" 국인연금의 특권은 국민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국가 보전금 대부분이 국민 혈세로 이루어지기 때문. 지난 2013년 기준 공무원연금의 국가 보전금은 1인당 546만원이지만 군인연금은 1699만원에 이른다. 군인연금은 특혜가 중령 계급 이상의 고급장교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불공정한 면이 없지 않다. 고급 장교들은 평균(240만원)보다 많은 월 300만원 이상의 연금을 받는다. 고급장교의 인원은 현직 간부(장교·부사관)와 비교해 6%에 불과하지만 연금 수급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넘는다. 박기학 평화통일연구소 소장은 "고급장교는 연금 등 큰 특혜를 누리기 때문에 승진 경쟁이 과도하다"며 "병력 감축 계획으로 이 같은 경쟁 상황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고급장교 직위를 줄이기 위한 국방개혁은 결국 군 기득권 축소를 의미해 이들의 저항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군인연금은 군의 전문성을 높이고 정예군으로의 전환을 위한 과정이기에 꼭 관철되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 같은 군인연금 제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 매번 군인연금 개혁 움직임이 일때마다 정치권의 반발에 한 발자국 빼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 2014년 말 '2015년 경제정책방향'을 내놓은 정부는 "2015년 안에 군인연금을 개혁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정치권이 반발하자 하루 만에 "검토한 적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보수적인 성향의 군인들은 결집력이 강해 연금 개혁 언급이 나올 때마다 반발이 심하다"며 "내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군인연금 개혁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상 현 정부에서 군인연금 개혁을 물 건너간 것으로 관측된다"고 전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지난해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서도 정치권 내 이견 다툼이 심했지만 결과적으로 실망스러운 수준의 개혁 성과를 가져왔다"며 "군인연금 수급자들이 특수직역이라는 특수성은 인정해야 하지만 재정 건전성 악화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만큼 반드시 개혁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