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의 IT도 인문학이다] 에버노트와 포스트 잇의 동거
1990년대 후반. 하나로통신과 KT는 초고속인터넷 상품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TV만 켜면 이들 회사의 광고가 나왔고 저녁 무렵 귀가할 때면 항상 대문에는 초고속인터넷 가입을 알리는 전단지가 붙어있었다. 때마침 다음 카페, 세이클럽, 프리챌 등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유저가 급증하면서 집집마다 초고속인터넷에 가입했다. 그런데 얼마 뒤 곳곳에서 "죽겠다"는 소리가 나왔다. 동네 꽃집, 골목 슈퍼, 서점 등 흔히 볼 수 있는 가게의 매출이 뚝 떨어진 것이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대형 꽃집, 마트, 온라인서점으로 주문이 몰린 까닭이다. 2014년 4월 현재.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LTE 상품을 놓고 격전을 치르는 중이다.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TV는 이들 회사의 광고로 도배가 되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의 태반은 번호이동을 안내하는 것들이다. LTE 가입자 수가 3000만명을 넘어서자 "더 죽겠다"는 고함이 터져나온다. 골목상권은 기본이고 증권, 은행, 펀드와 같은 금융 거래는 물론 방송, 신문, 출판 심지어 회계 서비스까지 모바일에 의지하고 있다. 사람이 하던 일을 모바일이 하면서 매출이 급락하는 것은 물론 일자리마저 급속도로 줄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편하자고 만든 문명의 이기가 우리를 갉아먹는 꼴이다.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선호하는 킬러 앱 중 하나인 에버노트의 행보를 보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화해 아니 조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첨단 IT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행복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에버노트는 다국적기업 3M과 손잡고 이 회사의 히트작 '포스트 잇'을 대상으로 독특한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다. 포스트 잇을 사면 에버노트 프리미엄 이용권을 얻을 수 있다. 에버노트는 기본적으로 무료 메모 서비스지만 유료 버전인 프리미엄을 선택하면 저장공간 확대, 명함 인식 기능, 손글씨 디지털 전환과 같은 고급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필 리빈 에버노트 창업자 겸 CEO가 직원 회의를 주재했는데 직원 전원이 연필과 메모지를 들고 나타났다. 리빈은 "메모 앱 만든 회사 직원들이 종이와 연필을 쓰다니…"라며 잠깐동안 허탈해했지만 천재들에게만 떨어진다는 '뇌리를 스치는 번개'를 맞은 뒤 "습관을 바꿀 수 없다면 같이 가보자"고 결정을 했다. 현재 포스트 잇과 에버노트는 '다함께 차차차'를 열창하며 순항하고 있다. 극장주들은 모바일과 인터넷 탓에 불법 다운로드가 횡횡, 적자를 보고 있다며 한탄한다. 바꿀 수 없다면 같이 가는 건 어떨까. 극장과 동시에 상영할 수 있는 전용 앱이나 사이트를 만들고 가격 또한 저렴하게 책정한다면, 영화 제작 뒷이야기나 주연 배우 인터뷰 등을 보너스로 끼워준다면 오히려 관람객을 대폭 늘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