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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2000년 역사 속 이색 기록 남긴 교황은

초대 교황 성 베드로 이후 현재의 교황 프란치스코까지 약 2000년간 266명의 교황이 재임했다. 긴 세월 수많은 교황들이 있었기 때문에 독특한 역사를 남긴 교황들도 많다. 교황(Papa)이라는 호칭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384년부터 재임한 시리치오였다. 파파라는 칭호는 3세기부터 모든 주교에게 공통적으로 사용한 호칭이었으나 6세기부터 특별히 로마의 주교에게 사용하기 시작했고 11세기 말부터는 오직 로마의 주교만이 사용하는 것으로 국한됐다. 현재 교황은 취임 시에 자신의 교황식 이름을 결정하는 관습이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원래는 자신의 본명 혹은 세례명을 그대로 사용했다. 새 이름을 택한 최초의 교황은 6세기 즉위한 요한 2세다. 이교도의 신을 딴 메르쿠리우스(Mercur)라는 이름을 갖고 있던 그는 이 이름이 교황으로서는 부적절하다고 여겨 개명했다. 한동안은 전통대로 본명·세례명을 사용했으나 10세기 말 이름을 바꾸는 관습이 자리잡았으며 이후 세례명을 그대로 유지한 교황은 16세기 하드리아누스 6세뿐이었다. 처음으로 두 개의 이름을 겹쳐 쓴 교황은 1978년 즉위한 요한 바오로 1세다. 또 후임 교황 중 자신의 이름을 잇는 교황이 나오면 '1세'라는 표현을 덧붙이는 전통에서 벗어나 스스로 1세라는 호칭을 사용한 최초의 교황이기도 하다. 교황의 임기는 종신직이기 때문에 선종(善終·가톨릭 신앙인의 죽음)할 때까지 재임한다. 교황의 평균 재위 기간은 8년이다. 최장수 교황은 초대 베드로 교황으로 34년 재임했다. 반면 우르바노 7세는 말라리아에 걸려 즉위식도 올리지 못한 채 12일 만에 선종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나기 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 사임한 교황도 있다. 가톨릭 교회 역사상 스스로 물러난 첫 번째 교황으로 기록된 첼레스티노 5세는 자신의 뜻과 달리 교황으로 선출돼 임기 5개월 만에 사임했다. 마지막으로 사임한 교황은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로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거의 600년만에 물러난 교황으로 기록됐다.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했지만 사제에 의한 아동 성추문, 바티칸은행 비리 등 바티칸을 둘러싼 각종 의혹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편 베네딕토 9세는 유일하게 145·147·150대 총 세 차례 역임한 교황으로 남아있다. 첫번째 재임 때는 로마 시민들에 의해 쫓겨났으며 한달 뒤 후임 교황으로 선출된 실베스테르 3세를 쫓아내고 다시 교황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자신의 대부였던 그레고리오 6세에게 교황의 지위를 팔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다음해 실베스테르 3세와 서로 자신이 교황이라 우기며 그레고리오 6세를 밀어내려고 하자 1046년 독일의 왕 하인리히 3세가 수트리 공의회를 통해 세 교황을 모두 퇴위시켰다. 이후 1047년 후임 교황 클레멘스 2세가 세상을 떠나자 다시 로마로 돌아와 스스로 교황 자리에 올랐으나 1년 후 하인리히 3세에 의해 다시 쫓겨났다.

2014-08-15 17:30:35 정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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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세월호 십자가' 교황따라 로마로

'세월호 십자가'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따라 로마로 가게 됐다. 15일 오전 대전월드컵경기장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한 교황은 미사에 앞서 이날 참석한 세월호 사고 생존 학생과 유가족 등 36명 가운데 10명을 제의실 앞에서 직접 만났다. 교황은 이자리에서 노란 리본과 팔찌를 받았다. 교황은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 미사에 임했다. 교황방한위원회는 "교황께서 이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시며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셨다. 특별한 말씀은 업으셨다"고 전했다. '세월호 십자가'로 알려진 도보 순례단의 십자가는 미리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에게 전달됐다. 다만 진도 팽목항에서 받아온 바닷물은 경기장에 반입이 금지된 물품이어서 유족은 이를 교황에게 전달할 것을 취소했다. 위원회 측은 "십자가를 전달받은 유 주교가 월드컵경기장에 마련된 제의실에 미리 가져다 놓았다"며 "제의실이 협소했기 때문에 교황께서는 유가족과 제의실 앞에서 만났다"고 밝혔다. 교황이 십자가를 로마로 가져가겠다고 말해 필요한 절차는 주한 교황대사관에서 담당할 것이라고 위원회 측은 덧붙였다. 한편 이에 앞서 지난달 8일 안산 단원고 학생인 고 이승현 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고 김웅기 군의 아버지 김학일 씨 등으로 이뤄진 도보 순례단은 세월호 사고의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십자가를 멘 채 단원고를 출발했다. 순례단은 지난 13일 대전에 도착했다.

2014-08-15 17:09:27 김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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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가장 작은 독립국 바티칸과 교황청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 '바티칸 시국'은 로마의 주교, 즉 교황이 통치하는 신권 국가로 가톨릭교회의 상징이자 중심지이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 시내에 위치해 있으며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내륙국이자 독립 도시국가다. 바티칸 언덕과 언덕 북쪽의 바티칸 평원을 포함하며 0.44㎢의 면적의 아주 작은 나라다. 경복궁의 면적이 0.43㎢인 것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인구도 아주 적다. 2008년 기준 80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바티칸 시국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가톨릭교회의 성직자나 수도자다. 1929년 라테란 조약으로 주권을 인정받으며 건국됐고 이전에는 로마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반도 중부를 넓게 차지하고 있었으나 영토 대부분이 이탈리아로 합병되며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됐다. 작지만 사실상 공식적인 나라로 인정받고 있으며 국제연합에서는 옵서버 국으로 활동 중이다. 독자적인 은행·화폐는 물론이며 군대에 해당하는 스위스 근위대와 치안을 담당하는 국가헌병대 등을 보유하고 있다.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이자 정부 수뇌자는 바로 교황이다. 교황직은 선거에 의한 비(非) 세습형 군주제도로 콘클라베에서 여든 살 이하의 추기경들이 선출한다. 법적으로 교황은 절대 군주에 해당하며 바티칸 시국의 입법권·행정권·사법권 전체를 행사한다. 교황의 휘하에서 바티칸 시국을 관리하는 것은 바티칸 시국 주교회의 의장으로 공식 칭호는 바티칸 시국의 장관 겸 행정처장이다.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일하고 있는 바티칸 시국 주교회의 의장은 이탈리아 대주교인 주세페 베르텔로이다. 최근 교황청은 국제 관계에서 자신들을 가리키는 공식 명칭으로 세속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바티칸 시국보다는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성좌를 사용하고 있다. 성좌란 로마의 주교좌, 즉 성 베드로가 앉았다고 전해지는 의자를 뜻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좀 더 추상적인 의미로 교황과 교황청을 구성하는 각 행정기관을 모두 아울러 가리키는 고유 명칭으로 사용된다. 바티칸 시국이라는 표현이 좀 더 실체적인 의미를 갖는다면 성좌는 교황의 영적인 지배권을 뜻하는 말이다. 로마 교황청은 바티칸 시국의 행정기관이며 교황과 함께 로마 가톨릭교회 전체를 통솔하는 중앙통제기구다. 서구식 통치 형태를 갖춘 나라들의 정부보다 다소 느슨하지만 비교적 비슷한 형태의 기구로 이루어져 있다. ▲국무부와 외무부로서 기능하는 '국무성성' ▲사법권을 가진 중앙 행정 기관 '심의회' ▲사법기관인 '3법원' ▲교황청의 진흥 기관으로 평신도들의 신자 생활 전반에 관한 사안들을 관할하는 '12평의회' ▲예결산심의·교황청 재산 관리 등을 담당하는 특수 업무 기관 '3사무처' 등으로 구성돼 있다.

2014-08-15 17:00:25 정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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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교황 '노란리본' 달고 미사 집전…세월호 유가족 위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노란 리본을 달고 '성모승천대축일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미사 직전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 학생을 10여 분간 만나 위로했다. 유가족은 이자리에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 달라는 뜻으로 교황에게 노란 리본을 선물했다. 교황은 면담 이후 진행된 미사에 유가족이 준 노란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 나왔다. 세월호 대책위원회 김병권 위원장은 이날 미사 뒤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 학생 36명이 오늘 미사에 참석했고 이 중 10명이 교황님을 기다리고 있다가 미사 직전 제의실에서 만났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이 치유되도록 특별법 제정에 정부와 의회가 나설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씀드렸고 단식 중인 세월호 희생 학생의 아버지를 광화문 미사 때 안아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안산에서 대전까지 십자가를 메고 걸어온 희생자 아버지 김학일 씨도 "제의실에 300명의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십자가와 함께 있다"면서 "억울하게 죽은 영혼과 함께 미사를 집전해 달라"고 교황에게 부탁했다. 유가족 측은 교황에게 안산 단원고 학생과 교사, 유가족의 사진이 든 앨범과 함께 영문 편지를 전달했다.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2명도 영어와 스페인어로 쓴 편지를 전했다. 세월호 대책위 김형기 수석부위원장은 "간접적으로 우리의 뜻을 피력하긴 하지만 매우 만족스럽다"면서 "미사 때 교황님이 리본을 달고 나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2014-08-15 15:35:58 김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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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역대 교황과 한국...알렉산데르 7세부터 베네딕토 16세까지

교황의 존재가 우리 민족에게 처음 소개된 것은 1614년이다. 한역 서학서를 처음으로 도입했던 이수광(1563~1628)이 저서 '지봉유설'에서 마태오 리치가 쓴 '천주실의'를 소개하면서 "그 풍속에 군(君)을 교화황(敎化皇)이라 하고 혼인하지 않은 독신으로, 세습해 계승하지 않고 현자를 가려 세운다"고 언급했다.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와 함께한 역대 교황 우리 민족의 소식을 처음으로 접한 교황은 알렉산데르 7세(재위 1655~1667)였다. 제사 금지를 완화하고 중국 복음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예수회 선교사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1660년에 조선을 '남경교구'에 예속시켜 선교를 권장했다. 또 클레멘스 11세(재위 1700~1721) 교황은 1702년 조선 재치권을 남경에서 '북경교구'로 이양했다. 그는 1715년 제사 등 선교 지역 관습을 받아들이는 것을 금지하는 칙서를 반포해 천주교가 박해받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어 비오 7세(재위 1800~1823) 교황은 1801년 신유박해로 초토화된 조선교회 재건을 위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 말할 수 없는 괴로운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포교성성 장관으로 재임하다 즉위한 그레고리오 16세(재위 1831~1846)는 교황직에 오르자마자 조선 선교지 문제를 직접 나서서 해결했다. 그는 1831년 9월 9일 '조선대목구'를 설정하고 초대 대목구장으로 파리외방전교회 브뤼기에르 주교를 임명하는 칙서를 반포했다. 그레고리오 16세의 뒤를 이은 비오 9세(재위 1846~1878) 교황은 페레올 주교가 프랑스말로 작성하고 최양업 신부가 라틴말로 옮긴 '기해박해 순교자록'을 처음으로 접한 후 곧바로 조선 순교자 82명을 '가경자(하느님의 종)로' 선포했다. 이로써 그는 한국 교회 순교자들을 처음으로 대우한 교황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아울러 비오 10세(재위 1903~1914) 교황은 1911년 조선대목구를 서울과 대구로 나눴으며 비오 11세(재위 1922~1939) 교황은 전주지목구(1937년)를 설정, 최초로 한국인 성직자에게 자치를 맡겼다. 또 그는 평양(1927년)·연길(1928년)·광주(1937년)·춘천(1939)지목구를 설정해 한반도 지역교회의 틀을 마련했으며 1925년 7월 5일 한국 순교자 79위를 복자로 선포했다. 요한 23세(재위 1958~1963) 교황은 1962년 3월 10일 한국교회 '교계제도'를 설정했다. 한국교회는 이를 통해 선교지 교구에서 벗어나 정식 교구의 자격을 갖추게 됐고 한국교회 주교들은 교황의 대리인인 '사도의 후계자'로 교구 관할 전권을 행사하게 됐다. 더욱이 한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정식으로 초대돼 보편교회의 당면 과제에 협력하고 중대 사안을 함께 결정하는 완전한 형태의 지역교회로 인정받게 됐다.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 교황은 1968년 10월 6일 한국 순교자 24위를 복자로 선포했으며 1969년에는 김수환 대주교를 추기경에 서임, 한국교회가 교회의 최고 통치에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 복자 교황은 1984년 5월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해 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이다. 그는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시성식을 주례하며 103위 한국 순교 성인을 탄생시켰으며 1989년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때 다시 방한했다. 베네딕토 16세(재위 2005~2013) 교황은 재위 중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이산가족과 북한의 인도주의적 지원 문제 등에 꾸준한 관심을 보였으며 2009년 교황청을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북한 주민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남북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말하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2014-08-15 15:00:33 황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