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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한의 작가산책/4]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자들의 삶을 글로 그려낸 이준태 작가

[b]"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에 사회주의 열풍이 불었다. 당시의 의식이 있는 젊은이들 상당수가 사회주의자가 됐다. 그들이 사회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애국전선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b] [b]그들이 역사의 현실을 조금만 외면했다면 훨씬 편안하게 넉넉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려운 길을 택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감시를 당했고, 체포됐고, 지독한 고문을 당해야했다. 많은 애국자들이 감옥에서 죽었거나, 반신불수가 되어 출옥했다."[/b]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짧지만 이 한 문장이 주는 울림은 크다. 바다가 없이 배는 존재할 수 없고, 오토바이가 발명됐다 해도 자전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엔 인과로 연결 된 고리가 존재한다. 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는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지혜롭게 살아나갈 '단초(端初)'를 제공한다. 지난 3년 간 자료 조사를 통해 소설 '1915'를 집필한 이준태(64) 작가는 서울 서초동 인근 '책과강연' 연구실에서 필자와 만나 "당시 상당수 젊은이들은 (일제시대) 사회주의자가 됐고, 그들은 일제로부터 고문을 당하는 등 어려운 삶을 선택해야 했다"며 "그들은 충분히 역사의 현실을 외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왜 고문을 받으면서,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애국을 했어야 했는지, 저서 1915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통해 독자들에게 설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b]- 자기소개를 부탁한다.[/b] "1954년 김제에서 태어나 익산 남성고와 전북대학을 나왔다. 군입대전 까지 전북을 떠난 기억이 없다. 어린 시절 가봤던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의 가위눌림을 감당해내기가 쉽지 않았기도 했다. 스스로 촌놈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후의 삶을 얘기하면 서부전선 연평도 내에서 해병대 장교로 복무했다. 전역 후 건설회사에서 5년간 근무했고, 지금 삶의 터전인 전남 광양에서 사업을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은 사업을 정리하고 글을 쓰는데 매진하고 있다." [b]- 글쓰기에 매진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b] "오랫동안 일기를 썼다. 그 전엔 전혀 써보지 않았던 일기였다. 그만큼 생면부지 객지에서 생업을 영위해간다는 게 힘들었다. 그 심정을 아무도 들어줄 이 없었으니, 내 자신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다. 그뿐인가. 멀리 사는 친구들에게도 편지를 보내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들로부터 '글이 많이 좋아졌다'는 격려를 받았다. 일기와 편지를 그간 썼던 게 창작활동의 밑거름이 됐다." [b]- 펜을 들기 전 자신의 모습을 말해줄 수 있나.[/b] "먹고 살기위해 처절했었고, 그러기 위해 철저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글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 착수하기 전에는 인터넷 카페나 친구들끼리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생활수필이나 여행기 등을 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터무니없는 시도였다. 단편소설을 한 편도 써보지 않은 초보자가 장편소설에 도전한다는 것 말이다. 그럼에도 '사업을 정리하고 평생 가슴에 담고 있었던 서사를 소설로서 풀어보리라' 생각하고 장편소설에 도전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제 도전은 터무니없었다. 수필이나 여행기 정도 써본 게 전부였는데 장편소설에 도전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한 3년 정도 낑낑대니 소설의 윤곽이 나왔고, 거기에 1년을 더 가다듬자 초고가 나왔다. 그래도 내 자신이 신기했던 것은 그렇게 자학과 고통의 시간을 보냈지만 단 한 번도 포기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b]- 책을 쓰기까지의 노력, 어려운 점 등을 설명해달라. [/b] "저서의 등장하는 주인공은 집안 어른을 모델로 했다. 그 분은 일제강점기 때 중앙고보(현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나왔고, 사회주의자였으나 요절했다. 그 분의 행적을 찾는데 노력했으나 거의 남아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내 주의에는 그 시절을 증언해줄 분들도 이미 세상을 달리했다. 때문에 그 시절의 얘기를 챙겨볼 수 있던 것은 일제강점기 당시 신문이나 잡지들이 전부였다. 따라서 그렇게 자료를 수집하는데 1년이 걸렸다. 문제는 막상 자료를 다 모아놓자 그 다음 얘기를 꾸며가기가 너무 어려웠다. 마냥 붓방아만 찧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글이 되든지 안 되든지, 무조건 하루 1쪽을 써내려가자.' 그렇게 1~2년을 보냈다. 시간이 흐르니 900쪽이 넘는 소설이 나왔다. 그렇게 만들어진 초고를 다듬고 다듬어서 지금의 1915가 나오게 됐다." [b]- 저서의 제목에 담긴 뜻이 궁금하다.[/b] "정확하지는 않지만 주인공을 1915년 태생으로 잡고 이 소설을 구상했다. 1915년이라면 일제의 강제 징용과 학병에 끌려가지 않을 나이였다. 우리나라 근대 역사상 거물 중에 1915년생을 들자면 시인 서정주와 정주영이 있다. 주인공이 사회주의를 택하지 않았다면 해방 후의 정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을 것이다. 그는 일제의 지독한 고문에 얼이 빠져 해방이 된지도 몰랐고, 그해 겨울에 죽었다. 아름다운 젊은이였지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인 아픔을 제목은 담고 있다." [b]- 곧 출간될 저서 1915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b] "자랑스러웠던 할아버지들의 얘기를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해방 후 친일세력들이 대한민국의 주류가 됐고, 그들의 논리에 의해서 정의·역사가 농단됐다. 우리는 아직도 사회주의하면 빨갱이라는 도식이 머릿속에 주입이 되곤 한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한쪽에서는 사회주의가 꽃 피우고 있다. 전 국민이 의료혜택을 받고 있으며, 노인들은 노인 연금을 받고 있고, 수십조의 재산을 가진 기업총수와 현장 노동자들이 같이 앉아서 대등하게 임금협상을 하고 있다. 인류에 있어서 어떤 제도도, 어떤 법률도 완전한 적은 없었다. 인류는 끊임없이 그 시대의 여건에 맞게 개선해왔고, 조정해왔다. 자본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의 흙먼지에 사라져갔던 선조들의 정의로웠던 삶, 아름다웠던 삶을 통해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제 좌우이념을 떠나서 역사를 바로 봐야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절대로 3대 세습 왕조인 김정은의 북한은 사회주의국가가 아니다. 어느 경우에도 그 누구에게도 종북이라는 말은 삼갔으면 한다." [b]- 소설의 큰 주제가 사회주의인 것 같다.[/b] "성장기를 떠올려보면 끊임없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살았다. 할머니나 외할머니도 저를 사랑하지 않았다. 제 아버지가 빨갱이였기 때문이다. 특히 외갓집에 가면 저는 눈치꾸러기였다. 외할아버지가 우익인사로 6·25남북전쟁 때 학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어릴 땐 가장 위대하고 뛰어난 어른으로 생각했던 내 아버지가 어느 순간부터 무능력자, 얼치기 사회주의자가 됐다. 그래선지 청소년기에 아버지 삶에 노골적으로 반항을 많이 했다. 아버지는 그때 가슴이 많이 아팠을 것이다. 나는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제 불효에 대한 반성과 아버지 삶에 대한 변명 정도로 생각하고 오래전부터 그려보고자 했던 게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자들의 삶이었다. 그리고 소설의 모델이 된 분은 우리 아버지의 사촌형이다. 우리집안을 빨갛게 물들인 장본인.(웃음)" [b]- 향후 계획이 있다면.[/b] "후속 작품으로 해방 후 좌우가 격돌하는 시대상황에서 한 집안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을 그려보고 싶다. 형제가 각자 다른 길을 걷다. 형은 남로당원이 됐고, 동생은 국군의 장교가 됐다. 갈등과 반목이 있었지만 어떤 상황이 주어졌어도 서로를 원망하고 적대시하지 않았다. 해방 후 6·25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1915'와 엮어서 대하소설로 만들어보고 싶다." [b]이준태 작가는...[/b] 1954년생 전북상과대학 경영학과 학사-해병대 장교 복무-25년 자회사 경영 2019. 12. 저서 '1915' 출간

2019-12-13 17:04:17 우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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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기적의 신화와 값비싼 교훈

[신세철의 쉬운 경제] 기적의 신화와 값비싼 교훈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어패럴 제품 판매로 시작하여 30여년 만에 계열사 41개, 해외법인 396개에다가 임직원만 30만 명이 넘게 성장하는 기적(奇蹟)을 대우는 세웠다. 수출주도성장국가인 한국에서 대우의 수출액은 1998년 전체 수출의 14%를 차지하는 신화(神話)를 기록했다. 게다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이 세상 어디를 가도 널려 있는 돈이 보인다."고 하니 무수한 청년들이 외경심을 가졌다. 압축성장, 수출지원 시대를 숨 가쁘게 달리다보니 대우그룹은 어느 덧 41조원의 분식회계에다가 약 91조원의 부채를 짊어진 채 좌초하였다. 유수 금융기관과 수많은 대우채 소유자들에게 깊고 붉은 상처를 냈다. 혹자는 대우그룹 도산은 김대중 정부와의 갈등이 원인이라고 추측하지만, 기본적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기술개발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승자독식 경향이 강해져가는 상황에서, 대우는 음식료품을 제외하곤 거의 산업전분야에 진입했지만, 1위 기술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금융억압(financial repression) 상황에서 사실상 공짜인 초저금리 구제금융을 많이 받을수록 땀 흘려 연구개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쉽게 거부가 되는 길이 있었으니 구태여 불확실성이 있는 기술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가? 과거 시중실세 금리가 10~15%인 상황에서 0.5~2%로 특별금융, 구제금융을 받아 기업을 인수·합병하면 순식간에 떼돈을 벌고 싶지 않아도 벌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당시 구제금융은 기업에 대한 정부(사실은 납세자가 부담하는)의 보조금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기적 아닌 기적'과 '신화 아닌 신화'가 가능했었다? 그러다가 금리자유화로 돈의 가격인 이자비용을 시장실세 금리로 지불하게 되면서 그룹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경제가 모라토리움 위기에 처하자 IMF는 구조조정의 방안으로 무지막지한 고금리 정책을 권유하려 시장금리가 20%를 넘어섰다. 부채로 문어발 확장을 한 선단경영(船團經營) 기업들의 목줄을 죄어 간 셈이었다. 그런데도 신용경색 상황이 벌어져 일반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는 소화되지 않고 4대 그룹만이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게 되면서 대우그룹은 회사채를 한도대로 발행하여 부채 규모는 더 크게 불어났다. 대우그룹은 자산규모가 외환위기 이전 5위권 내외에서 아시아 외환금융위기가 진행되면서 2위로 올라섰다. 물이 새고 배가 기우러지는데, 짐을 빨리 줄여 배를 가볍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짐을 더 실어 더 무겁게 한 셈이었다. 초고금리 상황에서도 큰 기업은 망하게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 프레임을 신봉하고 외형 확장에 주력했던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까?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고 하지만 기회를 잡으려면 먼저 살아남아야 했었다. 정경유착으로 무섭게 몸집이 불어난 대우그룹의 부실이 심화되어가는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계자들은 외면하고 있다가 상황을 악화시켰다. 생각건대,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대형부도사태는 시장실패보다는 정부실패가 더 크게 작용하였다고 판단한다. 만약 당시 정부가 부채가 쌓여가는 큰 대우그룹의 동향을 관찰하고 신속하게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하였더라면 부채 규모는 그렇게까지 크게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외환금융위기로 황당하게 퇴직당하고 퇴직위로금으로 고금리 대우채를 샀다가 날벼락을 맞은 황퇴자(荒退子)들의 시름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었을 것이다. 기적은 현실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기이한 사건이다. 신화는 신비스러운 불가사의로 이 세상 일이 아니다. "경제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고 하는데 부가가치창출 능력이 취약한 상황에서 정경유착에 의존하거나 비정상 금융기법으로 그 신화를 이루었으니 최악의 사태 돌발은 예상된 일이었다. 대우사태는 기업경영은 물론 국가경영에 값비싼 교훈을 주고 있다. 폴 크루그만은 "과거의 위기 사례가 배우지 못하는 교훈(unlearnt lesson)으로 버려진다면 위기는 다시 반복된다."고 하였다. 그 미증유의 불상사가 다시는 이 땅에서 재현되지 말아야 한다. [b]주요저서[/b]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19-12-13 14:21:31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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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52>또 한 번의 그레이트 빈티지…佛 보르도 2016

와인애호가들에게 즐거운 해가 이어지고 있다. 대표선수인 프랑스 보르도 와인이 2015년에 이어 2016년도 역대급이라는 '그레이트 빈티지'로 평가되면서다. 와인에서 빈티지(vintage)란 포도를 수확한 해를 말한다. 프랑스 보르도는 매년 온화한 기후가 이어지는 미국 캘리포니아나 호주 등과 달리 해마다 포도재배 품질에 편차가 날 수밖에 없고, 와인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도 빈티지가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여겨진다. 올해도 보르도 그랑 크뤼 연합(UGCB)이 주최하고 소펙사 코리아가 주관하는 '2019 보르도 그랑 크뤼 전문인 시음회'가 열렸다. 보르도 72개 샤또의 2016 빈티지가 한국에 첫 선을 보이는 자리다. '그랑 크뤼(Grand Cru)'는 프랑스어로 뛰어난 포도밭을 뜻한다. 매우 우수한 품질의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나 포도밭에 부여되는 명칭으로 지난 1855년 프랑스 황제였던 나폴레옹 3세가 파리만국박람회를 개최할 때 출품할 와인을 선정하면서 처음 정해졌다. 1973년 설립된 보르도 그랑 크뤼 연합은 134개의 최고 샤또들로 구성돼 있다. 매년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시음행사를 열고 와인 애호가들과 회원 샤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4년 첫 개최를 시작으로 올해 16회를 맞았다. 국내 와인애호가들에게는 연말에 절대 놓칠 수 없는 와인행사 중 하나다. 2016년은 초반에는 비가 쏟아졌고, 후반기엔 건조했다. 우기에서 건기로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론 균형잡힌 빈티지가 만들어졌다. 무더위 없이 건조하고 따뜻한 낮과 선선한 밤으로 2016 빈티지 와인은 묵직하면서도 풍부한 과실향을 그득히 품게 됐다. 특히 보르도 특급 샤또들의 경우 21세기 들어 최고라는 2015 빈티지마저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시음회에는 로낭 라보르드 UGCB 신임 회장을 비롯해 보르도 현지 그랑 크뤼 샤또의 대표들과 양조 책임자들이 대거 방한했다. 쌩떼밀리옹 그랑크뤼와 뽀르롤, 마르고, 뽀이약, 쏘테른까지 주요 13개 원산지에 속하는 최고 와인들이 한 공간에 펼쳐졌다. 올해 와인스펙테이터(WS)의 선택도 보르도 2016 빈티지였다. 와인 스펙테이터가 꼽은 최고의 와인 1위는 '샤또 레오빌 바르똥(Chateau Leoville Barton) 2016'이다. 샤또 레오빌 바르똥은 보르도를 대표하는 곳 중 하나로 그랑 크뤼 2등급이다. 포도밭은 생줄리앙 북쪽에 위치해 있다. 남쪽 언덕을 마주하고 고도가 좀 더 높아서 전통적으로 검은 과실의 느낌이 풍부한 와인을 만들었다. 2016 빈티지는 카버네 소비뇽 86%에 나머지는 메를로를 섞었다. 샤또 레오빌 바르똥의 1위가 더 반가운 것은 그랑 크뤼 와인치고는 많이 비싸지 않다는 점이다. 다른 그랑 크뤼 대표 와인들이 몇 십만원을 호가하는 반면 샤또 레오빌 바르똥 2016은 87달러에 시장에 풀렸다. 보르도 2016 빈티지 가운데서는 '샤또 삐숑 바롱 2016'이 8위에 이름을 올렸다. 샤또 삐숑 바롱 역시 보르도 그랑 크뤼 2등급이다. AXA 밀레짐이 인수한 뒤 모든 양조시설을 현대화하고, 양조기법도 현대적으로 도입했다. 2016 빈티지는 카버네 소비뇽 85%에 메를로 15%를 섞어 만들었다.

2019-12-12 14:05:17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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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영 원장의 건강관리] 한방 다이어트

[김래영 원장의 건강관리] 한방 다이어트 각종 모임과 회식이 잦아지는 겨울철엔 음식 섭취량은 늘고 활동량은 감소해 살이 찌는 체질로 변하기 쉽다. 또 두꺼워진 옷차림에 살이 쪄도 '옷으로 가리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 팔뚝이나 아랫배, 허벅지, 엉덩이, 옆구리 등에 군살이 붙기 쉬운데 정말 살을 빼고 싶다면 겨울철에 다이어트를 할 것을 권장한다. 추운 겨울철에는 우리 몸이 체온 유지를 위해 스스로 체지방을 태워 여름보다 기초대사량이 약 10%가량 증가하기 때문이다. 단, 고도비만 환자나 평균 체중보다 10∼20㎏ 이상 나가는 과체중인 경우 다이어트에 성공하더라도 요요현상이 올 확률이 높고, 요요현상으로 인해 원래 체중보다 더 증가할 우려가 있어 처음부터 전문의의 처방을 받아 안전하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살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한방치료 가운데 건강과 미용을 목적으로 한 '한방 다이어트'는 개개인의 체질, 체형, 영양상태, 근육량, 체지방량, 기초대사량 등을 고려한 맞춤형 다이어트 프로그램이다. 간혹 다이어트 한약 복용 후 가슴 두근거림, 입마름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는 한약 속에 함유되어있는 마황의 작용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마황은 사용해서는 안 되는 한약재인 것처럼 잘못된 정보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인식이며 한의사의 정확한 진단에 따라 마황을 복용하는 것은 안전하며 비만치료에도 효과적이다. 중국 북부와 몽골 등지에 분포하는 상록관목인 마황은 뿌리는 지한작용을 하고, 지상부는 발한작용을 한다. 대개 마황이라 하면 지상부 줄기 부분을 말하며, 발한작용과 선폐작용을 하여 감기나 천식, 기침과 같은 호흡기 질환이나 부종 등 비만 치료에 주로 처방된다. 특히 닫혀있는 땀구멍을 열어 몸의 한기를 물리치고 가라앉는 기운을 밖으로 발산하는 발한작용을 하고, 열이 많이 나는 사람의 경우 체온을 내려주고 식욕을 조절해주며, 잦은 기침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다만 너무 많은 양을 사용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도 있을 수 있으니 반드시 한의사의 진료 하에 처방받아 복용해야 한다. 참고로 현재 대한 한방비만학회에서는 마황 내복약의 경우 하루 8~16g의 사용이 일반적이며 비교적 위급 증의 경우 24g까지 무난하다고 권고한다. 미국 FDA의 에페드린 하루 허용치가 150㎎ 인데 마황 24g의 경우 에페드린 수치가 126㎎ 정도에 해당한다. 또한, 최근 한약도 다양한 제형들이 개발되어 탕약, 연조엑스제(물엿 같은 상태의 엑스제), 환제로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출산 후 다이어트를 고려하고 있다면 수유하면서도 복용할 수 있는 한약재들이 있으니 전문한의사와의 충분한 상담을 통해 개개인의 체질에 맞게 처방받으면 된다. /압구정 대자인 한의원 원장

2019-12-12 13:41:22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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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신경증

신경증이란 용어는 한권의 책으로 정리될 정도로 매우 광범위하면서 흔하게 사용되는 용어이다. 일반적인 정신과 혹은 상담 장면에서도 가장 흔하게 만나게 되는 정신과적 증상이며 전문적인 진단용어이기도 하다. 정신의학적으론 신경증은 '급성 혹은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스트레스에 대한 정서적 반응'으로 궁극적으로 그 스트레스를 해결하는데 부적절한 감정이나 행동으로 나타나는 증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직 까지도 신경증이란 용어는 정신과 의사에 따라 상이하게 사용되다 보니 대부분의 독자들이 신경증에 대해 알고 있는 듯 하지만 무엇인지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을 못하는 이유도 용어의 미묘함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신병과 반대의 의미로 사용된다. 현실감각이 심각하게 손상되면 정신병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신경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신경증이란 용어를 무의식적 갈등의 존재를 의미하는 정신역동적인 문제로도 이해하였다가 진단편람에서 폐기되기도 하였다. 신경증이란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784년 컬렌(Cullen)이란 의사에 의해서인데 이때는 감각과 운동의 초자연적 질병을 기술하기 위해 영어에 처음 도입되었다고 한다. 이는 특정 장기에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신경계 전체 또는 감각과 운동이 종속되어 있는 신체계통의 질병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어떤 사람이 신경에 문제가 있다면 어디로 데려가야 할까? 아마 신경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미치지는 않아서 현실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데 불안하고 우울하고 힘들어하고 자살을 생각한다면 어디로 데리고 갈 것인가? 아마 정신과일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는 신경의 문제와 신경증적인 문제의 구분은 초기에는 구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미치지 않았는데 그리고 실제로도 신경에는 큰 문제가 없는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일반인들의 용어는 '신경에 문제가 있어'였던 것이다. 그래서 1940년대 정신분석이 나오기 전까지는 의사들도 정신병이든 신경증이든 모두 다 본질상 '신경에 의한 것'이라는 일종의 허구에 동조하였고 특히 당시의 정신과 의사들은 매우 열성적으로 이러한 시선에 동조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사실 좀 단순하지만 흥미 진지하다. 정신의학이 현대처럼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에 정신병을 전문적으로 치료-사실 감금에 좀 가까운-하는 정신과 의사라고 상상해 보라.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교수로 남고 싶지만 개업을 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처한 입장은 열자라는 중국 고전 중 한 부분에 나오는 내용과 일치한다. 용을 잡는 무술을 10년 동안 훈련한 무술의 고수와 같은 것이다. 공부를 마치고 그래서 스승으로부터 떠밀리다 시피해서 하산했다. 자 당신이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렇다. 용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그렇다. 용이 없었던 것이다. 이럴 때 누군가가 어디서 용이 되기 전의 이무기란 놈을 봤다고 하고 그것을 잡아 줄 수 있는지 한다면 어떨 것인가? 그것이 지렁이라고 하여도 아마 용이 되려는 이무기라고 우기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와 동의되는 공모를 통해 도시의 신경-전문의사, 전기치료사, 신경정신과 의사로 불리면서 사회적 지위와 높은 수입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왜 신경정신과였다가 신경과, 정신과였다가 다시 신경정신과였다가 하면서 한 여자랑 결혼과 이혼을 되풀이 하는 것 같은 상황이 정신의학에서 일어났는지 감이 올 것이다. 현재는 완전히 다른 여성과 재혼해서 정신건강 의학과 의원이 되었지만 말이다.

2019-12-11 14:54:30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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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한해의 끝자락, 되돌아본 1년

2019년이 저물고 있다. 행복인지 절망의 연장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린 어떻게든 살아남아 다사다난했던 한해의 끝을 지켜보고 있다. 잊으면 잊힐 듯싶어 기록하고 있다. 미술계는 어땠을까. 이곳 역시 분주했다. 올해도 아트페어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화랑미술제(2월)를 시작으로 아트부산(5월), 한국국제아트페어(9월), 부산국제아트페어(12월)에 이르기까지 70여개에 달하는 장터가 쉴 새 없이 열렸다. 여기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작가미술장터'까지 가세하면서 미술판은 그야말로 '장사판'을 방불케 했다. 허나 그림 팔아 생활이 크게 나아졌다는 작가는 보이지 않았다. 세금까지 써가며 작가들이 직접 미술품을 판매하도록 했지만, 시장질서만 교란시켰을 뿐 대부분의 미술인들이 겪는 생활고는 변한 게 없다. 다행히 한편에선 예술가들의 창작환경 개선과 민생고 해결을 위한 시도가 이뤄졌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소득이 불안정한 예술인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금융지원사업인 '예술인생활안정자금대출' 시범사업을 지난 6월부터 시행했다. 내년엔 올해 대비 지원 대상 및 예산이 대폭 늘어난다. 돈을 뿌리는 게 반드시 정답은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자립 환경에는 도움이 될 전망이다. 작가들을 향한 지원이 다양해진 반면 전시기획자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 오히려 광주·부산비엔날레 등 주요 국제행사에서 한국 기획자들의 비중은 제로에 가까워졌다. 원고료 몇 푼에 기대어 살아가는 평론가들의 형편도 개선되지 못했다. 인건비는커녕 제 돈 쓰지 않으면 다행인 독립기획자들과 무대가 없는 30~40대 젊은 비평가들, 나이 지긋한 전업비평가들은 '소속' 없는 백수에 불과한 현실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영민하게 제 살길을 찾아 자리바꿈을 거듭했다. 공석이던 국립현대미술관장에 '근대미술사가'가 코드 및 특혜 논란 끝에 지난 2월 1일 취임했으며, '그랜드슬럼'이라도 달성하려는 양 인맥과 정치력을 무기로 미술계 주요 요직을 떠도는 철새들의 날갯짓도 일 년 내내 이어졌다. 물론 언제나처럼 실력이나 성과는 '묻지마'로 남았다. 한쪽에선 어좌에 앉아 미술계 권력이 될 때 또 다른 쪽에선 스스로를 내려놔야만 했던 비보도 있었다. 8월에 들려온 미술가그룹 '옥인콜렉티브'의 멤버 이정민, 진시우 부부작가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도 그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미술계가 전년과 비교해 더 침울하거나 덜 역동적인 건 아니었다. 2017년 3월 홍라희 관장 퇴임 이후 기획전 없이 소장품 중심의 상설전만을 하고 있는 삼성미술관 리움과 달리 국공립미술관들의 몸짓은 활기찼다. 지난해 6월 호평 속에 막을 내린 개관전 이후 연일 매진 행렬을 빚은 부산현대미술관은 '레인룸'(8월 개막)으로 또 한 번 부산 문화예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3월부터 관람객을 맞아 4개월간 37만명이 다녀간 서울시립미술관의 '데이비드 호크니' 전도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9월 시작된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기념전 '광장: 사회와 미술' 또한 2019년 후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이 밖에도 10월엔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가 격년제로 진행하는 국제미술전인 '2019 바다미술제'가 '상심의 바다'를 주제로 개막했으며, 같은 달 청주에선 공예특성화비엔날레를 표방한 청주공예비엔날레가 개최되어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공예비엔날레의 경우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이 뒤섞여 정체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예도 미래도 안 보이는 비엔날레'라는 혹평을 받았다. 특히 1차 전시감독 공모에서 탈락한 감독이 기획위원 추천을 통해 다시 감독에 선임되는 황당한 사건에 일부 기획위원들이 반발 사퇴하는 등 불공정 시비에 휘말려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기타 민중미술 계열의 전시들이 여럿 규모 있게 펼쳐졌으나 일부는 내부를 향한 침묵에 습관화된 철 지난 노스텔지어의 소환이라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11월 이후 공모를 실시한 국내 주요 레지던시들은 지원 작가들로 인산인해를 이뤄 작금의 우울한 경제상황을 반영했다. 하지만 동일한 시기 김환기의 대작 '우주(Universe 5-IV-71 #200)'가 한국작가로는 처음으로 경매에서 132억원에 낙찰되었다는 소식이 해외에서 타전되어 세밑 미술계를 훈훈하게 했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9-12-10 09:58:01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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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칼럼]프랜차이즈 M&A 성공하려면 단점 무력화 하라

[이상헌칼럼]프랜차이즈 M&A 성공하려면 단점 무력화 하라 국내 많은 기업은 비젼과 목표를 위해 차별적 전략을 도출하고 전술적 실행을 위해 막강한 조직을 구축하려 노력한다.이러한 전략적 성장을 위한 방안으로 M&A(인수·합병)는 큰 효과를 발휘한다. 특히 프랜차이즈산업에 대한 흥미와 그 성장동력은 이미 많은 기업들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거나 이에 대한 보도를 통해 새로운 신사업으로 운영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과연 프랜차이즈 사업에 진입하고 싶은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타인의 자본으로 개설한 가맹점에(사업장)대한 통제와 협치가 가능한 프랜차이즈 산업의 근본적 시스템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브랜드의 정체성과 차별성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수 있는 사업이라는 장점도 크게 한 몫하고 있다. 예컨대 신사업에 대한 투자처럼 세상에 없는것을 만들어 내는것이 아니고 기존에 있는 어느 정도 성장 잠재력을 검증한 사업을 인수 혹은 합병하는 투자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에 프랜차이즈기업이나 타 업종의 기업들이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M&A하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정의 할 수 있다. 첫 번째, M&A로 경영적 효율성을 상승 시킬 수 있는가? 기존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기업이나 타 업종의 기업이 모두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신사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M&A를 실행하면 다양한 시너지가 발생할수있는 구조가 매력적이다. 보통 M&A는 두 가지의 목표적 가치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규모의 경제적(Economies of Scale) 가치상승과 범위의 경제적(Economies Scope) 가치상승이다. 규모의 경제적 가지상승 측면에서는 크게 보면 일정한 규모이상의 생산설비가 포함되어 있을 경우, 생산원가가 감소해 원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의미를 말한다. 특히 고정비가 많이 들어가는 기업일수록 규모의 경제적 가치상승 효과는 증가할 수 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대량구매를 통해 변동비를 감소할수 있으므로 그에 따라 원가 경쟁력을 증가시킬수 있는것도 장점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규모의 경제적가치 증가를 위한 대표적 방법으로 수평적 M&A를 실시한다. 시너지의 또 다른 원천은 범위의 경제적 가치상승을 꼽을 수 있다. 두 번째, M&A는 사업확대를 가져올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프랜차이즈브랜드 M&A는 신사업 투자에 비해 새로운 시장에 손쉽게 진출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는 기존사업과의 시너지뿐만이 아니라 안정적 수익의 창출을 통해 기업의 안전성과 성장을 담보할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프랜차이즈사업을 하는 회사라면 당연히 시너지의 극대화 기반의 사업성장을 의미하며 타업종의 기업이라면 새로운 시장으로의 진입을 통한 성장동력을 기대하고 M&A를 실현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신규시장에 대한 진입장벽을 넘을 수 있을까? 모든 기업이 기존의 사업확대와 새로운 동력을 위해 M&A를 통해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려 준비하고 시장조사를 한다. 특히 2019년은 그 시장의 활성화 단계로 들어갔다고 할수있을 정도로 많은 기업들이 필자에게 문의해 오고 있다. 사업이란 경쟁브랜드나 동종업체로부터 많은 견제와 도전에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신규시장에 새로운 도전보다는 기존 브랜드와 유통망을 활용하는 진입전략으로 좀더 쉬운 안정적 지위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이 프랜차이즈 M&A를 시도하는 이유다. 네 번째, 더욱 안정적 기술을 확보할 수 있을까? 현대사업은 기술력의 확보와 개발이 절대적 생존가치라 할 수 있다. 모든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개발할 순 없다. 자체적으로 개발을 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인한 비생산적 투자가 기업의 경영환경이 나빠지는 경우가 비일비재 한 사례도 작금의 기업현실이다. 그러하기에 구글이나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도 기술탑재를 위해 전략적 M&A를 통해서 경영목표를 달성했다. 프랜차이즈 M&A사업의 근본적인 선택은 기업의 성장과 신사업에 대한 투자라 할 수 있다. 당연히 투자에는 리스크라 따른다. 하지만 M&A를 통한 새로운 시장에 대한 우월적 지휘를 확보하는 방법이 훨씬 안정적 사업의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다. -'프랜차이즈 M&A전문기업' 한국창업경영연구소 이상헌 소장(컨설팅학 박사)-

2019-12-09 13:53:21 박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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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의 본초 테라피] 원기회복에 좋은 겨울철 '홍합'

[김소형의 본초 테라피] 원기회복에 좋은 겨울철 '홍합' 한방에서 '담채'라는 약재명을 가진 홍합은 신장과 간에 좋은 음식이다. 나이가 들어 신장이 약해지면 체력이 떨어지고 허리나 무릎이 아프기도 한다. 특히 홍합은 원기회복에 좋은 것으로 피로와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지쳐 있는 직장인들은 물론이고 나이가 들어 기력이 떨어질 때도 좋다. 한방에서 신장은 남녀 생식 기능과도 관련이 있다. 그래서 남성 호르몬 부족으로 약해진 남성들의 정력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 여성 호르몬에도 영향을 미쳐서 생리를 고르게 하고 자궁 출혈, 대하 증상을 다스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홍합에는 간 기능 개선에 효과적인 타우린과 베타인 성분도 풍부하다. 평소 간 기능이 약하거나 과음 등으로 간 기능이 많이 떨어진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이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의 경우 술 안주 혹은 숙취 해소 음식으로 홍합을 탕으로 끓여 먹거나 찜으로 해 먹으면 술에 덜 취하며 숙취를 빨리 해소할 수 있다. 간에 좋은 홍합은 눈 건강에도 효과적이다. 눈이 자주 피로할 때도 좋고 시력 보호와 안구 건조 예방, 다크서클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홍합에는 항산화 성분을 비롯해서 비타민, 엽산, 철분 등의 영양소가 다양하게 들어 있어서 면역력 강화에도 좋다. 아이들의 성장 발달에도 효과가 있으며 여성들의 빈혈 예방에도 좋다. 또한 홍합은 뼈를 단단하게 만들며 골다공증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피를 맑게 하고 안색을 개선하며 피부 노화 예방에도 좋다. 홍합은 해산물 중에서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영양이 풍부하다. 국물 요리 등에 사용하면 시원한 맛을 내기에도 좋아 겨울철 식재료로 자주 활용하면 맛도 영양도 얻을 수 있다. 또한 홍합의 살은 붉은 것과 흰 것이 있는데 붉은 것이 더 맛이 좋다. 신선한 홍합을 고를 때는 껍질이 깨지지 않고 윤기가 나며 비린내가 나지 않는 것으로 골라야 한다. 홍합을 껍질째 요리할 때는 껍질을 칫솔 등으로 박박 문질러서 깨끗하게 씻어내고 조리해야 한다.

2019-12-09 06:48:2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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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변호사의 노동법률 읽기]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의 주요내용

[김보라 변호사의 노동법률 읽기]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의 주요내용 2019. 1. 15. 전부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내년 1. 16.부터 시행된다. 산업재해 관리 전반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하 '개정법') 시행에 앞서, 각 사업장에서 특히 주의 깊게 살펴봐야할 개정법의 주요내용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 법의 보호대상 확대(제1조, 제2조, 제77조, 제78조) 개정법은 보호대상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확대하였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이륜자동차로 물건의 수거·배달에 종사하는 자에 대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에 관한 규정을 신설하였다. ▲ 작업중지 강화(제52조, 제55조) 근로자의 작업중지 및 긴급대피에 관한 권리를 별도로 규정하였고, 중대재해 발생시 고용노동부장관이 해당 작업, 같은 사업장 내 중대재해가 발생한 작업과 동일한 작업 등 산업재해 발생이 계속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작업중지 명령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유해한 작업의 도급금지(제58조) 유해위험성이 높아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던 도금작업, 수은·납·카드뮴의 제련·주입·가공·가열 작업, 허가물질 제조·사용 작업에 대하여 사내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였다. 다만, 일시·간헐적인 작업과 전문적 기술 활용 목적으로, 사업주의 사업 운영에 필수 불가결한 경우는 고용노동부장관의 승인을 받아 도급을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 도급인의 산업재해 예방책임 강화(제63조, 제65조) 도급계약관계에서 도급인, 수급인, 관계수급인의 정의를 신설하고, 도급인이 수급인 또는 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안전 및 보건조치 책임을 부담하는 범위를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 도급인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장소로서 도급인이 지배·관리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한 장소에서 작업하는 경우로 규정하여, 수급인 근로자의 안전 및 보건조치에 대해 책임지도록 하였다. 다만, 불법파견 등을 고려하여,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작업행동에 관한 직접적인 조치는 제외된다. 또한 특정 작업을 도급하는 도급인이 해당 작업 시작 전까지 수급인에게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정보를 미제공시 수급인은 해당 도급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있고, 이 경우 수급인의 계약의 이행 지체에 따른 책임은 면책된다. 아울러 도급인은 수급인이 제공받은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정보에 따라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였는지를 확인할 의무를 진다. ▲ 건설업 산업재해 예방책임 강화(제67조, 제76조, 제82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설공사발주자는 건설공사 계획단계에서 안전보건대장을 작성해야하고, 설계, 시공 단계별로 안전보건대장 이행 여부 확인 등 산업재해 예방 조치를 해야 한다. 건설공사의 도급인은 타워크레인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계·기구 등이 설치·해체·작동되는 경우에 필요한 안전·보건 조치를 해야 하고, 타워크레인의 설치·해체에 대해서는 등록제를 도입하였다. ▲ 근로자 사망시 사업주 처벌 강화(제167조)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불이행하여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현행법과 같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나, 형이 확정된 후 5년 내 동일한 죄를 범한 경우에는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하도록 규정을 신설하였다.

2019-12-08 14:40:47 손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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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한의 작가산책/3] 비정규직에 흔들리던 '삶', 글로 치유 받은 방송인 남희령 작가

[b][b]"처음 시작은 흔들리는 인생에 대한 위로를 건네고 싶어서였다. 결국 내가 흔들렸던 순간에 대한 고백부터 해야 했다. 콤플렉스로 얼룩졌던 유년 시절의 기억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방송작가로서의 불안감, 그리고 나의 가장 아픈 부분인 결혼생활에 대한 얘기까지도….[/b] [b]글을 쓰면서 상당 부분 위로받고 치유 받았다. 살면서 이렇게 내 이야기를 쏟아낸 적이 있었던가. 흔들리는 당신을 위한 진정한 위로는 어쩌면 당신 스스로의 부끄러운 고백에 있을지도 모르겠다."[/b][/b] <출발 모닝와이드> <리얼코리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출동 6mm 현장 속으로>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VJ특공대> <추적 60분> <피플 세상속으로> <인간극장> <아침마당>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법한 대한민국 대표 프로그램에 모두 참여한 방송작가 있다. 바로 '내 인생이 흔들린다 느껴진다면'의 저자 남희령(42·여) 작가다. 서울 서초동 인근 '책과강연' 연구실에서 만난 남 작가는 "쉼 없이 달리면서도 불안했다"며 "나의 내일은 어떻게 되는 건지, 그런 잡생각이 들 때마다 오늘, 바로 지금만 생각했다"고 스스로를 22년차 비정규직이라 소개했다. 그런 남 작가는 글을 통해 불안했던 내일에 활로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의 저서 '내 인생이 흔들린다 느껴진다면'이 이를 방증한다. 남 작가는 글로써 어떻게 불안했던 내일에 변화를 준 것일까. 다음은 일문일답. [b]- 방송작가 일만으로도 바쁠 텐데 지난 7월 초 저서 '내 인생이 흔들린다 느껴진다면'을 출간했다.[/b] "따져보니 방송작가로 산지 올해로 22년 됐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정말 다양하다. 각 분야의 전문가부터 큰 병을 극복한 사람, 성공과 좌절을 통해 크게 단련된 사람들, 대통령부터 노숙자까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가 많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정작 내 자신에는 소홀하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흔들릴 때마다 나를 잡아준 것은 타인의 인생이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고 싶었다.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이런 사람도 있노라'고, 함께 '잘' 살아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b]-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했는데 방송작가의 하루가 궁금하다.[/b] "많은 사람들이 방송작가는 글만 쓰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하는 일 중에서 글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나마 나처럼 교양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를 집필하는 작가들에 한해서 글을 쓰는 비중이 높다고 보면 된다. 그 이외의 시간에는 프로그램의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다고 보면 된다. 장르별로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내 분야인 교양·다큐멘터리는 방송작가가 아이템을 찾고, 기자처럼 취재를 하고, 촬영구성안을 짜고, 촬영된 필름을 보고 편집구성안을 짜며, 담당 피디의 1차 가편이 끝나면 마지막 가편은 작가가 같이 한다. 그리고 완성된 편집본이 나오면 최종적으로 더빙원고를 쓰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시각을 다투는 일이다." [b]- 시간과의 사투 끝에 '내 인생이 흔들린다 느껴진다면'이 등장한 셈인데 저서 소개를 부탁한다.[/b] "서점에 나가보면 '위로'의 책들이 참 많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어쩌면 지금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 또한 그들의 책을 통해 위로를 받고자 했다. 하지만 뭐랄까. 진정성 있는 공감이 어려웠다.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의외로 우리의 삶은 수려한 문장만으로 위로를 받긴 힘이 든다는 것이다. 이상보단 현실이, 막연한 내일보단 지금에 맞는 글이 필요했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경험을 한 인생 선배가 들려주는 한 마디에 우린 살아갈 힘을 얻을 때가 있지 않나. 내 경험담이 그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경험과 현실에 근거한 게 이 책의 가장 강점이라 생각한다. 또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글 쓰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요구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글이란 것은 '자신의 경험이 축적되고 그 안에서 곰삭아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진정한 사랑에 빠지면 '너무 사랑해' 또는 '너무 좋아'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하지 않나. 내 책도 그렇게 나온 책이다. 일부러 책을 쓰기 위해 노력한 게 아니라 내가 방송작가로 산 22년과, 방송작가로 살기 전, 24년의 시간이 잘 익어서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b]- 저서 내 스스로를 "살아남았다" 표현한 글이 인상적이었다.[/b] "방송작가의 세계는 진입 장벽이 낮다. 공채 시험이 따로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가 방송작가를 시작할 때는 방송 3사에서 운영하는 방송 아카데미를 졸업해야 취업의 문이 열렸다. 하지만 지금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 구인구직을 올리기 때문에 방송에 관심이 있는 친구라면 쉽게 진입이 가능한 분야다. 문제는 100% 프리랜서(비정규직)라는 것이다. 게다가 방송이 끝날 때마다 시청률이라는 성적표를 받는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글만 잘 써서 되는 게 아니다. 아이템 찾기, 섭외, 취재, 구성안 짜기 등 다양한 과정에서 실력이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는 22년 중, 6개월 정도를 제외하곤 공중파 3사 인기 교양 프로그램만을 집필했다. 치열하게 살았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b]- 저서를 만들기 전 작가의 모습을 떠올려본다면.[/b] "소진되는 인생이었다. 방송작가라는 업이 실제 파급력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직업이다 보니 실제 화면에 나오는 사람, 부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숨어야하는 직업이다. 출연자를 섭외하고, 장소를 물색하고 현장의 일정들을 조율한다. 촬영 방법이나 장소가 급작스럽게 바뀌기도 한다. 그러면 항상 우리들은 '플랜B(차선책)'를 준비해야했다. 어느 날 문득 든 생각은 방송에 대한 차선책은 항상 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정작 나 자신의 플랜B는 무엇인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선지) 방송작가 직업 때문에 주변에서 책을 한 번 써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 실제로 책을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출판사의 방향과 생각이 맞지 않았다. 그 이후로 제안들을 거절하다가 어느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b]- 향후 계획이 있다면. [/b] "방송은 피드백(수정작업)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것이라면, 책은 피드백을 직접하는 느낌이다. 방송의 피드백은 양으로 승부하는 것이라면, 책은 깊이로 승부하는 느낌이랄까. 감사하게도 제 첫 저서에 너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두 번째 책을 빨리 보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두 번째 저서에는 어떤 내용을 담을지 구상 중이다. 또 얼마 전에 다큐멘터리 영화사와 계약을 했다. ( 때문에) 내년 하반기 또는 내후년 초에 개봉을 목표로 한 영화의 작가로도 일을 하고 있다. 방송작가에서 글작가, 영화작가까지 영역이 확장된 것이다. 물론 현재 진행 중인 KBS 아침마당 및 MBC 휴먼다큐-사람이 좋다 등도 훌륭하게 만들어갈 계획이다." [b]남희령 작가는...[/b] 1974년생. 동국대학교 역사교육과 학사-KBS 등 방송작가로 활동 중 2019. 7. 저서 '내 인생이 흔들린다 느껴진다면' 출간

2019-12-06 15:44:35 우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