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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10분의 기적

따르릉!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찡하게 시렸다. 스무 해 전의 자명종 시계! 시들하던 보일러가 서비스 수리를 받고 쌩쌩 돌아가던 엊그제, 자명종 소리가 뜬금없이 왜 그리 듣고 싶던지. 녀석도 새 건전지를 갈아 끼우면 멀쩡하게 돌아갈까? 나는 그런 일말의 희망을 걸고 그 잊힌 녀석을 서랍 속에서 기어이 찾아냈다. 초침은 돌아갈까? 긴 세월 녹슬어 미동조차 않을까? 과연 어떻게 전개할지, 드라마틱한 그 예측불허의 초침향방에 마음 졸여보긴 처음이었다. 소마소마했다. 새 건전지 하나를 장착할 땐 찌걱거렸다. 그게 아까부터 불안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초침이 잘도 돌아간다. 기대하지 않았던 생동!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재깍재깍! 소리도 힘차다. 알람 시간에 이르자 따르릉! 법석을 놓는 건 예전처럼 여전하다. 그런데 울대가 쉬어 잠겼다. 안쓰럽고 측은했다. 한 고개 한 고개 까닥까닥 오르내리는 초침이 힘겨워 보이기까지 한다. 숱한 고락을 함께 호흡해온 초침의 숨결. 갑자기 녀석과의 추억이 밀물져왔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녀석은 내 삼십대의 삶을 흔들어 놓았다. 아침을 여는 게 녀석의 직무라지만 소리가 너무 컸다. 새벽녘마다 팡파르를 울러댔다. 요즘처럼 밤이 길고 추운 날, 절절 끓는 방바닥에 노글노글해진 몸이 어디 쉬 일어나려 하겠는가. 그러나 어쩌겠나. 뉴스거리를 찾아 누구보다 일찍 눈을 떠야하는 게 숙명인 것을. 녀석은 내 무거운 눈꺼풀을 끌어올리고 세상을 읽게 했다. 그리곤 내일의 아침을 기약하며 재깍재깍 숨을 고른다. 참 고마운 녀석이다. 녀석은 살림 목록의 최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보물 같은 존재였다. 그 보물을 고른 건 아내였다. 믿음직한 소리 하나만 믿고 콕 집어냈다. 녀석을 상전 모시듯 안방 탁자 위에 앉혀뒀다. 듬직했다. 신기하게도 알람 소리는 매번 다르게 들렸다. 기분이 산뜻한 날엔 리드미컬했다. 톤이 높긴 해도 부드러운 음색이 묻어났다. 침울할 땐 쇠붙이 소리가 끼어든다. 소음이다. 추적거리는 비와 합창하는 날엔 처연하게 들렸다. 소리에는 삶의 감정전선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녀석의 애칭은 10분!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딱 요맘때, 아침회의가 있던 날이었다. 평소처럼 좀 여유가 있겠거니 했는데 신문사 복도 앞 벽시계는 회의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알고 보니 녀석이 10분 늦게 잠을 깨운 것이다. 어째 알람 소리가 영 시답잖게 울렸다는 생각이 퍼뜩 스치긴 했다. 건전지 약발이 흐려진 틈을 타 며칠 새 늑장을 부렸던 거다.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녀석에게 그 전말을 물어볼 수도 없지만 매일 시나브로 수초씩 갉아 먹었을 것이다. 애초에 손목시계를 차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 요즘처럼 시간을 띄워주는 스마트폰이 있었더라면 모를까. 녀석 입장에선 우리 내외는 미련 곰탱이였다. 세상을 열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1초의 가치를 허투루 보지마라고 녀석은 말하고 있었다. 10분의 시간이 갖는 삶의 보폭! 그 너비를 절감했다. 그날 이후 녀석을 10분이라고 불렀다. 내친 김에 녀석을 10분 앞질러 세상을 달려가게 했다. 깨어나는 시간이 10분 더 빨라진 것이다. 아니다. 그건 10분의 여유였다. 그 역발상이 우리 내외의 삶 패턴을 확 바꿔놓았다. 10분 앞당긴 생체 리듬의 시계. 10분 더 일찍 일어나는 눈금에 맞춰 놓으면 좋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은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다. 생활 활력소가 10분간 재충전되는 것이다. 그 가치를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일에 대한 추동력, 창의력, 열정. 능률이라는 삶의 샘물이 솟아나서다. 우리 집 거실에 걸린 둥근 벽시계는 늘 10분을 앞서 달린다. 보물 같은 자명종이 대물림해준 지혜, 기적의 10분이다.

2018-01-17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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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의 본초 테라피] 차가워진 몸을 덥히는 '쑥'

추운 겨울을 유독 잘 견디지 못하는 것이 바로 소음인들이다. 사상체질 중 소음인들은 몸이 찬 편이라 추위에 약하고 겨울철에 체력도 쉽게 떨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여름철에도 냉방 기기가 틀어져 있는 곳에서 오래 머물면 쉽게 탈이 날 정도로 차가운 것에 약하다. 소화기에도 찬 기운이 많아서 찬 음식을 먹으면 복통이나 설사 등을 할 수 있다. 이런 소음인들에게 좋은 것이 바로 쑥이다. 몸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에 쑥은 예로부터 부인과 질환에도 두루 사용되었다. 자궁에 차고 습한 기운이 많으면 생리통, 생리 불순, 불임 등으로 이어지기 쉬운데 쑥이 자궁을 따뜻하게 만들어 다양한 증상과 질환의 예방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쑥에는 시네올, 베타카로틴 같은 성분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항균, 항염, 항암 등의 효과가 있어서 면역력 관리에 도움이 된다. 점막이나 피부의 손상을 방지하기 때문에 호흡기의 염증을 개선하며 알레르기, 여드름 같은 다양한 피부 질환의 예방과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녹색 채소들은 한방에서 간 기능을 돋우는 음식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쑥도 허약한 간의 기운을 북돋우며 해독 작용을 활성화시켜준다. 그래서 술을 자주 마시는 애주가들도 간을 보호하려면 쑥을 가까이 하면 도움이 된다. 쑥에는 비타민 A, 비타민 C, 비타민 E, 엽산, 칼륨, 칼슘과 같은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해서 혈액 순환 개선에 효과가 있다. 혈관 속 노폐물 배출을 촉진하며 혈당과 혈압을 낮추며 심혈관계 질환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민감한 피부를 진정시킬 때는 말린 쑥을 우려낸 물로 세안을 해도 효과가 있으며 냉증이 있거나 생리통이 심할 때는 쑥을 우려낸 물로 족욕을 하거나 반신욕을 하면 찬 기운을 가시게 할 수 있으며 긴장과 통증을 줄여줄 수 있다. 다만 쑥은 종류가 다양한데 주로 약재나 식용으로 쓰는 것은 애엽이다. 개똥쑥이나 인진쑥은 찬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애엽과 혼동해서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2018-01-10 09: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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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행복

그날 저녁에도 빵틀 뒤집는 소리가 요란했다. 반죽 재료는 간당간당했다. 내가 사는 동네 초입에 생긴 명물 얘기다. 붕어빵 포장마차. 노점 크기부터 퍽 인상적이다. 딱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 포장을 쳤다. 어설프긴 해도 경제적인 구조다. 빵틀 수도 적어 노는 게 없다.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거둘 경제원칙이 읽힌다. 그러나 운영형태를 보면 욕심이 없어 보인다. 하루 먹고살 분량만 판다. 그 소박한 경영철학이 반죽 재료가 바닥날 무렵이면 줄을 세운다. 규모를 확장해 판매량을 늘릴 만도 한데 아주머니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다. 밀가루 반죽 통은 곧 비어졌고, 노점의 천막도 걷혔다. 아주머니의 얼굴에 행복감이 묻어났다. 길모퉁이에 덩그러니 홀로 남은 포장마차. 겉포장은 아주머니의 옷처럼 무척 낡아 너덜거렸다. 그 수수한 모습들을 보는 순간, 불현듯 사람들이 말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붕어빵 포장마차는 풍성한 행복을 만드는 공장이었던 거다. 갓 구워낸 붕어빵은 따스했다. 봉지에 든 붕어빵은 허연 김을 퍼 올렸다. 붕어빵의 그 온기가 식을세라 봉지를 품안에 넣고 동동걸음을 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세상을 떠난 내 아버지가 그랬다. 그땐 동그랗게 생긴 풀빵이었다. 탱글탱글했다. 바삭거렸고, 팥소가 쏟아지며 김이 모락거렸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따스함을 가족들이 온전히 맛보게 해주고 싶어 아버지는 얼마나 종종걸음을 했던 걸까. 그런 장면이 애달파서 나도 붕어빵을 품는지도 모른다. 꼭 요맘때 붕어빵을 먹으면 이런 향수가, 뜨거운 정과 감동이, 어떤 위안이 가슴으로 차오른다. 붕어빵의 행복! 천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서너 개의 소담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게 과연 얼마나 될까.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큰 부피의 행복을 누리게 해주는 풍경들이 여기저기서 펼쳐진다. 붕어빵을 한 입 깨물며 얼굴이 환해지는 동네 꼬마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떠올리며 한 봉지씩 사들고 품에 넣고 가는 사람들. 덤으로 한 개 더 얹어주는 정겨움. 작고 소소한 것에서 느끼는 행복! 붕어빵 한 개의 행복이 이렇게 일상의 삶을 연소시킬 새롭고 산뜻한 힘을 주고 있었다. 춥고 마음이 스산할 땐 그런 풍경 속으로 풍덩 빠지고 싶은 까닭이다. 붕어빵 포장마차를 만나면 발걸음이 먼저 알고 그곳으로 재촉한다. 행복을 어찌 수치로 잴 수 있을까. 붕어빵은 그러나 관념으로 서성거리는 행복을 구체적인 온도로 전해주고 있었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일 것이다. 거기에는 일상을 다독여주는 맑은 영혼들이 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소소한 것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우리 주변에 많다. 멀리 있는 것도, 큰 비용을 들여야 하는 것도, 그렇다고 거창한 것도 아니다. 시야를 넓히면 공짜도 널렸다. 절정으로 달려가는 이 겨울, 산과 강, 들판을 덮은 흰 눈을 보라. 그 설경을 보고 느낌을 받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것이 전해주는 행복의 부피만큼 절감했는지? 영혼이 없는 허상만 본 건 아닌지? 낱개로 300원에 불과한 그 소소한 붕어빵 한 개가 그렇게 물어오는 것만 같다. 산과 강은 계절별 옷을 갈아입고 나와 세상을 즐겁게 한다. 비, 바람, 눈, 물안개 같은 날씨는 이런 풍경을 아름답게 색을 입히는 질료들이다. 혹자는 자연에서 행복을 얻으려면 그 풍경 속 주인공이 되라고 했더랬다. 주변인의 공짜 눈으로 흘리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담아 행복을 느끼라는 주문일 것이다. 여기엔 대전제 하나가 있다. 그것들의 노고에 늘 감사하라는 것. 소소해서 주변 이웃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행복이 있는지? 되짚게 하는 붕어빵이다.

2018-01-10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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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훈·박소현 썸 기류, 네티즌 반응은? "옐키 난리날텐데"

강성훈·박소현 썸 기류, 네티즌 반응은? "옐키 난리날텐데" 강성훈이 박소현을 향해 깜짝 고백을 날려 네티즌들이 깜짝 놀랐다. 9일 오후 8시 30분 방송 예정인 '비디오스타' '내친소 특집! 인맥 탕진잼~탕진잼~'편에서는 MC들과의 절친 케미를 보여줄 남.사.친 강성훈, 윤정수, 강균성, 한재석이 출연한다. 이 네 명의 게스트들은 역대급 폭로전과 환상의 호흡으로 시청자들을 재미있게 할 예정이다. 특히 강성훈이 박소현에 핑크빛 사랑 고백을 해 스튜디오를 발칵 뒤짚었다고. 박소현과 23년 지기 절친인 젝키 강성훈은 방송 녹화에서 "데뷔 시절, 박소현을 여자로 좋아했었다"면서 "라디오에서 박소현 목소리만 들려도 그리웠다"라며 솔직한 속내를 토로했다. 심지어, 지금도 '박소현이 고백하면 받아들일 마음이 100%다'라는 폭탄 발언해 주변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네티즌들도 놀라긴 마찬가지다. 네티즌들은 "강성훈씨 기대합니다. 박소현씨 좋아한다고 하면 옐키(젝스키스 팬클럽)들이 난리날텐데...설마", "소현누나 얼렁 시집갔으면 좋겠다", "화이팅"이라고 전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박소현이 고백할 가능성 0퍼", "방송용 멘트"라며 무미건조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2018-01-09 11:08:13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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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 1인시위 "믿어주는 후배 보고 용기 얻어.." 주장은?

한 여경이 경남지역 한 경찰서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지난 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오전 A 경위는 2시간가량 경남지역 한 경찰서 앞에서 조직 내 성범죄, 부당한 갑질 타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주장에 따르면 A 경위는 지난해 4월 당시 같은 지구대에서 근무하던 후배 여경으로부터 '함께 순찰차를 타고 근무를 하던 B경사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성 관련 농담 등 성희롱을 당했다'는 상담 요청을 받았다. 이에 A 경위는 후배에게 경찰서 성희롱고충상담원과 상담을 하라고 조언했다. 곧 경찰은 감찰에 착수해 B경사에게 감봉 1개월 징계를 내리고 다른 지역으로 전보 조처했다. 하지만 불똥은 A 경위에게 튀었다. A 경위가 조직 내에서 B경사를 음해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A 경위는 "당시 사건 후 지구대장을 비롯해 조직원들이 저를 (내부고발자 취급해) 따돌렸다"며 "내가 제보자라는 소문이 다 퍼지고 음해성 소문이 떠돌았음에도 조직에서는 별다른 조처가 없이 지구대장이 오히려 저의 약점을 잡아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A 경위는 이 사건 후로 각종 음해성 소문과 억울함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고 결국 1인 시위에 나서게 됐다. 그는 "1인 시위를 결정하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했으나 나를 믿어주는 후배들을 보고 용기를 얻어 다시는 나 같은 피해자가 없도록 나섰다"고 밝혔다. 한편 A 경위는 진상조사를 통해 자신의 명예가 회복될 때까지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다.

2018-01-09 10:39:10 신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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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뚝배기

첫 해가 불쑥 떠올랐다. 나는 새해가 되면 운동회의 달리기를 상상하곤 한다. 하얗게 줄친 출발선에 발을 굳게 내디뎠던 그 맹랑한 모습을. 새로운 시간과 스치는 시간과의 맞바람 속에서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헐렁한 운동화의 끈을 꼭꼭 동여매며 얼마나 두근거렸던가. 눈빛은 또랑또랑 빛났다. 전력 질주할 태세였다. 목표 지점은 가마득했지만, 마음은 벌써 결승 테이프에 달려가 있었다. 심호흡을 했다. 그러다 출발 신호가 메아리치면 젖 먹던 힘을 다해 내달렸다. 그렇게 한해를 달려갈 달력을 바라본다. 365일 코스. 그 출발선 앞에 서면 매년 그랬듯이 설레고 긴장된다. 이제 이골이 나서 무덤덤할 만도 하련만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여전히 나를 흔든다. 굽이치는 쉰 두 개의 주일을 거쳐, 스무 네 번의 절기 변화와 네 번의 광활한 계절을 지나, 열두 산맥을 넘어야 하는 대장정! 달력 속에 펼쳐진 하루하루의 백넘버들을 어루만져 본다. 묘한 열기가 느껴진다. 박동치지 않는 날짜들이 없다. 살아 숨 쉬는 소중한 날들이다. 새해는 이리 가슴 벅차게 밝아왔다. 새해의 커튼을 여는 초읽기에 들어갔을 땐 한 초 한 초가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금쪽같은 시간을 실감했다. 삶을 가꾸고 꽃피우게 할 살아 있는 세포들이니 그럴 것이다. 아, 이렇게 눈으로 보고서야 시간의 귀함을 깨닫게 되는구나. 이런 생각도 스친다. 시간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주어지지만 사용하기에 따라선 그 총량의 무게가 다르고, 시간 세포에 온도차가 있을 거라는 것을. 그래서 삶의 질이 달라질 거라는 것을. 동산에 올라 해를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해는 태생적으로 신비하다. 매 순간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우리네 마음을 읽고 그대로 비춰주기 때문일 게다. 희망으로 보면 희망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삶이 팍팍할 때 문득 고개를 들어 해를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그런 에너지를 얻고자함인지도 모른다. 올해도 전국의 일출 명소마다 수십만 명이 북적거렸더랬다. 찌든 일상을 불태우고 새 소망을 축원했으니 해에게서 희망을 보았을 게다. 시작이라는 출발에는 종착역이 있다. 사람들은 새 아침에 저마다의 종착역에 간판을 내걸었을 터다. 행복한 삶을 살아갈 가치들이다. 며칠 전 우연히 한 음식점에서 혼밥을 하면서 그 하나를 건졌더랬다. 음식점은 가게들이 어깨를 맞대고 이어진 좁은 골목 안쪽에 들어앉아 있었다. 메뉴는 서너 종류가 보였다. 냉큼 부대찌개를 주문했는데, 이 가게 간판 메뉴여서 만은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푸푸 끓으며 군침을 돌게 한 그것이 강력 추천하고 있었다. 반찬이 나오기에 부대찌개도 곧 등장하겠거니 생각했다.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째 올라오면 옆 테이블처럼 군침 돌게 끓일 참이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다. 마음은 일찌감치 찌개를 끓이고 있었는데, 웬걸 뚝배기를 내놓는다. 잘못 가져왔나? 싶었는데 주인아저씨가 주문한 부대찌개란다. 주방에서 직접 끓였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오래 달궈졌는지 뚝배기는 보글보글 맛깔스럽게 끓고 있었다. 순간 잠시 허탈에 빠졌던 미각이 되살아났다. 맛이 기가 막혔다. 뚝배기와 부대찌개. 특정 요리를 이런저런 용기로 끓이라는 법은 없지만 부대찌개 하면 아무래도 무쇠 뚜껑이나 양은 냄비가 떠오른다. 이 상식을 깬 뚝배기는 여러 가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었다. 뚝배기는 어떤 요리든 품을 줄 아는 큰 그릇이었다. 그 포용력으로 부대찌개를 웅숭깊은 새로운 맛을 창출했던 거다. 마음씨 역시 따뜻하고 포근했다. 마지막 국물 한 숟가락까지 변함없이 온기를 지켜주고 있었다. 새해 내가 뽑은 최고의 그릇이다.

2018-01-03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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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배터리 게이트, 삼성과 다른 대응에 소비자 '분통'

애플이 배터리를 이유로 아이폰 성능을 저하시킨 '배터리 게이트'에 대해 배터리 교체비용 할인이라는 대응책을 내놓은 뒤 오히려 더 큰 비난을 받고 있다. 갤럭시노트7 배터리 문제로 잃은 소비자 신뢰를 빠른 수습으로 회복한 삼성전자와 다른 행보를 걷는 모양새다. 1일 외신에 따르면 애플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이 세계 각국에서 15건으로 늘어났다. 호주 퀸즐랜드에 위치한 법무법인 샤인 로이어즈는 2018년 초 소장 제출을 목표로 집단소송 절차에 착수했다고 이날 밝혔다. 호주에서 아이폰을 쓰다 피해를 본 사용자가 500만명이 넘을 것이며 10억 달러 이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애플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이 제기됐거나 추진 중인 국가도 미국, 이스라엘, 프랑스, 한국, 호주 등 5개국으로 늘었다. 지난 20일(현지 시간)애플이 아이폰6 이후 출시 제품들의 성능을 고의로 저하시켰다고 시인한 지 11일 만이다. 구형 아이폰의 성능 저하 의혹은 예전부터 제기됐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어 음모론 취급을 받아왔다. 의혹이 확인된 것은 뉴스 공유 커뮤니티 레딧에 사용자들이 '오래된 아이폰의 속도가 느려졌다'는 글을 올리면서다. 지난 9일 한 사용자가 "아이폰6S 배터리를 교체했더니 성능이 급격히 좋아졌다"고 주장했고 프라이메이트 랩스의 존 풀 설립자가 이를 검증하며 사실로 드러났다. 애플의 구형 아이폰 성능저하가 신형 아이폰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용자들의 집단소송이 이어지자 애플은 지난 28일 사과문을 올리고 보상안을 공개했다. 사용자가 79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아이폰 배터리 교체 서비스를 50달러 할인된 29달러에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되레 성난 사용자들에게 기름을 뿌린 격이 됐다. 국내 상황만 하더라도 법무법인 한누리에 따르면 애플코리아의 보상안 발표 전 3만명 수준이던 집단소송 참여자는 발표 후 하루 만에 15만명 늘어난 18만명에 도달했다. 법무법인 휘명이 집단소송 위임을 위해 개설한 인터넷 카페 회원도 2900명에 달한다. 지난 3분기 107억 달러(약 11조 7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고 CEO에게 급여 등으로 올해 1억200만 달러(약1094억원)를 지불한 애플이 사용자들에게는 기대에 못 미치는 제안을 한 것이 원인이다. 현지 매체 USA투데이는 "노후 배터리 교체비용을 낮추기보다 무료로 배터리를 교체해 줘야 한다"고 말했고 뉴욕타임스는 "이런 방식으로 문제에 대처하는 스마트폰 업체는 본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애플의 사과문에 고위 임원진의 서명이 들어있지 않다"면서 "공개 사과하는 것은 CEO에게 주어진 책무"라고도 지적했다. 애플 이전에 스마트폰 배터리 문제로 곤욕을 겪었던 기업으로는 삼성전자가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6년 하반기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노트7'을 출시했지만 배터리 발화 사건이 발생하자 공식 사과와 함께 전량 리콜을 결정했고 문제가 재발하자 제품은 단종, 전량 폐기시켰다. 삼성전자가 시장에서 회수한 제품은 300만대가 넘는다. 제품 배터리만 교체해도 될 상황이었지만 소비자 안전을 우려해 제품 전량 회수와 폐기를 결정한 것이다. 소비자들에게도 전액 환불 또는 최신 플래그십 스마트폰(갤럭시S7)으로 교환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갤럭시S7으로 교환한 뒤 이듬해 신제품으로 교체하면 기존 할부금을 50% 면제하는 혜택도 제공했다. 갤럭시노트7 구입 당시 사은품으로 제공했던 스마트밴드 기어핏2 등은 환불이나 교환을 하더라도 소비자에게 귀속시켰다. 제품 회수 과정에서 배터리 충전률 제한 등의 조치로 구설에 올랐지만 배터리 결함 원인을 조사하고 제3의 기관에도 의뢰해 분석 결과를 소비자들에게 공개하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는데 성공했다.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자세를 유지한 덕분에 갤럭시노트7 배터리 결함 문제가 조기 해결됐고 차기작인 갤럭시S8, 갤럭시노트8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시장에 유통되지 않은 갤럭시노트7의 배터리를 교체한 갤럭시노트FE(팬에디션)도 소비자들의 뜨거운 성원에 조기 품절됐다. 한누리 조계창 변호사는 "소비자들이 입은 피해와 위법성 정도를 비춰보면 애플이 제시한 대책의 보상 수준이 극히 낮다"며 "2월 초 실제 소송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8-01-02 06:12: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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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정세균 국회의장 "정치가 희망의 디딤돌 되도록 하겠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대한민국의 재도약에 국회가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1일 신년사를 통해 "2018년, 새로운 대한민국이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며 "주권재민의 원칙이 바로 서고, 분권과 자치를 꽃피우고,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정치가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제헌 70주년을 맞이해 우리 국회는 헌법 개정 등 대한민국 미래 100년의 토대를 쌓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 나가겠다"면서, "'일하는 국회', '국민 삶에 힘이 되는 국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치가 절망의 걸림돌이 아닌 희망의 디딤돌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7년에 대해 그는 "헌정사상 유례없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 국민이 보여준 성숙한 민주주의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며 "대한민국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써내려간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정 의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민심의 도도한 물결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문을 열었다"며 "이제 정치가 국민의 여망에 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낡은 관행과 부조리를 바로잡고 정의와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땀 흘린 만큼 대접받는 공정한 사회, 부와 권력이 결과를 좌우하지 않는 투명한 나라,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새로운 역사의 물줄기는 흐르기 시작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며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고,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는 격언처럼 국민과 함께 멀리 보고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2018-01-01 14:38:5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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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종소리

카페 문은 허름했다. 그냥 통나무에 널빤지를 덧댄 문이었다. 엉성했다. 바람이 살짝 밀쳐도 삐거덕 나뭇결 소리를 낼 것만 같았다. 조심스레 문을 여는데 그 소리가 아니었다. 뜻밖의 울림이었다. 딸랑딸랑! 종소리다. 맑고 청아했다. 마치 동그라미를 그리며 호수 가장자리까지 퍼지는 물결처럼 가슴으로 번져 왔다. 참 따스했다. 소리를 내는 쪽을 보니 문 꼭대기 귀퉁이에 매달린 풍경(風磬)! 호젓한 산속에 은자처럼 들어앉은 카페는 기분 좋게 종을 울리고 있었다. 카페 지붕엔 산새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수런댔다. 은은한 풍경소리와 재잘대는 새소리. 한해의 끄트머리에 홀로 선 산속은 그렇게 색감 다른 울림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 기로에서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건 종소리. 그것은 비단 세밑이 다가옴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마 오랜만에 들어보는 쇠붙이 울림이 정겨워서일 게다. 디지털오디오 시대에 라이브 종소리를 듣는 게 어디 흔한가. 크고 웅장하게 울리는 보신각의 종이 아니어도 산속을 다독여주기에 충분했다. 하루의 시작을 종소리가 열어주던 시절이 있었다. 골목골목을 메아리치던 두부 장수의 종소리는 자명종이었다. 매일 새벽녘 정적을 깼다. 마을이 들썩거렸다. 뜨끈뜨끈한 두부를 사달라고 종을 마구 흔들어댔다. 사람들을 흔들어 깨웠다. 자꾸 보채는 종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두부를 팔아줘야 했다. 학교에도 땡땡 울리던 시절이 있었다. 당번 선생님이 종을 쳤더랬다. 수없이 울려댔다. 종소리가 메아리칠 때마다 운동장의 아이들은 밀물이 되고, 썰물이 됐다. 학창시절 방학 때 시골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마을 이장님이 치는 종도 들었다. 시골의 숲속 공기와 강바람을 쐰 쇠붙이라 그런가. 촌스럽게 들렸다. 그런데 음색이 달랐다. 설렘과 기쁨이 묻어 있었다. 아침 햇살이 맑아서인지 마을 표정도 따스했다. 알고 보니 이웃집 혼사를 알리는 종소리란다. 신비했다. 종소리에도 표정과 감정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만약 흉사가 생겼더라면 안타까움과 슬픔이 배어났을 터다. 물난리라도 났더라면 다급함이 실렸을 거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엔 종은 단순히 소리만 내는 쇠붙이가 아니었다. 종소리엔 갖가지 사연들이 담겨 있었다. 마을 이장님의 종소리가 경조사에 따라 음색 다르게 읽히는 까닭일 것이다. 두부 장수의 종소리에는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한다는 간절함이 들어 있었던 거다. 녹슨 학교 종은 그땐 몰랐지만 선생님의 노고가 스친 흔적이었다. 휘황찬란한 서울 도심 한복판에 울리는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는 추운 이 겨울 그늘진 이웃을 도우려는 애틋함이 묻어난다. 종은 마음의 거울이기도 하다. 마음결에 따라 온기 다르게 들려서이다. 마음을 비우고 들으면 해맑은 언어들이 밀려온다. 정결하게, 산뜻하게, 따뜻하게, 잔잔하게. 때론 감동으로 다가온다. 걱정을 잔뜩 안고 듣는다면 처연하고 무겁게 느껴질 터이다. 소리에 무슨 무게와 모양이 있겠는가. 걱정의 무게가 더 얹혔을 뿐인데 더러는 천근만근으로 들린다. 칙칙한 소리를 내려고 탄생하는 종은 이 세상에 없다. 무슨 소리든 마음을 다스리고 경청하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한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간다. 그 끄트머리에서 서성거리는 종소리엔 공허함과 설렘이 뒤섞여 있다. 며칠 후면 한 해를 접는 대단원의 커튼을 내려야 하고, 새 해의 시작을 알려야 해서다. 종소리는 세월의 벗인 것이다. 불을 밝히고 있는 스마트폰 달력에 시선이 머문다. 맨 아래 줄이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카페의 통나무 문에 매달려 딸랑거리는 종을 바라보면서. 새해에는 저 청아한 종소리처럼 밝고 설레는 일들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번지기를 기원해본다.

2017-12-27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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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크리스마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초대형 크리스마스카드 한 장이 정겹다. 시내 길모퉁이 건물 앞 광장에 현란하게 치장한 트리! 꼬마전구가 반짝반짝 불을 밝히며 크리스마스 시즌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나절 내린 함박눈은 트리 주변을 수북수북 새하얗게 색칠해놓았다. 어릴 적에 투박한 도화지로 만든 크리스마스카드가 그랬다. 엉성하고 손때 묻어 꼬질꼬질했어도 요모조모 갖출 건 다 갖췄다. 거리 곳곳에 집채만 한 트리 옷을 입고 있는 카드들보다 훨씬 더 속이 알찼다. 흰 눈, 산타할아버지, 동네 아이들, 눈사람, 종, 동산, 썰매까지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함박눈 구경하기가 힘들었던 내 어릴 적 고향에선 이런 조합은 꿈같은 얘기였다. 그래서 내 카드엔 눈에 대한 동경이 스며있었다. 반짝이 종이를 붙인 트리만이 알록달록 불을 밝혔을 뿐, 온통 눈을 덮고 있었다. 눈은 현재 진행형으로 내렸다. 하얀색 크레용으로 펑펑 그렸다. 빨간 산타 모자에도 흰 눈이 날렸으며, 하얀 털실을 덕지덕지 붙인 산타의 수염도 나풀거리며 눈보라가 쳤다. 그러니 내가 만든 크리스마스카드는 소품만 앉힌 단순한 정물화가 아니었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별천지 눈에 대한 동경을, 갈증을 도화지 위에 한 편의 그림동화를 썼다. 동네 아이들은 솜이불 같은 눈 위를 뒹굴며 뛰놀았다. 더러는 눈사람을 만들며 눈썰매를 탔다. 동산은 하얀 고깔을 쓰고 있었으며, 흰 털옷을 입은 트리는 불을 환히 밝힌 채 산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만치 크리스마스 선물보따리를 든 산타할아버지가 그 풍경 속으로 들어왔다. 그런 꿈을 꾸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이맘때 카드의 뜰에 이야기를 담은 소품들을 붙이고 그렸다. 그런데 늘 아쉬운 게 있었다. 캐럴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는데 어른이 된 어느 날 멜로디 크리스마스카드가 시중에 나온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소리가 나는 종이. 세상은 상상하는 대로 이뤄지는구나! 그런데 정작 스피커에는 캐럴 소리가 쉬 나지 않는다. 이따금 카페에서 흘러나오긴 해도 잔뜩 움츠려 있다. 젊은 날에 거리 곳곳을 채우던 그 흔한 징글벨이. 그게 세상 밖으로 함부로 나오지 않게 된 건 저작권인가 뭔가 하는 문제 때문이란다. 게다가 온라인 다운로드로 바뀐 음반구매 패턴도 한 몫 했을 터다. 이런 처지의 캐럴이 이맘때면 귓속에서 여전히 쟁쟁거리는 건 어떤 설렘이 꿈틀거려서다. 학창시절 종로거리를 거닐다 어디선가 캐럴 소리가 들려오면 괜스레 들뜨곤 했더랬다. 눈이 금방이라도 내릴 것만 같았다. 바람은 매서웠지만 마음은 포근했다. 대형 스피커가 있는 레코드 가게 앞은 청춘들로 북적거렸다. 수북이 쌓인 눈 위를 뛰어다니며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 그 정다운 풍경이 또 다른 크리스마스카드로 다가온다.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릴 적 그런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어쩌면 옛 추억이 점점 아련하게 가물거리기에 캐럴이라는 소리를 그리워하고 집착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스친다. 추억의 풍경은 오래된 무성 영화처럼 색이 바래지만 캐럴은 그 때처럼 변함없이 재생해 생생하게 들려주니 말이다.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공식이 어디 있겠나. 세대와 시대에 따라 느낌이 다른 까닭이다. 동네 꼬마들은 반짝이는 트리, 눈사람 같은 풍경을 그릴 것이고, 청춘들은 약속, 함박눈, 돌담길 같은 낭만을 떠올릴 것이다. 장년층은 극장, 레코드 가게, 사탕, 크리스마스카드 같은 추억이 스치고, 노인층은 빗자루, 빙판길 같은 냉혹한 현실이 아른거릴 것이다. 내 추억의 산타가 크리스마스카드 창문을 열어젖히고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외칠 것만 같다.

2017-12-20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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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잊힌 이름들

친구가 불쑥 내뱉은 한마디가 그날따라 가슴 시리게 들렸다. 세월 참 빠르다! 그 매정한 현실을 뿌리치려 했던, 그래서 가슴속에 욱여넣으며 유보해왔던 그 넋두리가 말이다. 그건 속절없이 저무는 한해가 공허함으로 밀물져와서일 것이다. 그날 서울 종로의 밤거리도 그랬다. 불을 환히 밝힌 거리는 한해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었다. 길모퉁이를 돌고 돌아도 이어지는 좁다란 맛집 골목들. 시간이 대낮부터 멎은 듯 밝았고, 사람들은 불빛을 기웃거리며 물결치고 있었다. 밤거리는 활기찼다. 모두가 올 한해를 저 불빛처럼 반짝거리며 살아왔을 터다. 탁자에 빙 둘러앉아 오순도순 머리를 맞댄 사진 한 컷이 정겨운 풍경화로 다가온다. 그러나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에서, 손을 내밀어 크게 악수하는 마음에서. 연인들이 폭 껴안는 사랑에서 저무는 한해의 아쉬움을 본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멎어 있으리라. 술잔을 기울이며 세월 빠름을 달래도 가슴 한 켠에 여전히 뭔가 남아 있는 건 왜일까? 까닭모를 그 꿈틀거림은 도대체 뭘까? 그 이유를 알아내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친구의 건배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 실마리를 찾은 건 집으로 가는 길에서였다. 허연 김이 모락거리는 잔치국수를 파는 가게를 스치는데, 한 친구가 불현듯 떠올랐다. 초등학교 1학년 딱 이맘때였다. 친구는 장터에서 잔치국수를 먹고 있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씻어 내면서. 그렇게 군침 돌게 맛있게 먹는 모습은 여태껏 못 봤다. 그날 이후 잔치국수를 보면 침부터 괸다. 면이라는 면을 죄다 좋아하게 된 까닭이다. 그랬다. 내 가슴을 노크하고 있었던 건 그런 옛 친구들이었다. 보고 싶은 얼굴들이다. 추억의 시간에 멈춰 있는 앳된 얼굴들. 녀석들의 얼굴이 흑백필름으로 흐른다. 색 바랜 그 장면들을 떠올리며 기억을 더듬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겁다. 친구의 눈매들이 떠오른다. 다들 반갑다고 손짓하는 것 같다. 개중에는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퍽 서운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잔치국수를 맛있게 먹던 친구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구나. 이젠 얼굴조차 가물거린다. 그 친구의 안부가 무척 궁금하다.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지낼까? 잊힌 이름만이라도 기억해내려 한참이나 맴을 돌았건만 아련하고 가마득하다. 마치 한 편의 영화가 끝난 뒤 자막으로 올라가는 숱한 이름 중 한 깜빡거림처럼. 이렇게 잊힌 이름들이 어디 한둘인가. 아, 이제야 가슴을 친다. 친구는 자신의 이름조차 몰라주는 내게 큰 가르침을 선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라는 삶에는 주연 배우만 있는 게 아니라 자막으로 사라지는 스태프들이 많다는 것을. 무대 뒤의 사람들! 작가며, 감독이며, 카메라, 음악, 미술, 조명, 의상을 담당하는 스태프들이다. 그들의 이름을 얼마나 기억할까. 그래서 그들의 숨은 노고를 감사하고 있을까. 관람객들은 그러나 영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일어나기 바쁘다. 더러는 감동의 여운이 남아 스크린을 응시하지만 자막엔 쉬 눈길을 주지 않는다. 아주 작은 글씨들이 왜 이리 빠르게 지나가는지. 화려함 뒤편에서 묵묵히 쏟은 열정과 시간을 생각하면 스치듯 지나가는 자막은 초라하기까지 하다. 가물거리는 영화의 자막은 저무는 한해의 끝자락과 닮아 있다. 자막이 흘러도, 한해가 다 가도록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스태프 같은 일상의 이름들! 그들은 우리네 삶을 꽃피우려 말없이 헌신했을 터다. 더러는 손발이 부르트도록, 몸이 깨져라 일했을 것이다. 그 피땀 같은 노고를 가족들이 알아주기에 남몰래 눈물을 찍어낸다. 그건 고단한 삶의 그림자를 이끌고 가는 원동력이고, 행복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작은 영웅,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2017-12-13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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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달력

십이월! 달력이 다 뜯겨나가고 달랑 한 장 남았다. 계절도 마지막 겨울을 스케치하고 있다. 봄꽃이 피고, 땡볕에 달궈지고, 낙엽 흩날리는 계절을 지나 이제 찬바람 스미는 길목에서 서성거리는 달력 한 장. 동네 장터의 허름한 선술집 달력은 그렇게 벽면에 매달려 덜렁거리고 있었다. 달랑과 마지막. 듣기에도 쓸쓸한 수식어가 붙어서일까. 처연하다. 한 해를 되짚게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뜯겨나간 열한 장을 합친 무게 보다 달랑 한 장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그 너덜거리는 달랑 한 장이 왜 그토록 무겁게 느껴지는 걸까?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벽면을 부여잡고 있는 그 십이월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달랑은 그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되물어올 것만 같다. 정초에 결심한 일에 얼마나 매진했는가. 허투루 허송세월하지 않았는가. 가족과 친구, 이웃에게 늘 감사하고 배려했는가. 저무는 한해를 갈무리하면서 아쉬움이 어찌 없겠냐마는 좀 더 잘 할 걸, 잘 해줄 걸, 제대로 할 걸 같은 회한들이 밀물져온다. 달력은 신통방통한 녀석이다. 태생적 어원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캘린더(calendar). 라틴어에서 유래했다는데 그 의미가 대차대조표다! 그러고 보니 달력은 삶의 대차대조표에 다름 아니다. 달력에는 보석 같은 값진 시간들이 흐른다. 열두 개의 보물섬이 있는 것이다. 때론 녹슨 시간들이 보물섬을 탁류로 만들곤 한다. 달력은 어쩌면 금광석을 캐고 곱게 세공(細工)해서 보석처럼 빛나는 시간의 순이익을 창출하라고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순이익! 그것은 사랑, 진실, 베풂, 배려, 나눔, 포용, 감사하는 밝고 맑은 시간, 뭉뚱그려 지혜로운 시간들이다. 보물섬엔 금쪽같은 시간만 있는 게 아니다. 증오, 거짓, 욕심, 시기, 질투하는 암흑의 시간들도 있다. 그 암흑의 편린들도 공을 들여 조탁하면 증오는 사랑, 거짓은 진실, 욕심은 나눔과 베풂, 시기와 질투는 배려와 포용이라는 보석으로 각각 거듭날 것이다. 그랬다. 그런 순이익을 창조했기에 인류의 스승들이 등장하고, 세상은 진화하고 발전했다. 태양은 매일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녹슨 시간을 비우고 새 시간을 채워주는 빛의 경이! 태양은 변함없이 떠올랐지만 그것을 미처 몰랐다. 눈부시도록 그 가르침을 비춰 줬건만 알지 못했다. 썰렁한 선술집의 달력을 유난히 무겁게 하는 건 인쇄 박힌 숫자 아래 펜으로 꼭꼭 눌러 쓴 또 다른 숫자들. 얼핏 보아 이 집 가계부다. 공과금, 월세값, 돼지고기 물량과 가격 같은 수치일 것이다. 여러 겹으로 동그라미를 표기한 날짜는 사랑하는 가족 누군가의 생일일 게다. 선술집의 달력이 왠지 기특하다. 달력 찍어내는 소리가 예전만 못한 디지털 시대에 점방 맨 중앙 벽면에 메뉴판처럼 떡하니 붙어 있으니 말이다. 내 어릴 적엔 더 기특하고 고마웠다. 교과서 겉 부위가 닳을세라 겉장을 싸는 덮개가 돼주곤 했다. 허전한 벽면을 즐겁게 채워주기도 했다. 여행이 흔치 않던 그 시절엔 월별로 계절별로 잘도 구성한 열두 폭의 국내 명소 풍경은 색다른 구경거리였다. 여기가 어딘가요? 첫 말문을 트게 하는 물꼬였으며, 소통의 창구였다. 달랑 한 장을 남긴 달력. 찬바람이 불어오자 시계추처럼 일렁인다.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물결친다. 한해를 마무리한다는 게 이렇게 쓸쓸한 것인가. 얼마 후면 종이든 디지털이든 새 달력 앞에서 세상은 달뜰 것이다. 모두가 새로운 꿈과 희망을 안고 출발점에 서니 그럴 터다. 사계절이 수놓는 열두 고갯길과 강을 굽이치며 저마다의 삶의 일기를 써내려갈 것이다. 변함없이 한결같은 얼굴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내년 이맘때 이 시간이 어떻게 기억될까.

2017-12-06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