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더스 코리아', 돈이 떠난다…서학개미 투자기
"국내 증시가 희망이 없어 미국 시장으로 향했다" 미국 증시가 매번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데 반해 정부의 증시 부양책에도 국내 증시가 힘을 쓰지 못하자, 동학 개미(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들의 실망이 커지고 있다. 특히 동학개미들 사이에서 '국내 증시는 답이 없고 미국 증시가 답이다'라는 말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 개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보다 해외 증시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올들어 미국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는 직장인 A씨(35세)는 "최근 정부가 국내 증권의 몸집을 키우기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 것 같다"며 "국내 증시와 달리 주가 상승을 이끄는 대장주들이 많은 미국증시에 투자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다른 직장인 B씨(27세)는 "애플·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아마존·엔비디아·테슬라·메타 등 '매그니피센트7'이 급등하는 것을 보면서 '포모(뒤처짐에 대한 공포) 현상'도 왔다"고 했다. ◆국내 증시, 불투명성 크고 외부 변수에 좌우 "한 예로 사슴을 사냥하는 국가인 캐나다의 총리가 한국 방문하면 노루페인트에 투자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국내 주식 시장은 문제가 많다" 이같이 국내 증시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조롱섞인 불신은 심각한 상황이다. 국내 증시에서 개인투자자들이 등 돌린 이유로 오너 리스크, 주주 환원 부족 등을 꼽았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개인 투자자들이 장기 투자를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투명하지 않다 보니 주가는 여러 호재에도 잠깐 반등하다가 제자리로 돌아온 적이 많다"면서 "이렇다 보니 개인 투자자들은 이제 국내 증시에 투자하면 손해를 본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주식시장이 펀더멘털(기초체력)에 의해 움직이기보다는 이벤트나 환율 등 외부 변수에 의해 쉽게 좌우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중국 주식에 투자하는 외국계 제약사 직원 C씨(45세)는 "중국은 투자 인구가 많아 그런지 호재 반영도 빠르고 기업의 실적이 좋으면 주가도 급격하게 오르는 경향이 있어 수익 내기가 쉽다"면서 "이에 반해 국내 주식시장은 일단 펀더멘탈로 움직이는 시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 실적이 좋다고 해서 투자한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면 수익을 낼 수가 없다"며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도 지치고, 호재가 있어도 움직이지 않으니 국내증시를 떠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직장인 D씨(36세)는 "실제 투자한 국내 기업 중 호실적을 기록함에도 주가 상승이 크지 않은 반면 미국 증시는 기업들의 실적이 정직하게 주가에 반영되는 데다 비교적 투명한 환경이 유지되고 있어 국내 시장보다 투자하기가 훨씬 매력적이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 때문에 국내 증시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면 공매도 재개, 금투세 폐지 논란 등으로 시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 대표는 "근본적으로 우리 주식시장에 대한 불신이 크다"면서 "정부가 아무리 당근을 내놓더라도 투자자들이 믿지 못해 제대로 약발이 먹히지 않는 형국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금투세 논란, 공매도 재개 등 증시에 부정적인 요인을 피해서 이제 미국, 일본, 인도 등 해외시장으로 지금 개인 투자자들이 많이 빠져나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해외 증시,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상승 가능성 높아" 해외주식시장으로 눈을 돌린 개인투자자들은 전반적으로 안정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었다. 특히 배당 목적으로 미국 주식을 매수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D씨는 "미국 시장은 안정적인 배당과 지속적인 성장이 담보돼 있다"며 "안정적으로 배당 중심 투자를 통해 재투자 사이클을 반복할 수도 있고, 기술주 등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종목을 통해 수익률 확대를 노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투자자 E씨(27세)는 "미국 주식에 투자한 종목들의 주가 수익률이 높지는 않지만 배당이 지속적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종합적인 수익률은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며 "배당을 주는 미국 주식을 지속적으로 매매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투자자들은 해외 기업들의 성장성을 해외주식 장기 투자 이유로 들었다. 성장이 정체된 국내 기업과 달리 미국 기업은 성장 추세가 뚜렷하고 가시화된 성과로 나타나고 있어 투자자 입장에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대 회사원 D씨는 "미국 주식은 현재 기준으로 보다 꾸준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면서 "장기 투자를 하게 되는 경우 단기투자보다 이상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장기 투자하는 서학개미들의 투자 종목 등을 살펴보면 엔비디아, 테슬라, 애플 등으로 미국 대표 빅테크 기업의 장기 성장성에 무게를 두고 투자하고 있다. A씨는 "미국 기업들의 주가가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투자하고 있다"며 "하반기에 금리 인하 가능성도 나오고 있어 미국 주식시장에 대한 전망은 밝을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