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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교황 '노란리본' 달고 미사 집전…세월호 유가족 위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노란 리본을 달고 '성모승천대축일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미사 직전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 학생을 10여 분간 만나 위로했다. 유가족은 이자리에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해 달라는 뜻으로 교황에게 노란 리본을 선물했다. 교황은 면담 이후 진행된 미사에 유가족이 준 노란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 나왔다. 세월호 대책위원회 김병권 위원장은 이날 미사 뒤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 학생 36명이 오늘 미사에 참석했고 이 중 10명이 교황님을 기다리고 있다가 미사 직전 제의실에서 만났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이 치유되도록 특별법 제정에 정부와 의회가 나설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씀드렸고 단식 중인 세월호 희생 학생의 아버지를 광화문 미사 때 안아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안산에서 대전까지 십자가를 메고 걸어온 희생자 아버지 김학일 씨도 "제의실에 300명의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십자가와 함께 있다"면서 "억울하게 죽은 영혼과 함께 미사를 집전해 달라"고 교황에게 부탁했다. 유가족 측은 교황에게 안산 단원고 학생과 교사, 유가족의 사진이 든 앨범과 함께 영문 편지를 전달했다.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2명도 영어와 스페인어로 쓴 편지를 전했다. 세월호 대책위 김형기 수석부위원장은 "간접적으로 우리의 뜻을 피력하긴 하지만 매우 만족스럽다"면서 "미사 때 교황님이 리본을 달고 나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2014-08-15 15:35:58 김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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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역대 교황과 한국...알렉산데르 7세부터 베네딕토 16세까지

교황의 존재가 우리 민족에게 처음 소개된 것은 1614년이다. 한역 서학서를 처음으로 도입했던 이수광(1563~1628)이 저서 '지봉유설'에서 마태오 리치가 쓴 '천주실의'를 소개하면서 "그 풍속에 군(君)을 교화황(敎化皇)이라 하고 혼인하지 않은 독신으로, 세습해 계승하지 않고 현자를 가려 세운다"고 언급했다.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와 함께한 역대 교황 우리 민족의 소식을 처음으로 접한 교황은 알렉산데르 7세(재위 1655~1667)였다. 제사 금지를 완화하고 중국 복음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예수회 선교사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1660년에 조선을 '남경교구'에 예속시켜 선교를 권장했다. 또 클레멘스 11세(재위 1700~1721) 교황은 1702년 조선 재치권을 남경에서 '북경교구'로 이양했다. 그는 1715년 제사 등 선교 지역 관습을 받아들이는 것을 금지하는 칙서를 반포해 천주교가 박해받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어 비오 7세(재위 1800~1823) 교황은 1801년 신유박해로 초토화된 조선교회 재건을 위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해 말할 수 없는 괴로운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포교성성 장관으로 재임하다 즉위한 그레고리오 16세(재위 1831~1846)는 교황직에 오르자마자 조선 선교지 문제를 직접 나서서 해결했다. 그는 1831년 9월 9일 '조선대목구'를 설정하고 초대 대목구장으로 파리외방전교회 브뤼기에르 주교를 임명하는 칙서를 반포했다. 그레고리오 16세의 뒤를 이은 비오 9세(재위 1846~1878) 교황은 페레올 주교가 프랑스말로 작성하고 최양업 신부가 라틴말로 옮긴 '기해박해 순교자록'을 처음으로 접한 후 곧바로 조선 순교자 82명을 '가경자(하느님의 종)로' 선포했다. 이로써 그는 한국 교회 순교자들을 처음으로 대우한 교황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아울러 비오 10세(재위 1903~1914) 교황은 1911년 조선대목구를 서울과 대구로 나눴으며 비오 11세(재위 1922~1939) 교황은 전주지목구(1937년)를 설정, 최초로 한국인 성직자에게 자치를 맡겼다. 또 그는 평양(1927년)·연길(1928년)·광주(1937년)·춘천(1939)지목구를 설정해 한반도 지역교회의 틀을 마련했으며 1925년 7월 5일 한국 순교자 79위를 복자로 선포했다. 요한 23세(재위 1958~1963) 교황은 1962년 3월 10일 한국교회 '교계제도'를 설정했다. 한국교회는 이를 통해 선교지 교구에서 벗어나 정식 교구의 자격을 갖추게 됐고 한국교회 주교들은 교황의 대리인인 '사도의 후계자'로 교구 관할 전권을 행사하게 됐다. 더욱이 한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정식으로 초대돼 보편교회의 당면 과제에 협력하고 중대 사안을 함께 결정하는 완전한 형태의 지역교회로 인정받게 됐다.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 교황은 1968년 10월 6일 한국 순교자 24위를 복자로 선포했으며 1969년에는 김수환 대주교를 추기경에 서임, 한국교회가 교회의 최고 통치에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 복자 교황은 1984년 5월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해 사상 처음으로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이다. 그는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시성식을 주례하며 103위 한국 순교 성인을 탄생시켰으며 1989년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때 다시 방한했다. 베네딕토 16세(재위 2005~2013) 교황은 재위 중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이산가족과 북한의 인도주의적 지원 문제 등에 꾸준한 관심을 보였으며 2009년 교황청을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식량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북한 주민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남북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말하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2014-08-15 15:00:33 황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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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핀 남편 회사에 단체메일로 불륜 폭로한 부인 유죄

남편이 회사 동료 여직원과 불륜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회사에 폭로한 부인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이영남 판사는 명예훼손과 협박 혐의로 기소된 정모(38·여)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고 15일 밝혔다. 정씨는 지난해 1월 남편 박모씨가 회사 동료 A씨와 내연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격분한 이씨는 남편의 USB와 이메일 등에서 입수한 A씨 사진과 함께 불륜 관계를 폭로하는 이메일을 남편의 회사 직원 27명에게 보냈다. 이메일에는 박씨가 A씨와 수개월간 불륜을 저질렀고, 회사 출장을 핑계로 함께 여행을 가기도 했다는 내용과 함께 A씨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또 자신이 박씨의 부인이며 이혼 절차를 밟고 있고, 박씨는 담당 팀장에게 불미스러운 일로 퇴사한다고 말했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정씨는 A씨에게도 '위자료 소송을 내겠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A씨가 속옷만 입은 사진과 함께 '전 국민이 아는 거 머지않았네요'라며 인터넷에 사진을 유포하겠다는 뉘앙스의 협박성 메시지도 보냈다. 이 판사는 "A씨가 결국 이 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며 정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단 "정씨가 남편과 A씨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알게 되고 나서 정신적 충격을 받고 범행에 이르게 된 점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2014-08-15 13:28:00 김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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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유가족등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전달한 편지 '전문'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 학생 등 38명은 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에 초청받아 참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 직전 김병권 세월호가족대책위 위원장 등 유가족 8명과 생존 학생 2명 등 10명을 따로 만나 이들을 위로했다. 다음은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교황에게 전달한 편지글의 전문이다. ◆세월호 가족들이 교황께 드리는 편지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황님. 저희의 이 글을 꼭 읽어주십시오. '세월'은 한국말로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름을 가진 배가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이후 우리 가족들 시간은 흐르지 못하고 멈추었습니다. 글을 쓰는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 죽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부모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한 숨을 쉴 때마다 "보고 싶다" 한탄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자식은 이름밖에 부를 수 없습니다. 딱 한번만이라도 만지고 싶고, 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바닷물에 불어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시신이 상할까봐 제대로 안아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실종되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도 10명이 됩니다. 우리는 죽은 아이라도 찾았지만 그들은 DNA확인이 아니고서는 알아볼 수도 없게 된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족 4명이 배를 탔다가, 엄마는 시신으로 돌아오고, 아빠와 7살 아들은 아직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해, 5살 딸만 살아남은 가족도 있습니다. 5살 딸은 "엄마 아빠, 오빠가 나만 두고 이사 갔다"고 울고 있습니다. 교황님이 아르헨티나 추기경이었을 때, 부에노스아이레스 화재 현장에 직접 달려가 구조 활동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소방차보다 먼저 달려가 법원이 판결 내렸을 때도 어영부영 넘어간 정부와 검찰을 강력히 비판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 상급심으로 올라갈수록 화재의 숨은 원인이 드러났고 피의자들은 호된 심판을 받아야 했다 들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도 저희에게 큰 힘이 됩니다. 참사 이후 진도 팽목항과 안산에서 매일 미사를 집전해 주셨습니다. 수 백 명 신부님 수녀님이 광화문 광장에서 가족들과 시민들과 함께 단식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노력이 쓸모없도록 한국 정부와 수사기관, 사법기관과 국회, 심지어 언론은 가족들 요구에 대해 아는 척하지 않습니다. 우리 요구는 단순합니다. 가족들이 죽어간 이유를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왜 위험한 배를 바다에 띄웠는지, 왜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왜 방송은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내고, 해양경찰들이 제대로 구조도 하지 않는데 대대적인 구조작업 중이라 거짓 방송 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사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과 많은 정치인들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고 특별법을 만들어서 진실을 밝혀주겠다 했습니다. 대통령의 약속이 거짓말일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니 가족을 무시합니다. 언제든지 찾아오라더니 청와대 가는 길을 경찰이 막습니다. 두려운 것이 있나 봅니다. 대통령은 사고 당일 7시간 동안 행적이 불분명했다고 합니다. 바로 우리 가족들이 죽어가던… 그런데 청와대와 여당은 그조차 알려 하지 말라 합니다. 참사를 조사하는 책임 여당 국회의원은 가족을 모욕하는 문자를 돌리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항의하는 가족에게 폭력을 휘둘러 크게 다치고 있습니다. 사고에는 무능했던 정부와 여당, 공권력은 우리 가족들을 괴롭히기만 할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온통 거짓말과 기만으로 일관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가족들은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서 기소권, 수사권이 있는 조사위원회를 만들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별법은 돈을 달라는 것도, 특혜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부정부패의 원인을,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죽어간 이유를 밝혀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철저히 조사하고 처벌하여 참사의 원인이 된 부정부패가 바로잡혀 다시는 우리처럼 가족과 이별하는 아픔을 겪는 이가 없도록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한 해에도 몇 개씩 벌어지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법이기도 합니다. 그걸 잘 아는 국민들이 나의 일이라 생각하고 우리 가족들과 함께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나라에서 힘없는 국민들만이 우리에게 '국가'였습니다. 죽은 아이들 중에는 교황님을 존경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사제가 되어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다 생을 마감한 이태석 신부님처럼 되고 싶다고 한 박성호가 그 아이입니다. 성인 집안의 김웅기도 예비사제였습니다. 장준형 학생도 사제의 꿈을 꾸었습니다. 외동아들이었던 최성호, 엄마가 새로운 직장을 잡도록 같이 공부하자고 했던 건호도 외동아들이었습니다. 이혼 이후 두 딸을 어렵게 키우던 유민아빠는 유민이를 잃고서 30일 넘는 단식으로 온 몸이 말라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사랑한다고 말 할 수 없는 보석 같은 내 아이들, 눈앞에서 잃어버린 아이들, 교황님 우리 가족의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다시 살릴 수는 없지만 왜 죽었는지는 밝혀야 죽어서라도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있겠습니다. 꿈에라도 보고 싶은데, 진실을 밝히지 못해서 그런지 꿈에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보고 싶어서 아이들이 입던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다니지만 그마저도 다 낡으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생존한 아이들은 자기들이 친구를 두고 왔다면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같이 생활했던 교실에 찾아와 책상 줄을 맞추고, 앉아 있기도 합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도 진실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 같은 세월호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세월호 이후 멈춘 시간 속에서 우리 모두 하루하루가 죽음 같은 고통이고 뼈가 아프고 심장이 녹습니다. 저희는 우리 아이들이 다시는 못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말라 기도했습니다. 지켜주지 못하고 살려내지 못해서 미안하고 부끄럽고 우리 자신들이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망가진 몸과 마음을 이끌고 용기를 내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권력과 싸우려고 합니다. 이 싸움은 우리만이 아닌 안전한 나라를 위한 국민 모두의 싸움이 되고 있습니다. 교황님. 진실을 찾는 길만이 저희들에게 멈춘 시간이 흐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리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죽어간 아이들이 좋은 곳에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도록 살펴주십시오. 저희가 이 모든 부정부패와 냉담한 현실 속에서 싸워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2014년 8월 14일 세월호 가족 일동 드림

2014-08-15 13:23:05 정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