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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임경선의 모놀로그] 타인의 문제와 나의 불안

나라의 여러 국면에서 사생활과 인권침해, 신상털기와 마녀사냥이 범람한다. 요새는 온라인의 익명성을 이용해 누구라도 공개적으로 타인을 비난하거나 공격할 수 있고 사람들은 점점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해져간다. 그럴수록 더더욱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결코 공개적으로 타인을 쉽게 비난하지 말자고. 물론 그것은 나 역시도 타인에 대한 험담을 남못지 않게 하는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로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에 대한 험담을 했다. 그러나 갈수록 그 수근거림 뒤에는 자기혐오만 남았다. 내가 얼굴을 찡그리며 타인의 험담에 열을 올릴 때마다 그것은 사실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내 내면의 문제를 타인에게 투영시킨 것임을 알았다. 타인에 대한 비난은 대개 자신의 불안으로 기인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험담을 할 때마다 그것을 내 안의 공허함이나 불안함에 시선을 돌리라는 자가신호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한편 험담이 모르는 사람에 대한 비난으로 확장되면 답이 없다. 겉만 보고 판단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 역시도 마음의 뿌리는 같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체념한 이들일수록 타인의 문제에 더 열을 올리며 비난하기 바쁘다는 것. 그들은 비난을 '비판'이라 착각하고 가장 객관적인 심판자를 자처하며 손쉽게 소속감과 자존감을 얻으려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내가 느낀 씁쓸함처럼 어느새 자신의 인생과 인상은 조금씩 썩어갈 것이다. 물론 인생에 지쳐있을 때 거슬리는 타인에게까지 너그럽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부탁일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의 문제를 평가하기보다 자신의 불안을 이해하는 것이 더 필요하고 중요하지 않을까. 자신의 불안을 이해하려면 우선 자신의 현실을 파악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 두 가지는 말로는 쉽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현실을 직시하는 대신 시선을 밖으로 돌려 화풀이할 대상을 찾는다. 그렇게 어려운 것 대신 쉬운 것만 쫓으니 내게도 남에게도 도움이 될 수가 없다. 글/임경선(칼럼니스트)

2013-04-07 16:23:3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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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탄산음료가 약이었다고?

탄산음료는 발포성 가스가 들어있어 톡 쏘는 맛이 특징이다. 마시면 시원한 청량감이 들지만 각종 첨가물 때문에 건강에는 썩 이롭지 않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이런 탄산음료가 처음에는 청량음료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약으로 만들어진 음료수였다. 때문에 식품점이 아니라 약국에서 팔았으니 콜라, 사이다 마시러 약국으로 가야했던 것이다. 탄산음료는 땅에서 솟는 발포성 가스가 포함된 약수, 즉 광천수(鑛泉水)를 모방해 만든 음료다. 사람들은 온천물로 목욕하면 병이 낫고, 광천수인 온천수를 마시면 위장병이 치료된다고 믿었다. 때문에 수많은 약사와 화학자들이 인공 광천수 개발경쟁을 벌였는데 일련의 과학자들이 탄산염을 넣으면 기포가 발생하는 물을 만들었다. 이때 사용한 탄산염이 소다였기 때문에 탄산음료를 영어로 소다수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서부개척시대 미국인들은 소화가 안 되거나 머리가 아프면 약국에서 광천수인 소다수를 사서 마셨다. 당시 약사들은 소다수의 맛을 더하기 위해 각종 향료를 섞거나 거품이 많이 나도록 탄산염을 혼합해 팔았는데 바로 지금 마시는 탄산음료의 기원이다. 그런데 약으로 마시던 탄산음료가 청량음료로 널리 퍼지게 된 계기가 생겼다. 엉뚱하게도 1920년, 미국의 금주령이 탄산음료 발달의 전환점이 됐다. 술을 마실 수 없게 된 성인남자들이 대체품으로 톡 쏘는 맛의 탄산음료를 선택한 것이다. 남자들은 술집 대신에 약국에 모여 탄산음료를 마시며 술집에서 이뤄졌던 사회적 교류의 공백을 메웠다. 그러자 폐업한 술집들이 너도나도 탄산음료 판매점을 열면서 지금처럼 널리 청량음료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탄산음료에서 발견한 엉뚱한 역사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2013-04-03 14:21:12 메트로신문 기자
[임경선의 모놀로그] 거절을 너무 잘해도 고민?

소싯적 나는 부탁을 받으면 거절 못하는 매우 소심한 여자였는데 서른 중반 이래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일상적으로 많은 선택을 해야 했기에 자연스레 '노'를 제법 잘 하게 되었다. 직감적으로 끌리지 않으면 남들 듣기엔 솔깃해도 눈 딱 감고 일을 거절했고 본능적으로 마음을 못 열겠는 사람들과는 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피했다. 한데 요새는 '노'를 너무 쉽게 하는 거 아닌가 고민이 되었다. 사십 대라는 나이는 정신적, 육체적 정체기를 본격적으로 체감하는 나이. 이쯤 해서 내 인생 대충 결산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체념한다. 이런 자세는 성숙하고 초연한 자세지만 한 편으로는 '지쳤다'는 이유로 겁쟁이가 된 것을 합리화시켜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성장하려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접촉이나 도전이 불가결하다. 시작 선에 선다는 마음으로 어떤 기회가 왔을 때 '난 됐어요'라고 내빼지 않고 한 보 앞으로 걸어나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런데 몸에 배인 탓에 조금만 거슬리는 게 느껴지면 '노'를 외치는 자신을 발견하면? 그럴 때는 자신의 우선순위를 재점검해보는 수 밖에 없다. 내가 이 일을, 혹은 이 인간관계를 거부함으로 인해 무엇을 얻거나 지키려는 것인가. 그 이유는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것인가 아니면 포기에 가까운 태도일까. 내 경우 일의 우선순위는 나다운 소설, 에세이, 칼럼을 꾸준히 쓰는 것. 그래서 글 쓰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도움 될 일이 아니라면 돈 대신 여유시간을 선택하기로. 인간관계에서는 좋아하고 매료되는 사람이라 해도 바로 신뢰하거나 의존하지 않는다. 깊은 관계는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니 그것을 착각하면 쉽게 피차간 상처를 입는다. '예스'로 새로운 일과 사람을 받아들여 몰랐던 나를 새로이 발견하는 기쁨도 있지만 '예스'라고 했다가 자칫 내가 아닌 나를 무리해서 연출하며 후회하기도 한다. 그 차이는 내가 얼마나 예민하고 상세하게 스스로의 우선순위를 공정하게 납득하고 있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글/임경선(칼럼니스트)

2013-03-31 17:28:37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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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계란과 새봄맞이

계란과 새봄맞이 부활절이면 교회에서 곱게 색칠한 계란을 선물한다. 막연하게 예수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짐작하겠는데 어디서 비롯된 풍속일까? 기원에 대해 여러 설이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부활절 직전의 사순절 금식에서 비롯된 풍속이라는 것이다. 금식이 풀리며 계란으로 영양을 보충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기독교 이전, 원시종교의 봄 축제에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봄은 부활의 계절이고 계란은 생명 탄생을 의미하기 때문에 예수 부활을 상징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대체적으로 두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히며 부홀절 계란 먹는 풍습이 생긴 것으로 본다. 흥미로운 것은 부활절 계란이 기독교 의식이고 서양 풍속인 것 같지만 동양에도 비슷한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새봄을 축하하면서 계란을 먹고 또 계란에 장식을 했다. 6세기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정월 초하룻날이면 조상께 제사를 지내며 새봄을 축하하는데 사람마다 계란을 하나씩 먹는다는 기록이 있다. 진나라 때 학자인 갈홍은 "정월 초하룻날 계란을 먹는 것은 나쁜 기운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란 장식도 동서양이 비슷하다. 역시 형초세시기에 새봄이면 계란에다 파랗고 붉은 색을 칠해 서로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는 풍습이 있다고 했다. 계란에 색을 칠하는 것은 만물의 소생을 축하하고 재물이 생기기를 소원하는 의미라는 풀이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도 새해, 그러니까 봄날이 시작되는 날이면 가족들이 삶은 계란에 장식을 한 후 선물을 하는 풍속이 있었다. 형식은 서로 달라도 동서양에서 모두 계란에다 새봄이 다시 돌아온 것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았다. 역시 세계는 하나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2013-03-27 14:58:1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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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처녀도 임신하게 만드는 오이

어르신들은 "과년한 딸이 있다"고 말한다.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나이가 많아 혼기를 놓친 딸이 있다는 뜻이다. 한자로 과년(過年)이다. 결혼 적령기의 딸이 있다는 말도 된다. 이때는 과년(瓜年)이라고 쓴다. 여기서 '과'는 오이라는 뜻이다. 결혼 적령기가 '오이의 나이'라는 것인데 암호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말일까? 오이 과(瓜)를 쪼개면 여덟 팔(八)자, 두 글자로 나뉜다. 8과 8로 분해되는 것인데 합치면 열여섯이다. 오이의 나이인 '과년'은 열여섯 살이라는 뜻으로 옛날에는 결혼할 나이를 의미했다. 지금 열여섯 살은 중학교 3학년이니 결혼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지만 성춘향이 이몽룡을 만났을 때 나이가 이팔청춘, 열여섯 살이었다. 왜 여자나이 열여섯을 결혼할 나이라고 했을까? 요즘은 초경이 빨라졌지만 예전에는 보통 열여섯 살 무렵에 생리를 시작했다. 다시 말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니 어른이 됐다는 뜻이니 오이의 나이인 과년이 결혼적령기인 것이다. 그럼 왜 하필 결혼적령기를 오이에다 비유했을까? 한자를 이용한 심심풀이 글자풀이 놀이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이는 생명의 상징이고 다산과 풍요를 의미하는 식물이었다. 로마시대 '박물지'에 오이는 여성의 생리를 활발하게 만든다고 했고, 구양성경에도 오이가 강장식품으로 묘사돼 있다. 동양에서는 오이는 생명력의 상징이었다. 처녀가 오이 먹고 아이를 낳았다는 기록이 자주 보이는데 풍수지리설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어머니가 오이를 먹고 낳은 인물이다. 오이를 결혼과 연결지은 까닭이다. 봄이 시작됐다. 오이처럼 생명력 넘치는 봄채소를 먹으려 활력을 찾을 때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2013-03-20 15:35:24 메트로신문 기자
[임경선의 모놀로그] 인생은 직선이 아니니까

내가 회사원이고 그녀가 글쟁이일 때부터 알고 지냈던 후배가 있다. 그런데 이제는 마치 옷을 고스란히 바꿔 입은 것처럼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가 이렇게 입장이 바뀔 거라고 누가 알았을까? "그러니깐요."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말을 아꼈다. 헌데 누가 묻기라도 한 듯 그녀가 먼저 내 입을 막았다. "조금만 다니다가 관두고 바로 다시 글 쓸 거예요. 그냥 잠시 선배 일을 도와주는 것뿐이니까." 하지만 조금만 다닌다더니 그 후로도 그녀는 계속 그 회사에 다녔다. 지난번에 보았을 때의 한시적 적응 도중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바쁘고 정신없다고 하소연했지만 이제 커리어우먼의 각이 딱 잡혀 있었다. 한때 느껴졌던 자유 영혼 특유의 나른함은 예민함과 날카로움이 대신하고 있었다. "반년만 하고 나오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이 년째 다니게 되네요." 그녀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럼 더 재미있게 열심히 잘 다니면 되지, 뭐가 문제야." "그런 말 해주는 사람은 주변에 언니밖에 없어요. 다 왜 다시 글 안 쓰냐고, 왜 꿈을 포기하느냐고 뭐라고 하더라고요. 슬슬 이제 다시 글 쓸 때가 되지 않았냐고." 자꾸 주변에서 그런 말을 하니 마치 자신이 꿈을 저버린 변절자가 돼버린 것 같아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일을 생각보다 잘했고, 그래서 여태 해올 만큼 좋아하게 되었다. 이제 그녀는 그 회사에서 전문적인 경험을 쌓고 퇴사해서 프리랜서로서 1인기업을 잘 운영하고 있다. 이제 글쟁이였던 그녀의 모습이 가물가물하다. 살면서 가장 불행한 순간은 '내가 좋아하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물리적으로 자각할 때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좋아하고 제법 잘하고 있다'라고 믿었던 그것을 사실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썩 잘하지도 못하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그동안 들인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서 안타까운 것만은 아니었다. '나도 변할 수가 있구나'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꽤 그 당시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절이 변하듯 우리 모두는 변할 수 있다. 글/임경선(칼럼니스트)

2013-03-17 10:02:44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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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특권층만 먹었던 감기치료제 '사탕'

화이트데이는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다. 그런데 왜 하필 사탕을 선물로 주게 됐을까? 발렌타인데이는 기존의 서양 명절에 업체의 초콜릿 판촉 목적이 덧씌워진 날이다. 반면 화이트데이는 철저하게 상업적 이유로 생겼는데 1980년 일본 사탕공업협동조합에서 만들었다. 매출을 늘리려고 발렌타인데이 한달 후, 초콜릿에 대한 답례로 사탕을 선물하자는 캠페인을 펼친 것이다. 화이트데이라는 명칭도 초콜릿의 검은색과 대비되는데다 흰색이 사탕을 상징하기 때문이었다. 사탕을 사랑의 묘약으로 둔갑시킨 것이 화이트데이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사탕이 원래는 약이었다는 점이다. 지금은 비만의 주범으로 눈총 받지만 고대에는 아픈 사람을 고치는 치료제였다. 사탕의 원료인 설탕은 인도에서 아랍을 거쳐 유럽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값이 엄청 비쌌다. 때문에 사탕은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연회 때 귀족들이 먹었고 보통 사람들은 아플 때나 먹을 수 있었다는 기록이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보인다. 이런 전통이 이어져 중세 유럽에서는 사탕이 감기 치료제와 소화제로 쓰였다. 특히 고약하고 쓴 맛을 없애기 위해 약에다 설탕으로 옷을 입혔는데 바로 지금 먹는 당의정(糖衣錠)의 원조다. 약에 입히는 당의정이 진화해서 지금의 사탕으로 발전한 것이다. 사탕이 의약품이었다는 증거가 또 있다. 보통 음식점에서 식후 입가심으로 먹으라고 사탕을 놓는다. 별 생각 없이 비치하는 사탕이지만 옛날 유럽에서 사탕이 소화제로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서양 레스토랑에서 식후에 초콜릿이나 달콤한 디저트가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2013-03-13 16:11:4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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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동의보감도 인정한 최고 소화제 슝늉

요즘은 식후 디저트로 커피, 차를 마시지만 예전에는 반드시 숭늉을 마셔야 식사를 마친 것으로 여겼다. 숭늉을 안마시면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소화도 시키지 못했으니 한국인에게 숭늉은 소화제와 다름없었다. 과학적으로 숭늉에는 진짜 소화제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전분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포도당과 덱스트린이 생기는데 구수한 맛을 내는 덱스트린 성분이 소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숭늉은 또 항산화작용을 해 산성체질을 알칼리성으로 중화시켜주니 이래저래 몸에 좋은 음료수다. 그러니 조상들이 숭늉을 마시지 않으면 속이 더부룩하다고 했던 것인데 실제 소화가 안 될 때는 숭늉을 약으로 처방하기도 했다. 동의보감 등의 옛 의학서에 음식을 목구멍으로 잘 넘기지 못하거나 넘겨도 위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이내 토하는 병증이 있는데 이럴 때는 숭늉과 같은 끓인 물을 마시면 그 다음에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사실 숭늉을 마시는 민족은 거의 한민족 밖에 없는 것 같다. 그 때문인지 예전 중국 사신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밥물을 마시는 것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도경'에 숭늉 마시는 풍속을 적어놓았다. "고려인이 들고 다니는 물그릇의 모양은 머리가 길고 위가 뾰족하며 배가 크고 바닥이 평평한데 여덟 모서리로 간혹 도금한 것도 있다. 그릇 속에는 숭늉이나 끓인 물을 담는다. 나라의 관리나 귀족들은 언제나 시중드는 자를 시켜서 가까이에 숭늉 그릇을 들고 따라 다니게 한다. 크기는 같지 않고 큰 것은 두 되가 들어간다." 숭늉 사랑이 이렇게 지극했는데 요즘은 아예 구경조차 힘드니 아쉽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2013-03-07 09:08:44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