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시대 개막]<문재인의 경제정책>(2)가계부채 해법
"가계부채 비율 1%포인트 증가시 소비는 0.06포인트 감소하는 등 가계부채가 전반적인 경기 활력까지 저하시키고 있다."(국제통화기금(IMF) 한국 가계부채 보고서) "가계부채 급증으로 소득 감소와 금리 인상에 대한 취약성과 소비와 성장의 하방 위험이 커졌다."(신용평가사 무디스) 미국의 경제학자 피셔(계량경제학의 창시자)는 1933년 '부채 디플레이션(Debt Deflation)'이란 개념을 통해 경기 사이클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변수로 부채와 물가를 꼽았다. '호황 국면이 끝난 후 부채 조정 과정에서 나타난 자산 가격 하락과 유동성 위축 등이 실물경제 침체와 물가 하락으로 확산된다는 것. 이런 디플레이션에서 실질 채무는 불어나고, 채무자는 소비와 저축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실물경제 침체와 물가 하락이라는 악순환 고리를 만든다'는 게 부채 디플레이션의 요지다. 문재인 대통령의 가계부채 대책은 '규제'와 '패자부활'(공약 기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선 가계부채 증가율을 소득 증가율보다 낮게 유지하고,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5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또 부채의 덫에 걸린 금융 채무불이행자의 원리금을 일부 탕감해주고, 이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복귀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개인의 빚을 정부가 나서서 줄여주겠다는 것으로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에 대한 논란을 어떻게 풀지 과제다. ◆대출금리 1% 오르면 한계가구 부채 25조 증가 가계 부채라는 크레바스(빙하 표면에 쪼개진 틈)가 한국경제를 집어 삼킬 태세다. 한 발만 헛디디면 부동산값 폭락, 금융 부실, 경기 침체 같은 폭탄이 연쇄적으로 터져 한국 경제는 일본식 장기 복합 불황에 빠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이 경기활성화와 가계 부채 해결을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2월 말 가계신용(가계대출+판매신용) 잔액은 1344조3000억원이다. 1년 동안 141조2000억원(11.7%) 급증했다. 연간 증가액이 사상 최대치다. 특히 상호저축은행, 상호금융, 새마을금고 등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잔액도 291조3000억원에 달한다. 저금리 상황에서 눈덩이 처럼 불어난 가계부채는 금리 인상기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금감원 속보치를 더하면 가계신용은 1360조4000억 원으로 늘어난다. 가계부채의 위험성은 경험적으로 잘 안다. 눈덩이 처럼 불어난 부채가 순간의 정책 실패나 외부 충격과 결합할 때 충격은 핵폭탄급으로 돌변한다. 세계 경제사를 봐도 심각한 경기침체는 가계 빚에 있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전주곡이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는 가계부채가 주택시장의 버블 붕괴와 만나 터진 대표적인 사례였다. 1990년대 시작된 일본의 장기불황 역시 경기부양을 위한 저금리 정책이 부동산 관련 대출 확대로 이어졌다. 이는 결국 자산거품이 꺼진 원인이 됐다. 이 처럼 가계부채의 악몽을 경험한 선진국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마다 과도한 가계빚을 줄이는 작업에 들어갔다. 빚을 줄이는 게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경제의 체질을 바꿔야 미래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1.6%나 된다. 1년 전에 비해 4.6%포인트 상승했다. BIS는 세계 43개국의 자료를 집계하는데, 한국의 증가폭은 노르웨이(7.3%포인트)와 중국(5%포인트)에 이어 세번째로 컸다.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43개국 가운데 8위를 기록했다. 미국(79.4%)이나 유로존(58.7%), 일본(62.2%), 영국(87.6%)보다 높은 비율이다. 시장에서는 이런 생계형 대출이 부실화하면 가계부채가 국가경제를 위협하는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한국은행은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추가 이자 부담이 9조원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한계가구의 금융부채는 25조원(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김종민(더불어민주당) 의원)급증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가계부채는 금융시장의 가장 큰 리스크(위험) 요인"이라며 "최근 증가속도가 빠른 2금융권 가계대출의 경우 현장점검 강화와 함께 고위험대출에 대한 추가충당금 적립규모 확대 등 리스크 관리도 선제적으로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일자리 늘려 가계부채 잡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가계부채 7대 해법'을 제시했다. 가계부채 총량관리제 도입, 대부업 이자율 상한 인하(27.8%→20%) 및 10%대 중금리 대출 활성화, 회수불능 채권 22조6000억원 채무조정, 소멸시효가 지난 대출채권에 대한 대부업체 추심금지, 금융소비자보호 전담기구 설치 등이다. 안심전환대출의 제2금융권 확대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활용하는 방안 등도 포함됐다. 이 중 가장 주목받는 공약은 가계부채 총량관리제다. 문 대통령은 "가계부채 증가율을 소득 증가율보다 낮게 유지하고,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50%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부채 위험성의 척도인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2년 133.1%에서 지난해 3분기 기준 151.1%까지 높아졌다. 문 대통령은 가계부채의 해법을 소득 증대에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비율을 150% 이내로 관리하려면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확대 등으로 가계소득을 획기적으로 늘려주는 대책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급격한 가계부채 감소는 경제에 독이 될수도 있다. 박춘성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연구문헌을 통해 본 우리나라의 가계부채와 소비'라는 보고서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가계부채를 억제하기 위해 급격한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추진할 경우 단기적으로 소비 감소가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가계부채 증가세가 소비 증가를 견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서는 "일괄적으로 급격한 디레버리징을 유도하기보다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적절한 가계부채 증가율에 대한 기준을 수립하고, 미시적으로 현재 상황에서 부채상환이 가능한 가계와 그렇지 못한 차별적 접근 방안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에선 모럴해저드를 유발하고, 정부 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회수불능 채권을 탕감해주겠다고 하는데 대상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감독이 필요가 있다"며 "자칫 모럴해저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