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6월이 두렵다, 신용등급 강등 리스크 고조
구조조정 본격화로 기업들이 가슴을 졸이고 있다. 특히 국내 신용평가사들의 정기평가 시즌이 한창인 가운데 2·4분기 실적 민낯까지 공개되자 몇몇 기업들은 부실 기업으로 낙인 찍힐까 조마조마한 상태다. 신용등급이 추락하면 기업은 회사채 발행을 위해 고금리를 제시해야 하고, 이도 안 되면 은행이나 제2 금융권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특히 빚 더미에 앉은 한계기업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정부의 좀비기업 솎아내기의 희생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기존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의 신용 등급을 평가하는 정기평정을 6월 말까지 실시한다. 이에 따라 5~6월 신용등급이 하락 또는 상승하는 기업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최근 6개월 A등급 하향 13곳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6개월 내 신용등급이 A급에서 하향된 기업은 13개이다. 삼성엔지니어링(A→BBB+), 한화건설(A-→BBB+), 케이티캐피탈( A+ →A), 한화투자증권(A+ →A), 와이티엔(A→ A-), 현대로템(A+→ A(부정적)), 전주페이퍼(A-→BBB), 한국씨티그룹캐피탈(A→BBB+), 두산중공업(A→ A-(부정적)), 두산(A→ A-(부정적)), 효성캐피탈(A→A-), 한솔홀딩스(A→A-) , 한진(A-→BBB+) 등이다. AA급 이상에서 A급으로 하향된 기업은 없다. 신용등급이 하락한 이유는 대부분 실적부진에 따른 현금창출력 악화와 계열사 부담 등으로 차입금 상환능력이 떨어져서다. 이에 따라 투 자자들이 기업실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실적부진→재무안정성 저하→신용등급 하락→주가 급락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늘 전망이다. 신평사들도 정기평정에서 조선업종 기업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NICE 신용평가는 "조선사의 실적 불확실성이 지속하고 있으며, 수주잔액 급감으로 자금 부담이 불가피하다"며 "정기평가 과정에서 조선업 전반의 신용등급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신용평가도 "2016년 상반기 조선사 정기평가에서 영업과 재무적 고려요인의 개선 가능성이 확인되지 못할 경우, 신용등급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올해 조선·해운·건설·발전·호텔 5개 산업에 속한 기업의 등급 하락 압력이 클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에서는 2·4분기 성적이 나쁜 기업을 중심으로 무더기 신용 강등 사태를 걱정한다. 한국거래소가 상장사 637개사를 분석한 결과, 2·4분기까지 흑자를 낸 곳은 529개사(80.35%), 적자에 머문 곳은 108개사(19.65%)로 나타났다. 하나금융투자 김상만 연구원은 "현재 투기등급에 속한 기업 대부분은 과거 투자등급에서 하향조정된 기업. 경기민감업종 등급하향조정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금 조달 차질 우려 지난해 신용평가 3사(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는 168차례에 걸쳐 기업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부도 기업 제외)했다. 1998년(171건)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뒷걸음질 치는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다. 신용등급은 기업의 재무 상태와 향후 성장성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 신용등급이 강등된 기업들은 당장 자금 조달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 재계 한 재무담당 부서장은 "대기업이라고 해도 신용등급이 A- 이하면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 경기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조달 금리까지 높아지면 경영이 더 어려워 질 수 있다"고 불안감을 전했다. 기업 신용리스크는 가계나 국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크다. '신용등급 하락→투자 위축→실적 악화→소비 위축→경기 침체'의 악순환 고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 부진 등 한국경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이런 우려를 더욱 부채질한다.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시작된 신흥국 금융 혼란은 이미 한국 수출 기업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한국 수출에서 중국을 포함한 신흥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58%에 이른다. 한국은행은 최근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2.8%로 하향조정했다. 저유가도 에너지를 전량 수입해야 하는 한국 경제에 '축복'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젠 긍정적 효과가 제한적이어서 '재앙'이 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원인이 복합적인 만큼 그 해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언발에 오줌누기'식 대응보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주문한다. 마재열 한기평 기업본부장은 "불안정한 거시경제 여건과 산업구조, 사이클상의 부정적 영향이 지속할 것"이라며 "실적 모니터링 방향은 개선보다는 방어 여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